김경윤의 하류인문학 97

[고양신문] 가파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성석동 친구가 덜컥 두 달 살기를 한다며 가파도로 내려간 후, 나를 초대한 것입니다. 마라도와 함께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가파도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장마철이라 김포공항에서 이틀에 걸친 시도 끝에 비행기에 올랐고, 제주공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이동해서 운진항에 도착했지만, 운진항에서 배편이 없어서, 근처에서 하루 숙박하고나서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산 넘고 물 넘고 바다 건너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입도하는 데까지만 꼬박 나흘이 걸렸습니다. 

왜 이리 먼 곳까지 왔을까요? 조건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 여섯 마리를 보살펴주기만 하면 월세를 내지도 않고 집을 통째로 쓸 수 있었습니다. 파격에는 항상 함정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집의 함정은 종횡무진 좌충우돌하는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정말로 고양이들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퍼뜩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은 휴가객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고양이집사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고양이집사가 먼저이고, 시간 남으면 휴가를 즐겨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이 집안에 거주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을 보살피느라 개고생을 한다고 투덜거렸는데, 이제는 고양이를 어떻게 대접할까 고민 중입니다. 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을 ‘고양이 집사’라고 명명한 이유를 알 듯합니다. 주인이 아니라 집사입니다. 집사는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뭐라도 되는 양 주인노릇을 했던 셈이니 주제파악을 못한 것이지요. 이제라도 주제파악을 했으니 참 다행이지요. 지금부터라도 집사로서 고양이들을 잘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를 보살피면서 새삼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집사가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고양이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집사가 게으르면 고양이는 개고생입니다. 집사가 부지런하면 고양이는 여유롭습니다. 나의 삶은 나의 집사가 어떻게 나를 대접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나의 집사는 누구일까요? 배우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가까운 집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게으르면 개고생입니다. 내가 부지런하면 나는 여유롭습니다. 그점에서는 고양이나 인간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가파도에 살면서 고양이도 잘 보살피고 나도 잘 보살피는 삶을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을 잘 보살피는 사람이 이웃도 잘 보살필 것이라 믿으며, 나 홀로의 삶을 정성껏 보살피며 살아보겠습니다. 내가 나를 보살피지도 않았는데 나의 삶이 여유롭다면, 분명히 누군가가 나를 보살피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 양 대접받기만을 바라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스스로 집사가 되어 상대방에게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고양이집사를 포함하여 누군가 대접하고 있는 모든 집사님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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