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7월 들어 내린 큰비로 홍수 피해가 크다. 국민의 고통이 극심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인명이 50명이나 숨지거나 실종된 사태는 엄중하다. 미호강이 넘쳐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는데 위급 상황도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고 정부와 당국의 대응은 굼떴다. 진흙탕 속에서 무고한 시민 14명이 숨을 거뒀다. 세월호 사고 사건의 육지판이나 다름없다. 비통에 빠진 유족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 어떤 재난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극한호우’라는 개념까지 내놓았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가뭄이 심해져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올 봄 남부지방은 제한급수까지 거론할 지경이었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갈수록 심해질 상황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21세기 대한민국, 위험하고 국민은 불안하다. 

홍수와 가뭄을 생각하면 이명박 정부가 벌인 소위 '4대강살리기사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용수 확보량을 13억㎥ 늘려 장래 물 부족과 가뭄에 대처하고 홍수조절용량도 9.2억㎥ 늘어나 200년 빈도 홍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내세웠다.  4대강의 바닥을 긁어내고  16개의 보로 물길을 가로 막는 엄청난 사업에  22조원이 넘도록 쏟아부었다. 이명박 정부 주장대로라면 올해와 같은 수해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사업 완공 이후 10여 년 세월이 지나도록 해마다 홍수, 가뭄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다.  하천 환경이 좋아져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보로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강엔 시퍼런 녹조가 끼어 물비린내 악취를 풍기고 독성물질까지 걱정할 정도로 수질은 떨어졌다. 

애초 홍수 가뭄은 4대강 본류가 아니라 그리로 흘러드는 지류, 지천 주변에서 일어났다.  4대강사업 따위는 할 필요가 없고, 굳이 하려거든 지류, 지천부터 살펴야 한다고 당시에 식견 높은 학자와 전문가, 대다수 환경단체, 진보적인 지식인과 종교인들까지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묵살하고 4대강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이익을 누렸고, 보수 언론매체들은 북 치고 장구 치고 나팔을 불었다. 지금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당시에 TV 토론에 나와 인상을 써가며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고 언성을 높였다. 22조원이 들어간 사업의 문제점을 박근혜 정부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인정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4대강 복원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다시 거꾸로 4대강사업을 옹호하고 나섰다. 

올여름 홍수와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7월18일 국무회의에서 하천 관리를 책임진 환경부 장관을 질책하며 지시를 내렸다. '하천 준설 정비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4대강 사업 이후 방치당해 왔던 지류, 지천 정비사업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홍수피해지를 찾아간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하천 정비사업에 손을 놨다, 시민단체 반대가 커서 하천 정비사업에 거의 안 됐다'고 말했다. 준설하고 제방을 높여야 하겠다고도 했다. 정부 차원의 종합관리 대책을 마련해서 획기적인 하천 정비로 치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분부'를 받들겠다는 충성 선서로 들린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하천판 4대강사업 삽질이 벌어질 조짐이다.

정부 여당 주장대로 지방의 지류, 지천은 방치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류 지천 사업은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부처와 지자체가 다양한 명목을 내세워가며 전국에서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하천환경정비사업, 수해상습지개선사업, 하천재해예방사업, 긴급수해복구사업, 생태하천조성사업, 생태하천복원사업은 물론 ‘고향의강 사업’이라는 감성적 이름까지 붙인다. 현장을 살펴보면 이름과 다르게 자연 훼손, 예산 낭비성 투성이다. 하천 바닥을 파헤치고 제방 비탈에 조경석을 붙이고 둔치와 제방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길도 넓힌다. 지난해 고양신문 보도로 드러난 파주시 공릉천 하류 하천정비사업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보도를 계기로 시민들이 뭉쳐 문제를 제기하자 한강유역환경청이 일부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기도 했다.

홍수는 자연 현상, 비가 내려 물이 불면 강이 심호흡하며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는 것이 홍수다. 강 바닥 긁어내고 콘크리트 돌 제방으로 둘러쳐 강을 가두는 건 21세기 하천 정책이 될 수 없다. 제방은 원래 하천의 영역을 인간이 가져가 쓰겠다고 갈라놓은 장벽이다. 발상을 전환해 하천 주변 공간을 확보해 넘쳐나는 빗물을 가두면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천변 저류지, 홍수터 방안은 국가 하천정책에 들었어도 거의 채택하지 않는다. 이걸 모른다면 무지한 정부, 알고도 국민을 속여가며 제방 위주 낡은 하천사업 관행을 이어간다면 교활한 정부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헌법 제34조6항은 명시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헌법을 지키고 재해 예방에 무지하지도 교활하지도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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