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고양신문] 한 교사가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지 3주가 흘렀다. 

저연차 교사의 황망한 죽음 앞에서, 학교 당국은 '고인의 담당 업무와 학년은 본인이 희망한 것'이라며 발을 빼기에 급급했다. 현장 교사들은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하는데, 정부여당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며 애먼 곳에 눈을 흘겼다. 경찰 수사는 유가족으로부터 '본질적이지 않은 이슈 대응 수사만 한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지난 주 금요일 발표된 교육 당국의 합동조사도 '결론 없는 빈 껍데기 조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학급 당 학생수를 줄여야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호소했고 연차가 적은, 직급이 낮은, 나이가 어린 교사들이 원치 않는 업무를 떠맡고 있다고 증언했다. '학교를 움직이는 건 민원'이라는 자조 어린 호소가 있을 만큼, 학교는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로 힘겨워하는 교사들의 현실이 대두되었다.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는 제도가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실에 절망스럽다. 그러나 교사를 아동학대의 책임으로부터 제외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성인과 아동 간의 막대한 위계, 체벌 등 학교에 남아 있는 폭력적 관습을 고려할 때, 학내 아동학대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 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권리는 결코 대립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학생 인권을 위한다는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범법행위"라고 밝혔다. '교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서 찾으려는 정부의 안이한 인식에 유감을 표한다. 

정부의 확증편향과 달리,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와 유관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역별 '교권 침해' 사례는 학생인권조례 유무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교사와 학생의 인권이 서로 대립되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덧붙여 '진상 학부모'만을 문제의 타겟으로 삼는 시도 역시 교사가 민원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학교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둘째, 사법적 원칙을 넘어 교육의 원칙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10년 간의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통해 '사건 처리'만 남은 학교가 얼마나 반교육적인지 배웠다. 처벌만을 강조한 학교폭력 대책은 학교를 법정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법망을 피해 괴롭히는 법을 배웠고, 누군가는 폭력을 저지르고도 부모가 가진 사회경제적 자원과 사법적 권력을 동원해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렇게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의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했고, 다수의 학생이 '이야기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 학교폭력을 신고하지 못했다.

사건 이후,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학교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상황과 즉각 분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즉각 분리'는 사법적 원칙이지, 교육의 원칙이 아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사법적 원칙으로만 해결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교육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교육감은 '즉각 분리'를 넘어선 교육적인 해법과 교육 당국 차원의 조정책도 고민해야 한다.

셋째, '문제 없는 학교'가 아닌 '문제를 말할 수 있는 학교'만이 가능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교육적 해법이 사라진 자리에서, 곪고 터져버린 학교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학교 문화를 성찰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시도하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대책은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생활기록부 기록을 강화하는 등 학생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 구성원 개개인이 아닌, 교육적 해법이 사라져버린 학교 현장 그 자체다.

필자가 함께했던 위티의 '학교 가기 싫은 날' 연속 수다회의 한 장면. [사진제공=양지혜]
필자가 함께했던 위티의 '학교 가기 싫은 날' 연속 수다회의 한 장면. [사진제공=양지혜]

작금의 '교권침해'를 둘러싼 논쟁이 학생의 돌발 행동이나 도전 행동, 부적응 행동마저 모두 '학교폭력'이자 '격리시켜야 할 문제행위'로 몰아가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학생의 행동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고, 질문과 문제 없이 '순응하는 학생'만을 선별하는 시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최근 자폐 장애 아동을 자녀로 둔 웹툰작가 A씨의 사례가 화두가 되면서, 통합교육 등 장애인 교육권을 위한 기본적 합의마저 퇴행하고 있는 현실에 유감을 표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학교는 '문제행위를 일으키는 구성원이 없는 학교'가 아니라, '누구나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학교'다. 이 모든 논의의 마무리가 주어진 선택지가 신고밖에 없는, 사법적 절차만을 권유할 뿐 학교 당국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학교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한 교사의 죽음으로 교육현장의 모순과 균열이 드러났다. 우리는 이 균열을 못본 척,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 없다. '허수아비 때리기'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려는 정부의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 우리 사회가 느리더라도 정직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교육현장에 대해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