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아버지는 화가 나면 상을 엎었다. 문을 활짝 열고 마당으로 냅다 상을 던졌다. 열 살짜리가 봐도 부적절한 짓이었기 때문에 아이는 소리쳤다. “아빠 나빠!” 아버지는 순간 부끄러워졌는지 집을 나갔고 가족이 모두 잠든 후에 슬그머니 들어왔다. 그러고나면 당분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뒤 그 버릇은 또 도졌다. 이번엔 주방 바닥으로 국통을 발로 찼다. 엄마가 애써 끓인 국이 엎어져 속상했을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여겨 아이는 아버지에게 또 고함을 질렀다. “아빠를 이렇게 키운 할아버지가 미워!” 아버지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보지 못하게 돌리고 천천히 집 밖으로 나갔다. 한밤중에 들어온 아버지 앞에 아이가 무릎을 꿇고 “잘못했어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더니 자신이 아버지를 욕보였다며 비참해했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고 아버지의 행패는 더 이상 없었다. 이후로 아이는 부당한 것을 보면 분연히 일어나서 소리쳤다. 학교의 권위적인 교사가 대상이었다. 교사는 그런 아이를 버릇없는 놈이라며 뺨을 때렸다. 아이는 충격을 받았고 권위에 맞서 싸우는 성인으로 자랐다.  

 상담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지역의 한 중학교에 집단상담을 나가게 되었다. 당시엔 사회가 상담의 필요성을 인지하던 때가 아니라서 예산 지원도 못 받고 무료봉사를 했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을 십여 명 모아놓고 초보 상담사는 떨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머릿속이 하얬다. 첫날은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누고 두근두근 떨리는 집단상담을 했다. 학생들 자리에 초코파이와 함께 이름표를 놓고 맞이했다. 기억을 동원해가며 얼굴을 보고 미소 지으며 이름을 불렀다. 몇 명의 아이들 표정이 이상해서 뭐 불편한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제 이름을 불러주신 건 선생님이 처음이세요.” 이럴 수가. 그럼 학교에서 선생님은 너를 뭐라고 부르시는데? “야, 이 새끼, 이놈의 새끼 그렇게요.” 

  그 학생들이 문제아라고 불리게 된 사유는 다른 듯 비슷했다.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선생님에게 대들어서, 수업시간에 반 친구와 싸워서 상담실에 왔는데 가정불화를 겪는 집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번은 한쪽 볼이 벌건 채 늦게 들어온 학생이 있었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미동이 없었다. 달래서 이유를 물으니 방금 한 남자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는 것이다. 수업 중에 임신부 선생님께 화를 냈더니 이에 화가 난 옆반 선생님이 와서 때렸단다. 그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학생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 학생은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자 마지못해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데리고 온 새 여자와 이 학생이 싸우자 아버지가 이 학생을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구집과 PC방을 전전하며 지내느라 지쳐 엎드려 있는 이 학생을 그날 따라 선생님이 강하게 지도하려다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학생, 교사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내게도 학교는 감옥으로 느껴졌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언어는 외국어처럼 달랐다. 한쪽 언어에는 ‘학생은 반드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학생은 예의가 바르고 정직해야 한다’가 있었고, 다른 한쪽 언어에는 ‘될대로 되라’와 버려짐, 절망, 외로움의 감정이 있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을 급작스럽게 바로 잡으려다 보면 반대편으로 쏠리며 배멀미가 난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이 고역이 되었고 학부모한테 교사가 꼼짝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수기 물 못 먹으니 누가 보리차 끓여서 매일 갖다 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담임에게 순종하던 예전의 초등학교 학부모, 이제는 부모가 교사에게 우리 아이 속이 안 좋으니 죽을 끓여달라 한다니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아버지의 권위, 교사의 권위에 분노를 키우던 성인은 이제 학부모가 되었다. 불협화음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균형이 바로잡힐 것이라 희망을 가져 본다. 우린 모두 존중 받아 마땅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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