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98

김경윤 인문학 작가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무섭게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카눈도 이제는 대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무더위와 불편한 환경과 싸웠던 전 세계 잼버리 대원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혹시나 더 많은 사건과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한민국을 믿고 자녀를 보냈던 전 세계 학부모님이 실망도 많이 하셨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갔으니 이제 안도의 시간을 가져도 될 듯합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우리는 이 축복과 행운을 너무 자주 경험해서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불행한 상황을 겪고나면 우리네 일상이 축복과 행운으로 가득 찬 기적과 같은 하루하루였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지난 코로나 3년의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축복과 행운을 누리고 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어져 세계를 떠돌고 있는 난민들이나 이제는 돌아갈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져 버린 고(故) 채수근 상병의 슬픔은 누가 감당해야할지 아득해집니다. 

부모가 소중한 자식을 나라에 맡길 때에는 무사히 기간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라에 맡겼으니 더욱 안전하게, 건강하게, 보람있게 지내다가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어찌 군복무를 감당하게 하겠습니까. 채수근 상병의 죽음은 이러한 믿음을 깨뜨린 것이고, 현상적으로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지만, 구조적으로는 있지 말아야할 장소에, 하지 말아야할 방법으로, 구조활동을 하라 명령했던 상관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벌어진 인재(人災) 사건입니다. 이는 젊은 사병 한 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나라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믿음을 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써놓고도 한숨이 나옵니다. 세월호에 아이들이 태워 보낼 때에는 배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하여 즐겁게 놀다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고, 작업현장에 들어갈 때에는 비록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안전하게 작업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두 이러한 믿음, 하루하루 즐겁게 살든 힘겹게 살든 돌아갈 곳이 있고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해서 영위됩니다. 

길을 걸을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여행을 떠날 때에도,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친구를 만날 때에도, 그 어느 장소 어느 때이든 무사히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삶도, 화려한 여행도, 값비싼 노동도, 맛난 음식도, 즐거움 만남도 이 돌아감이 없다면 불구입니다. 

그러니 제발, 모두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면 치워버리자. 돌아가자, 돌아가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슬프고 괴로워도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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