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키워드로 열어가는 고양 역사이야기- 에필로그 

 어린시절의 꿈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의 꿈은 역사 선생님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만화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되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물리치고 당시 세계최강이던 당 태종의 군사도 막아냈다. 세종대왕은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고 성웅 이순신은 12척으로 300척의 왜구를 무찔렀다. 우리의 역사는 장대하고도 도도한 흐름이 되어 힘차게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매료되었다.‘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자랑스럽고 재미있는 것이로구나’. 그때 역사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북한산은 태초에 고양시를 잉태한 영산이다. 북한산의 기운이 고양시로 흘러들어 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사진 제공 = 고양시.
북한산은 태초에 고양시를 잉태한 영산이다. 북한산의 기운이 고양시로 흘러들어 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사진 제공 = 고양시.

 고양특례시
  고양시는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였다. 수려한 북한산과 탁 트인 평야, 굽이쳐 흐르는 한강의 풍광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비록 가난하지만 이웃끼리 옹기종기 모여 살며 함께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던 정겨운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천지가 개벽하였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온통 논과 밭밖에 없던 서울 변두리, 군사분계선 근처의 조용한 농촌지역이 인구 백 십만의 특례시가 되었다. 바둑판을 짜듯 일산신도시와 삼송신도시가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대의 전시장인 킨텍스도 생겼다. 국제적 수준의 공연장인 아람누리, 시민들의 휴식처인 일산호수공원, 호텔, 백화점, 전철 …. 아파트를 나서면 푸르름으로 뒤덮인 도심 속 공원을 산책한다. 풍요와 여유가 갖춰진 도시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내 고향 고양시가 자랑스럽다. 

  고양의 신화
  어느 국가나 지역을 막론하고 위대한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중국은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는 오천 년의 위대한 한족(漢族)의 역사를 자랑하며 그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천신 환인의 후손인 단군이 세웠다. 일본은 신의 후손인 진무(神武)가 초대 천황이 되었다. 

  고양시는 밝혀진 유적과 유물로만 봐도 7만 전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며 문화를 만들어온 지역이다.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흥도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구석기 공장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을 배경으로 정착문화가 시작되었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인 ‘가와지볍씨’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한씨미녀와 안장왕 이야기>는 조선후기 한글소설인 <춘향전>의 원조가 되었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북한산에 올라 순수비(巡狩碑)를 세우고 드높은 기상을 펼쳤다. 타고난 전략가인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3천 여의 민관군으로 그 열 배에 이르는 왜군 3만 명을 무찌르고 나라를 지켜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고양의 신화는 이렇듯 아주 먼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져왔다. 

고양시를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은 고양의 수 많은 사연들을 싣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 제공 = 고양시
고양시를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은 고양의 수 많은 사연들을 싣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 제공 = 고양시

 발전인가 파괴인가?
  고양의 신화는 특례시라는 영광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콧대도 올라갔다. 풍요의 문화를 한껏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항상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느낌을 받곤 한다. 밥을 많이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호사가 정말 발전의 덕분인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내가 남을 위하고 남이 나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이 삭막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비록 가난하고 불편했지만 이웃과 옹기종기 모여 살며 함께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던 그 정겨움은 어디에 갔을까? 이제는 정겹던 마을과 곳곳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전통은 시멘트 속에 갇혀버렸다. 북한산과 기름진 평야, 한강의 장대한 흐름은 아파트 숲에 가려져 버렸다. 

  꿈의 소환, 신화의 소환
  역사 선생님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지역의 공무원이 되어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기로 하였다. 문화재를 지정하고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학생들을 교육하였다. 역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런데 아직은 역부족인가 보다. 문화는 항상 경제와 도시인프라의 순서를 뛰어 넘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일자리가 많아야 했고 도로와 교통이 편리해야 했으며 푸르른 도시공원이 넘쳐나야 했다. 전통과 문화는 언제나 그 다음이었다. 인구 백 십만의 특례시에 역사박물관 하나 없다. 창피한 일이다. 

  풍요와 편리함만으로 도시의 모든 존재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고양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적 자존감이 없으면 그저 우리 도시는 잠자리 도시이고 사람들의 도시일 뿐이다. 우리는 신화를 원한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멋진 신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시민 모두의 가슴에 간직할 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고양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어린 시절의 꿈을 소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우리 도시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다시 소환하여 재구성하려고 한다.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시멘트 속에 갖혀 버린 고양의 정신을 되살려 낼 것이다. 그래서 수원, 성남, 용인, 다 똑같은 위성도시가 아닌 고양 다운 고양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 다시 소환된 나의 어린시절의 꿈과 자부심 높은 문화창조 도시, 고양시의 미래를 위해 많은 응원의 박수를 기대한다. 

윤병열 전 고양시 문화유산 관광과장
윤병열 전 고양시 문화유산 관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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