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 『걸리버 여행기』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이미지.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이미지.

[고양신문]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았다. 몇 년 전 ‘과학자의 윤리와 책임’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교양 도서를 편집하면서 몇 번씩 들여다본 오펜하이머의 일생. 그때 내 나름으로 정리한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핵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그 쓰임의 현실을 목격하고 평생을 후회한 과학자’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예상했으면서 그것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오펜하이머의 순진한 판단과 후회를 지지하지 않았다.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의 욕망과 고뇌가 주를 이루고, 여기에 공산주의와 세계 평화라는 거대 담론이 결합되면서 1940~50년대 극도로 치달은 정치 싸움을 보여 준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해 각자 핵심 인물을 연기하는 걸 찾는 재미를 제외하고, 매카시 열풍에 휩싸인 당대의 정치 싸움을 3시간 동안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결국은 파워 게임. 과학자는 아무 힘이 없다. 

영화 파급력 때문일까. 두 번째 읽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주목하는 키워드는 ‘권력’이다. 이 책의 원제는 『세계의 여러 외딴 나라로 떠난 여행기. 총 네 개의 이야기. 처음에는 외과의사였다가 여러 배의 선장이 된 레뮤엘 걸리버가 지음』이다. 대항해 시대라는 거창한 탐험의 허울을 쓴 식민지 개척 시대에는 ‘여행’ 형식을 띤 소설이 많았고, 제목도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도록 부제를 달아 길게 지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우리는 소인국과 대인국을 여행한 1, 2부만 익숙하다. 3부에서 다뤄지는 ‘라퓨타’의 경우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로 익숙하기는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신기하고 환상적인 모험담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당시 유럽의 종교, 정치, 철학, 사회, 과학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풍자 소설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유럽 특히 영국의 문화를 설명하는 형식이다 보니 작가의 비판적인 논조가 깨알같이 드러난다. 화자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 나라의 권력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거나 불쾌하다는 식의 반응으로 서술한다. 

처음 완독할 때는 4부 후이늠국에서 동물처럼 취급되는 야후(인간)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2부 브롭딕낵(거인국)에 주목했다. ‘인형’이라는 뜻의 ‘그릴드릭’이 된 걸리버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외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몸’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동체에 결코 속할 수 없는 걸리버는 여러 나라의 항해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동체에도 동화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가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자국의 문화를 설파하면서도 번번이 비난받는 것은 인간이 계급을 통해 ‘순수한 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걸리버는 브롭딕낵의 왕에게 화약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데 공헌하겠다고 말한다. 이때 왕은 걸리버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너처럼 무력하고 하릴없이 기어 다니는 벌레 주제에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물건을 만들어 낼 생각을 하느냐? 어떤 악의 정령이 인간에게 스며들지 않았다면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걸리버는 왕의 순수한 양심을 비웃는다. 화약을 통해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쥘 수 있는데도 그걸 포기하는 왕은 어리석은 걸까?

<오펜하이머>에서 강력한 무기를 제조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무기의 힘을 실행하는 것도 모두 최고 권력자다. 그 과정에 참여한 과학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는 오펜하이머에게 “버튼을 누르는 건 바로 난데, 네가 무슨 권한으로 핵 개발에 대한 판단을 하고 후회하냐”고 일갈하는 트루먼 대통령. 리더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김민애 출판편집자
김민애 출판편집자

세계는 이미 힘과 힘의 대결이라는 구도에 놓여 있기에 브롭딕낵의 왕처럼 순진하게 묵살하기는 어렵다. 이미 일이 벌어진 뒤의 후회는 힘이 없다. 악의 정령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 명분이 세상을 망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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