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한국은 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저출산 국가가 되었을까? 지난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서유럽 복지국가 중 상대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는 국가와 낳지 않는 국가 분류를 하였다.

일단 아이를 낳는 국가는 성평등, 다양한 가족 인정, 다문화 수용, 돌봄에 대한 투자 수준, 사회적 돌봄인프라 등이 잘 이루어진다는 평가다. 상대적 저출산 국가는 그러한 영역들에서 상대적 수준이 낮다고 보았다. 결국 남녀가 함께 키우지 않을 때,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하는 수준이 낮을 때, 양육지원에 대한 국가 지원 수준이 낮을 때, 사회적 돌봄 인프라 구축 수준이 낮을 때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는 모두 복지국가다. 비용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국가라는 의미다.

이미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한 상태에서 서구사회에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학의 발달로 피임과 출산 조절이 개인적 차원에서 가능해졌다. 자녀가 더 이상 부모의 노후생활 보장 수단이 아니게 되었다. 생활 수준 향상과 자녀돌봄 비용 증가가 동반다. 자녀에 대한 투자 가치의 감소가 저출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로서 여성 사회진출 확대가 있었다. 더 이상 전업주부로서만의 삶을 거부하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혁명에 전통적 복지국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직장과 가정 사이 선택의 기로에 여성들이 섰다. 그리고 여성들은 당연히 출산 대신 경력을 선택하였다. 

한국에서 여성 고용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겐 아직도 가족과 경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미지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에서 여성 고용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겐 아직도 가족과 경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미지 사진=아이클릭아트]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1970ㆍ80년대 이후 출산율의 최저점을 찍은 후 복지국가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유아기에서 초등기에 이르는 사회적 돌봄체계 확대가 시작된 것이다. 가족친화기업도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는 일•가정양립이 당연한 사회가 되면서 아이 울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여성 고용률이 60% 내외에 도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성 고용률이 증가하면서 합계출산율이 감소하다가, 출산율이 최저점을 찍은 후, 여성 고용률 증가와 더불어 합계출산율이 동반 상승하는 U자형 곡선 형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저출산의 계곡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곡선의 모양이 마치 계곡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이행의 계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도 여성 고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여전히 가족과 경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사회적 돌봄체계의 완성과 가족친화경영(노동시장)을 통해 그 과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 고용률이 증가하면 할수록 합계출산율은 떨어진다. 여성의 독박육아, 경력단절이라는 표현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은 여성 고용률이 60%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의 계곡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행의 늪에 빠져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될 수도 있다.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 고용률 증가는 출산율의 하락으로만 이어질 것이다. 독박육아에 대한 불안이 취업 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리면서 출산 기피로 이어진다. 2015년 이후 출산율과 출생률이 급격히 동반 하락하고 있는데, 독박육아라는 말 자체가 2015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집 있고 직장 있으면 마치 저출산 현상의 반등이 있을 것처럼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출산 대응은 비용 지원만으로써 해결할 수 없다. 비용은 아이 낳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성평등이라는 충분조건이 없다면 길에서 아이 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맞벌이가 보편화되었다면 일•가정양립도 부모 공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언제쯤 이런 세상이 올까?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