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지난 칠월 초, 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양파를 수확하고 비워뒀던 밭에 오이와 옥수수 모종을 심었는데 팔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오이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래 오이는 이 미터 높이의 그물망을 설치하고 그 자리에 모종을 심는 게 일반적인데 양파밭은 낙엽이 두텁게 덮여있는 까닭에 오이가 기어 다녀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래도 굳이 문제점을 찾자면 허공에 매달린 오이와 기어 다니면서 자란 오이는 모양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물망에 매달린 오이들은 길쭉하고 매끈하게 자라는데 바닥에 누운 오이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탓인지 하나같이 통통하고 작달막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슨 오이가 이래 하면서 신기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를 하거나 먹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어쨌건 오이 넝쿨이 쭉쭉 뻗어 밭을 뒤덮으면서 농장에는 오이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나는 김치냉장고의 커다란 김치통으로 세 통이 넘는 오이소박이를 담갔다. 그런데도 오이는 사나흘이면 수십 개씩 쏟아지고 이를 어쩐다, 고심하던 나는 결국 오이지를 담그기로 했다. 

양파수확이 끝난 밭에서 자라난 오이들
양파수확이 끝난 밭에서 자라난 오이들

그런데 막상 오이지를 담그려고 준비를 하는데 소금이 똑 떨어졌다. 나는 부랴부랴 하나로마트로 달려가서 이십 킬로그램짜리 소금 자루를 찾았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소금 자루를 카트에 실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고 하마터면 나는 헉,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사재기로 인해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소식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오만팔천원이 찍힌 가격표 앞에서는 쩍 벌어진 입이 좀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이 어느 정도인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소금을 차에 싣고 농장으로 돌아와서 오이지를 담그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방사선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발표만으로도 이 난리인데 정작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오이지를 담그고 난 며칠 뒤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우리 정부에서 일본 측에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할 거면 내년 총선에 영향이 없도록 서둘러 방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기사가 뜨고, 마침내 일본은 8월 24일 방사선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발표를 해버렸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막상 그 일이 현실로 닥치니 모든 게 꿈결처럼 아득해지면서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을 현실적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 오염수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서 한반도에 도달하려면 사오 년이 걸리는데 뭐가 문제냐며 모든 걸 괴담으로 몰아가는 저들의 태도는 그 위기의식을 더욱 증폭시켰다.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돌면 지구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방류를 저지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양방류를 저지할 수 있을지 깜깜절벽이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일이면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질 텐데 오늘은 비통하게 종일 비가 내린다.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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