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 『백만 마리 원숭이』

[고양신문] “관장 나오라 해!” 
일산도서관에서 공식적으로 일하는 첫날, 도서관 2층에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런 일들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출근 첫날부터 맞닥뜨리고 나니 사실 살짝 겁이 났다. 

“도서관은 원래 정숙해야 하는 곳인데, 몰지각하게 서로 얘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저, 요즘 도서관은 ‘정숙’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도서관 법에도 공공도서관은 ‘정보이용, 독서활동, 문화활동, 평생교육’에 이바지하는 시설이라고 나와 있거든요.’ 하고 말하려다가 잠깐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저랑 같이 올라가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요즘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야 한다 그러진 않거든요. 그래도 너무 시끄럽게 하면 안 되죠. 같이 올라가실까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마음이 풀린 건지, 아니면 굳이 누군지 지적까지 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지만 어르신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셨다. ‘휴’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손바닥에 난 땀도 닦았다. 

생각보다 공공도서관에는 이런저런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덥다’ ‘춥다’ ‘슬리퍼 소리가 거슬린다’ ‘아이들은 2층에 못 올라오게 해라’ ‘자리 비우는 사람 관리해라’ ‘텀블러 얼음 소리 시끄러우니 음료 못 마시게 해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불만에 대처하는 능력이 높아져갔지만, 지쳐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퍼뜩 차려지는 순간이 있었다. 직원들과 사업 평가를 하는 워크숍을 하는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그 민원인이…” “그러니까 그 민원인들이…” “민원인들이 와서 프로그램 신청하는데…” 직원들이 ‘시민’ 또는 ‘이용자’를 ‘민원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음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우리는 왜 시민을 민원인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시민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들 문제일까?’     

『백만 마리 원숭이』(알프레드 힉먼 경 원작. 김채완 그림. 허은미 다시 씀. 빨간콩)에는 부모님이 일을 하러 가고 나면 집안일을 하는 ‘안’ 이야기가 나온다. 여느 때처럼 일을 하던 안은 습하고 더운 집에서 나와 잠시 평상에서 잠이 들어버린다. 그런 안을 본 부모님들은 불같이 화를 낸다. 안은 집을 빠져나와 숲으로 달아난다.

그러다 원숭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원숭이 무리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만난 백만 마리나 되는 원숭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있잖아. 나 아버지한테 야단맞았어.” “이런 이런!” “아이고 저런!” 백만 마리 원숭이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안은 자기가 당한 일을 계속 말하고 그때마다 원숭이들은 “이런 이런!”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안이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자 했던 말을 또 한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그게 다야?” 하고 말한다. 안은 생각에 잠긴다.      

처음엔 ‘민원의 내용’이 문제라 여겼다. ‘개인 공부방’ 기능이 중심이었던 과거 도서관 이미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탓에 ‘정숙’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난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가만히 앉아 시간만 보내면서!’ 이런 말 가운데는 ‘월급을 주면 이렇게 대해도 된다’는 ‘자본’ 중심의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해라’는 지배적인 태도도 문제인 것 같았다. 소위 말하는 ‘갑을’ 문화가 문제인 건 아닐까?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적인 태도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방식대로 만 하자.’ ‘눈 마주치지 말자, 민원을 넣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만 닥치지 않으면 될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누가 더 문제인지, 누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그걸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이대로는 아니라는 것.      

안은 말한다. 사실 별것 아닌 일이었던 것 같다고. 백만 마리 원숭이 효과다. 우리도 서로에게 백만 마리 원숭이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 ‘이런이런’ ‘아고 저런!’ 충분히 말한 상대에게 이런 말도 해주는 거다. ‘그게 다야?’ 그러다 보면 알게 될지 모른다. 사실 아주 큰일은 아니었다는 걸. 

박미숙 일산도서관 관장

민원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시민이기 전에 ‘사람’이고. ‘돈’으로만 대가를 매길 수 없는 ‘관계’가 필요하다. ‘아이고 저런.’ ‘이런이런.’ ‘그게 다야?’ 
여기저기서 활약하는 백만 마리 원숭이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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