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자족도시의 미래, ‘지역순환경제’로 해법 찾는다①

①자족도시 꿈꾸는 고양, ‘대기업 유치’만 해법일까
②지역화폐가 지역순환경제 이끈다 - 인천광역시 ‘인천e음’ 성공사례
③지역공동체가 주도하는 지역순환경제 – 전북 임실군 임실치즈마을 
④지역순환경제 위한 법제도 제정 가능한가 -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 
⑤쇠퇴하는 지방도시, 영국 최고의 도시로 거듭나다 - 영국 프레스턴
⑥프레스턴 CWB모델의 핵심, ‘진보적 조달체계’ 구축
⑦지역재투자 위한 커뮤니티 은행 성공할까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지역기업이 지역 내 다른 기업으로 재투자되는 ‘지역순환경제’라는 대안적 모델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사)고양시기업·경제인연합회와 고양시건축사회가 주최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례제정’ 연구용역 중간보고회.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지역기업이 지역 내 다른 기업으로 재투자되는 ‘지역순환경제’라는 대안적 모델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사)고양시기업·경제인연합회와 고양시건축사회가 주최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례제정’ 연구용역 중간보고회.


[고양신문] 그동안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대기업 유치’와 같은 외부 자본 유입을 통해서만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고양시 또한 마찬가지다. 민선 8기 고양시는 자족도시 도약을 위한 제1과제로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통한 기업투자유치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외부 자본 유치를 통해 고용이나 수요를 창출하고 지역경제에 역동성을 도모하는 이러한 방식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익이 해당 지역으로 재투자되기는커녕 외부에 있는 본사나 모기업으로 새어나가거나, 때로는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주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 동력을 지역 외부에서 ‘모셔오는’ 방식의 경제 정책이 아닌,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지역의 소득이 지역에서 소비되고 지역기업이 지역 내 다른 기업으로 재투자되는 이른바 ‘지역순환경제’라고 불리는 대안적 모델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단순히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이미 국내외적으로 실증적 경험적 사례들이 나타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받는 곳이 바로 영국 프레스턴시다. 과거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던 영국의 중소도시 프레스턴은 2012년부터 공동체의 부를 지역사회 차원에서 공공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소유하는 일명 ‘공동체 자산 구축(Community Wealth)’ 전략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순환경제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공동체 주도의 순환형 지역경제를 실험하고 있는 전북 임실군 치즈마을을 비롯해 캐시백 방식의 지역화폐 모델을 처음 도입했던 ‘인천e음’사례, 지역의 공공기관, 기업 등에 지역재투자 활성화를 지원·유도하는 ‘부산시 지역재투자 조례’사례 등이 있다.
이에 본지는 총 7회의 기획취재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지역순환경제’의 국내외 사례를 살펴본다. 첫 순서로 고양시의 오랜 숙원인 자족도시 조성을 위한 민선 8기의 기업유치 전략과 한계점 등을 짚어보고 대안적 논의로서 지역순환경제를 소개한다. 

 

100만 고양의 최대 현안 ‘자족도시’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자족도시를 향한 실행과 실천에 주력하겠습니다. 국내외 기업 유치를 최우선 목표로 고양시를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도시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지난 7월 취임 1주년을 맞은 이동환 고양시장은 민선 8기 핵심 시정 목표로 ‘자족도시’와 ‘기업유치’를 내걸었다. 이 시장의 지적처럼 자족도시 실현은 일산신도시 개발 이후 30년간 고양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였다. 100만 특례시로 성장했지만 도시 내 일자리는 제자리 걸음이었던 탓에 많은 고양시민은 서울 등 인근 도시로 출퇴근하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환 시장은 자족도시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통한 기업유치 전략을 내걸고 있다. 작년 말 고양시 JDS지구 800만평(26.7㎢)을 경기도 경제자유구역 후보지로 올린 데 이어 지난 7월 조직개편을 통해 자족도시실현국 산하에 경제자유구역추진과를 신설하고 구역지정에 박차를 강하고 있다. 시는 “산업부의 선수요·후지정 원칙에 따라 투자수요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를 위해 작년 11월부터 시장님이 여러 국가를 다니며 경제자유구역을 홍보하고 해외기업 유치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왔다”고 밝혔다.  

지난 8월 10일 고양시가 투자유치와 관련해 룩셈부르크 사절단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난 8월 10일 고양시가 투자유치와 관련해 룩셈부르크 사절단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산업부는 최근 ‘제3차 경제자유구역 기본계획안(2023~2032년)’ 수립을 앞두고 경자구역 지정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지정된 국내 주요 경자구역 상당수가 현재 개발·분양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경자구역인 평택 현덕지구(2.32㎢), 평택 포승지구(2.04㎢), 시흥 배곧지구(0.88㎢) 총 3곳의 개발률은 절반을 겨우 넘는 55.7%에 불과하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성공사례로 꼽히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사례를 살펴보자. 허동훈 전 인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은 본인의 저서 『인천, 경제자유구역을 말하다』(2019)를 통해 인천 경자구역의 분양과정에서 추진됐던 ‘연동개발’과 ‘헐값매각’ 문제 등을 거론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렴한 토지 분양에 비해 경제적 효과는 낮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큰 기업유치 성과로 알려진 송도4·5공구 바이오단지(삼성바이오로직스·센트리온·동아쏘시오홀딩스 등) 또한 실제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비하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2019년 기준 8.3만평 부지에 50년 무상임대 조건으로 들어왔지만 고용자 수는 고작 21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판교테크노밸리의 경우 13만평 면적, 고용자 수 6만2575명).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장을 지냈던 이상헌 인천대 후기산업연구소 연구원은 “외부에서는 인천시의 바이오산업 유치를 성공사례로 바라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수는 감면받으면서 정작 고용창출 효과는 크지 않고 지역산업과의 연관성도 떨어진다. 이익의 대다수가 외부로 빠져나가다 보니 사실상 지역경제 기여도가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CWB전략 통해 경제위기 극복한 영국 프레스턴
이는 비단 인천 경제자유구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천편일률적인 ‘기업 모셔오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한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흔히 기대하는 대기업 유치를 통한 경제 활성화,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해 허상이라고 말한다. 양준호 교수는 “설사 대기업을 유치해오더라도 주로 본사가 아니라 상법상 자회사 형태로 들어와서 지역에서 벌어들인 부가가치를 지적재산권 사용료, 혹은 특허권 사용료 명분으로 모회사로 이전시킨다. 사실상 지역민들의 혈세만 투입하고 지역재투자 등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양 교수는 ‘기업유치 만능론’의 대안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동력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 이른바 ‘지역순환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역순환경제는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지역 안에서 소비되고 지역 시중은행에 축적된 자금이 지역경제를 위해 투·융자되는, 나아가 지역기업이 필요한 원재료나 중간재 등을 지역 내 기업들로부터 조달해 오는 형태의 경제 모델을 말한다.

단순히 이론적인 주장만이 아니라 성공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미국 클리블랜드와 영국 프레스턴에서 추진 중인 ‘지역사회 부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정책이다. 클리블랜드의 경우 제조업 공동화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 내 병원과 대학 등을 중심으로 공공조달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다.  


영국 프레스턴 또한 비슷한 경로를 나타낸다. 프레스턴 CWB전략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청, 공공기관, 병원 등 앵커기관(지역중추기관)의 지역우선구매, 지역기반기업 및 노동자협동조합 등을 통한 지역조달시스템 구축, 이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에 최저임금보다 20% 높은 생활임금 적용, 핵심은 지역 앵커기관의 공공조달 지출을 기존 다국적기업이나 외부 대기업이 아닌 지역기반 기업 혹은 노동자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지도록 전환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 형성된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경제와 일자리가 선순환되는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한때 영국 내 빈곤율 상위 20% 도시였던 프레스턴은 2018년 ‘영국에서 가장 개혁된 도시’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2014~2017년 기준 16~24세 인구 10% 증가, 실업률 3.1%감소 등).


지역경제 돌파구, 외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두 도시 모두 외부 자본 유치를 통한 ‘낙수효과’가 아닌 지역의 내부 동력을 통해 새로운 경제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기업을 우대하는 정책, 그 기업이 또 다른 지역 기업들과 산업 연관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 마지막으로 이 기업들이 지역 내 인재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고양시의 경우 2019년 이러한 고민을 담은 지역경제 활성화 관련 조례 2건을 제정한 바 있다. ‘고양시 지역상품 우선구매 조례’는 시청의 공공 물품 계약 시 지역기업을 우대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으며 ‘지역건설업 활성화 조례’의 경우 고양시 내 개발사업에 대해 지역기업 하도급 우대, 지역민 우선 고용 등을 권고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조례제정 후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역순환경제가 자족도시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지역순환경제가 활성화 된 도시라고 해서 지역 내에서 100% 자급자족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지역 내 순환되는 부가 20%에 불과하다면 이 비중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에 지역순환경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생산의 패러다임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순환경제는 단순히 경제적 효과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경제주체들 간의 조직화를 통해 호혜적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고 지역사회가 ‘탄탄’해진다.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성장하게 한다. 시민들은 자생적·민주적 경제 시스템을 경험하며 문자 그대로의 자치를 배우고 실행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공동체가 건강하게 구축되는 것이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메튜 브라운 영국 프레스턴 시의회 의장은 “프레스턴 모델은 매우 오랫동안 우리 도시를 황폐화시켜 온 시스템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새롭고 민주적인 것을 건설하려는 시도”라고 이야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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