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허깨비를 좇아 싸움판을 벌이며 대한민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아넣고 있다. 윤 대통령의 행태는 마치 풍차를 보고 철퇴를 든 거인으로 착각해 말을 타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선제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북한과 대결,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 비판 세력에 대한 반국가세력 낙인찍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벌이는 이념 전쟁 등 윤 대통령의 행보는 총포 시대에 갑옷을 입고 창을 꼬나쥔 채 허깨비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재현이다.

사안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안위를 흔드는 메가톤급 폭탄의 위력를 갖고 있는데, 윤 대통령은 불과 1년 반 만에 국내외에 대형 싸움판을 동시다발로 벌여 놓았다. 도대체 윤 대통령은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알고나 있는 걸까?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사진출처=오마이뉴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사진출처=오마이뉴스]

반국가세력이라는 허깨비

윤 대통령은 허깨비를 좇고 있다. 첫 번째 허깨비는 ‘반국가세력’이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이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비장하게 선포했다. 반국가세력이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한다고 했는데 ‘공산전체주의’는 무엇일까? 문맥으로 볼 때 ‘공산전체주의’란 북한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현재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통상 사회주의 체제를 규정할 때 중앙계획경제와 배급제도의 두 기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본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둘 다 작동하지 않고 있다. 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민주적 집중이 이루어지는지를 본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민주적 토론에 의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의 주요 결정은 3대째 세습된 수령이 내리고 있다. 이러한 북한을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봉건 왕조의 모습에 가깝다는 게 대다수 북한 연구자들의 시각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공산전체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다.

또 ‘반국가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윤 대통령은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고 말한다. 문맥상 추론해보면 ‘반국가세력’은 과거 군사독재 시기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력이다. 윤 대통령의 말에 혐오 감정이 짙게 배어든 걸 보면 이들은 586 운동권 세력으로 추정된다. 과연 이들을 ‘북한을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으로 볼 수 있을까? 

586 세력은 보수 언론으로부터 기득권 세대로 찍혀 이선 퇴진을 요구받고 있지 않은가? 현 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모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음모론 비슷한 소설 같은 얘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아마 본인은 열심히 하는데 여론 지지도가 낮은 현재 상황을 정권을 잃은 좌익이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며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자신을 집요하게 흠집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북한 위협이라는 허깨비

두 번째 허깨비는 북한 위협론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 ‘일전 불사’, ‘확실하게 응징하고 보복’ 등 살벌한 용어를 구사하며 북한과의 대치 전선을 만들었다. 그 결과 남북은 빠르게 적대관계로 바뀌고 군사적 긴장은 가팔라졌다. 1년 반 동안 남북 사이 당국 대화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으며, 군 통신선을 비롯한 남북 직통선도 다 끊겼다. 남북한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며,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끊임없이 쏘아대고 남한은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으로 맞서며 서로 자극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최대 위협 요인이라며, 8월 을지연습을 앞두고는 “북한은 전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며, 핵 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북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 일본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연 북한이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가? 북한 위협 때문에 독도를 두고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일본과 군사협력까지 해야 할 만큼 우리의 국방 역량이 취약한가?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남북한의 국력을 비교해보자.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1/2, 경제력은 1/58(2021년 한국 GDP는 북한의 57.8배), 군사비는 1/5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국방비는 2021년 기준으로 52.8조원으로서 북한의 총소득 36.3조원보다 더 많다. 북한 입장에서는 먹지도 입지도 않고 번 돈 모두를 군사비에 쏟아부어도 남한과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북한은 1990년대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이후 흡수통일의 위기감 속에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급급한 형편이다. 윤 정부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어렵게 형성된 “북한을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남북 대결을 지양하고, 자유 왕래를 위한 문호개방의 단계로 나아간다”(2000년 헌법재판소 판결)는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교류협력으로 북한을 관리하는 30년 관행을 깬 것이다.      

윤대통령의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 [사진출처=오마이뉴스]
윤대통령의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 [사진출처=오마이뉴스]

외세라는 허깨비

세 번째 허깨비는 가치 외교를 빙자한 외세 의존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 추종 외교를 자유·인권·법치 등 글로벌 가치를 중심으로 한 외교로 강변하고 있다. 윤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준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중국·러시아를 자극해 한반도와 동해를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결장으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삼십여 년 숙원이었던 미·일·한 군사협력 구도를 앞장서서 만들어줬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공약’의 “한미일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3국 정부가 서로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문구는 사실상 군사동맹을 하겠다는 의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고, 대만 사태, 남중국해 분쟁 등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연루될 위험성이 있는 공약이다. 

국익을 좇는 비정한 국제정치세계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무작정 추종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욱이 미국은 과거처럼 무소불위의 패권국이 아니다. 미국과 서구를 견제하는 브릭스(BRICS)에 사우디아라비아, 투르키에, 이란, 이집트,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13개 중견국들이 경쟁적으로 가입하려는 데서 보다시피 미국의 영향력은 약해졌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도 불구하고 2022년 투르키에-러시아 교역량은 87%, 아랍에미리트-러시아 교역량은 68%, 인도-러시아 교역량은 205% 증가하는 등 비동맹국가(Global South)들의 러시아 교역량이 오히려 늘어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미-중 패권 경쟁도 단기간에 승부 나기 어렵고 장기간 지속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전략이 안보 분야 품목 외에는 중국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어, 중국 견제의 선봉 국가는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

돈키호테는 주변 사람들이 연출해 만들어진 결투에서 패배하고 집으로 귀환한 이후 정신이 온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언제쯤 허깨비를 떨치고 실사구시의 실용적 사고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내년 총선이 돈키호테의 결투처럼 제정신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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