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가로청소용역 현주소는?

2년마다 바뀌는 위탁업체 고용승계
매번 신입사원으로 재입사하는 격
구청으로부터 부당과업 지시도
'노동자 협동조합' 해결책 될까

덕양구에 근무 중인 가로 청소노동자. 출근시간인 6시보다 조금 빠른 5시 반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근무지를 향해 걷고 있다.
덕양구에 근무 중인 가로 청소노동자. 출근시간인 6시보다 조금 빠른 5시 반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근무지를 향해 걷고 있다.

[고양신문] 어슴푸레한 새벽 다섯 시, 사무소는 출근 도장을 찍으러 온 가로 청소노동자로 북적인다. 이들 중 이영균(46세)씨는 덕이 지역 청소를 맡고 있다. 사무소와 근무지가 2㎞가량 떨어진 탓에 이씨의 일과는 쓰레받기와 손수레를 질질 끌고 걸어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 도착한 근무지, 그 주변으로 뻗은 골목들의 쓰레기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찾아온 30도의 정오 날씨에 그의 작업복에선 새하얀 소금기가 묻어나온다. 땀에 젖어 일을 마치고 4시쯤 사무소로 복귀하지만, 사무소 내 샤워실은 한 곳뿐이다. 샤워 경쟁에서 이미 밀린 이씨는 차라리 땀에 젖은 채로 퇴근하는 편을 택한다. 이렇게 매일 10년간 일한 이씨의 통장에 찍힌 이번 달 월급은 250만원. 최저급여보다 약간 많은 액수다.

“무슨 대기업 정도의 대우를 받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우리가 치워온 쓰레기만큼이라도, 딱 일해온 정도만이라도 보상받고 싶다는 겁니다. 임금·과업·구조·복지 등 무엇 하나 지난 10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어요. 발주처인 구청, 우리를 고용한 용역업체까지. 그 누구도 우리 얘기를 안 들어주는데 저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근무 중인 용역업체 소속 가로 청소노동자.
근무 중인 용역업체 소속 가로 청소노동자.

고양시 인도·도로 대부분은 용역업체에 소속된 이들 ‘가로 청소노동자’들이 책임지고 있다. 시가 고용한 정규직 환경관리원도 있지만 이들은 주로 외곽지역을 청소하고, 정발산동·행신1동 등 인구밀집지역은 용역노동자가 담당한다. 

그간 고양시는 구마다 약 2년마다 공개입찰로 청소용역업체를 선정해 가로 청소를 민간 위탁했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2년마다 청소노동자들이 바뀌는 것이 아닌, 새롭게 선정된 업체가 기존 노동자들을 함께 안고 가는 ‘고용승계’를 택했다. 이렇다 보니 이씨와 같이 10년 넘게 지역에서 근무한 용역노동자를 찾기가 크게 어렵진 않다. 하지만 고양과의 긴 인연이 무색하게도 이들은 ‘용역’이라는 꼬리표 앞에서 불이익을 겪어왔다. 이들이 마주한 불공평이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따라가 본다.

10년 동안 월급동결…‘만년 신입사원’ 처지
가로 청소노동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 아닌 ‘급여’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이들의 월급은 사실상 동결상태다. 덕양구에서 근무 중인 한 청소노동자의 월 실수령액은 269만원으로 10년 전인 2013년 194만원보다 38% 증가했다. 그러나 가로 청소노동자들이 속한 ‘단순 노무 종사원’들의 평균 일급인 노임단가가 2013년에 비해 40%가량 증가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의 급여는 10년 전에 비해 늘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 10년 남짓 경력을 지닌 청소 베테랑들의 임금이 사실상 동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산동구에서 근무 중인 민주노총 윤경상 대의원은 용역업체가 2년마다 바뀌는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매번 우리가 소속된 업체가 바뀌니, 공무원인 직영 환경관리원들과 달리 경력·호봉을 인정받지 못하고 급여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라며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으로 재입사하는 것과 같으니 10년째 신입 연봉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덕양구 가로 청소 용역』 과업지시서 내 '다. 근로자의 임금' 발췌.
『고양시 덕양구 가로 청소 용역』 과업지시서 내 '다. 근로자의 임금' 발췌.

한편 청소노동자 임금이 용역업체 낙찰률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추측된다. 대표적으로 『고양시 덕양구 가로 청소 용역』 과업지시서는 ‘근로자의 인건비 총액을 예정가격 산정 시 적용한 직접노무비 총액에 낙찰률을 곱하여 산출한 비용 이상을 청소근로자의 노무비로 집행’한다고 명시했다. 즉, 낙찰률에 따라 청소노동자들의 급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윤 대의원은 “2년마다 바뀌는 업체와 달리 고용승계를 통해 오랜 시간 근무해 온 우리 노동자들의 급여기준이 낙찰률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때에 따라 낙찰률 때문에 실수령액이 줄어든 적도 있다”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노임단가가 올라가더라도 근로자 개인이 그에 맞는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매년 상·하반기 두 번 인상 여부가 발표되는 노임단가와는 달리 고양시 가로 청소용역은 2년 단위이기 때문에 계약기간 도중에 노동자들의 급여를 올리려면 ‘용역설계변경’을 발주처인 구청에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용역설계변경은 근로자 개인이 아닌 용역업체만 제출이 가능해 사측이 적극적이지 않다면, 노동자들은 노임단가·물가상승 등과 관계없이 2년간 같은 급여를 받게된다.

부당과업 지시로 몸살시가 나서서 시스템 개선해야
환경미화는 크게 가로 청소와 폐기물 수집 두 가지로 구분한다. 두 분야 모두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는 점에선 비슷하나, 보통 폐기물 수거가 먼저 이뤄지기 때문에 쓰레기봉투를 수거한 이후의 도로는 가로 청소노동자들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폐기물 수거 후 도로 위 남은 무단투기 쓰레기, 동물사체 등은 가로 청소 과업지시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도 구청은 민원이 들어오는 대로 가로 청소노동자들이 폐기물을 치우도록 안내한다.

불법투기 쓰레기를 수습하는 고양시 가로 청소노동자.
불법투기 쓰레기를 수습하는 고양시 가로 청소노동자.

이와 관련해 덕양구에 근무 중인 청소노동자 A씨는 “무단투기 쓰레기 수거 등 특정 과업들은 지시서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예전부터 가로 청소노동자들의 몫으로 여겨졌고, 구에서도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가로 청소노동자들을 종용하는 분위기이다. 그 부분에서 이의제기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라며 “만약 별도의 과업을 진행해야 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로 용역설계를 수정하거나 해당 업무를 위한 별도 인력을 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덕양구 환경녹지과 관계자는 “폐기물의 범위와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 가로 청소노동자분들이 수거하실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이 들면, 민원 안내 후 처리를 부탁드리고 있는 것”이라며 “일례로 쓰레기 무단투기의 경우 대량일 경우 별도의 구청 직원이 파견되나 ‘대량’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지시서에 명시된 과업들도 애매해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만큼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기존 업무구조도 지적됐다. 고양시 가로 청소는 구청에서 용역업체를 선정하면 업체에서 선정한 소장이 기존 고용 승계된 직원들을 관리·통솔하며 운영된다. 현재 일산동구·일산서구·덕양구 청소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에이비씨건설(주), 웅비환경(주), 자연사랑(주) 모두 고양시 외부에 자리 잡고 있어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지시를 받는 쪽은 회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소장이다. 따라서 근무지나 환경 등 분위기 전반을 소장이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소장이 근로자에 부당한 과업지시를 내렸을 때, 근로자가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다는 점도 부당한 지시나 이른바 ‘갑질’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열악한 용역청소부돌파구는?

청소장비가 담긴 손수레를 잠시 세우고 숨을 돌리는 가로 청소노동자.
청소장비가 담긴 손수레를 잠시 세우고 숨을 돌리는 가로 청소노동자.

이처럼 불필요한 노동자-용역업체-공공기관 간의 잡음을 없애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답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노동자와 공공기관 사이의 용역업체를 노동자가 모인 ‘협동조합’이 대체해 노동자-공공기관이 곧바로 연결된다. 만약 고양시가 협동조합에 사업을 위탁한다면 중간 ‘용역업체’가 사라지기에 노사갈등 요인이 줄고, 조합원(청소근로자)들의 주인의식을 높일 뿐 아니라 조합원의 임금과 고용안정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일례로 대전시 유성구는 2015년 도안신도시 가로 청소를 청소근로자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에 위탁해 운영한 바 있다.

그러나 고양시의 경우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만큼, 지금 당장 협동조합 방식을 도입하긴 무리가 있다. 아울러 협동조합 출범은 시와 청소노동자 간 충분한 협의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만큼, 현장 노동자들은 우선 대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윤경상 대의원은 “가로 청소노동자들의 요구 끝에 올해부터 3개 구가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4월 때 한 차례, 8월 말 두 차례 진행했고 앞으로 3개월 한 번을 목표로 지속해 소통창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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