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자족도시의 미래, ‘지역순환경제’로 해법 찾는다②

2019년 인천시에서 열린 인천e음 발대식. [사진제공=인천시]
2019년 인천시에서 열린 인천e음 발대식. [사진제공=인천시]

①자족도시 꿈꾸는 고양, ‘대기업 유치’만 해법일까
②지역화폐가 지역순환경제 이끈다 - 인천광역시 ‘인천e음’ 성공사례
③지역순환경제 위한 법제도 제정 가능한가 -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 
④지역공동체가 주도하는 지역순환경제 – 전북 임실군 임실치즈마을 
⑤쇠퇴하는 지방도시, 영국 최고의 도시로 거듭나다 - 영국 프레스턴
⑥프레스턴 CWB모델의 핵심, ‘진보적 조달체계’ 구축
⑦지역재투자 위한 커뮤니티 은행 성공할까

지역순환경제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당시 지역 내발적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지산지소 운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개념의 ‘지산지소’는 지역순환경제의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충북 홍성군을 비롯해 전북 전주, 완주 등 주로 서울과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중심으로 지역운동, 농민운동 등과 연계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반면 수도권 지역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지역순환경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 시민들의 소비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지판지소’ 전략을 토대로 한 정책들이 등장한 것이다. 집중된 인구에 비해 생산기반은 부족한 ‘베드타운’도시들의 특성상 역외소비 유출을 막는 이러한 시도들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바로 지역화폐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각 지자체별로 도입된 지역화폐는 할인율(캐시백)과 낮은 수수료, 소득공제 혜택 등의 이점을 기반으로 불과 몇 년 만에 이용실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인천광역시의 ‘인천e음’ 지역화폐의 경우 불과 1년 만에 누적결제액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호에서는 지역화폐 ‘인천e음’이 지역순환경제에 미친 성과와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함께 다뤄본다.

[고양신문] 인천광역시가 지역화폐 도입을 추진한 것은 2017년부터다. 수도권 대다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천 또한 당시 지역경제, 특히 소상공인들의 문제가 심각했다. 2014년 기준 인천시민이 인천시 밖에서 소비하는 역외 소비율은 52.8%로 전국 광역시도 중 세종시(65.9%) 다음으로 높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지역 내에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천지역 소상공인 활성화를 위한 정책은 간헐적인 지원사업 정도가 전부였다. 

인천e음 지역화폐 초기모델을 고안한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인천 시민운동 대부였던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이 지역화폐 도입에 관심이 많았고 친하게 지내던 안광호 당시 소상공인 팀장과 같이 찾아오면서 논의가 시작됐다”며 “처음엔 진정성 여부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후 담당 팀장이 연구실에 계속 찾아와서 자문을 구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보태게 됐다”고 전했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흔히 지역화폐는 민주당 정권에서 시작한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천시의 경우 당시 새누리당이었던 유정복 시장 시절 도입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지역화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역 소상공인 살리기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2018년 ‘인처너카드’라는 이름을 달고 비예산 시범사업 형태로 출발했던 인천시 지역화폐 정책은 이후 시민공모를 통해 ‘인천e음’으로 명칭을 바꾸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 착수에 돌입했다. 


도입 1년 안돼 부가가치 744억 증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인천e음은 2019년 첫해에만 누적결제액 1조5000억원, 가입자 92만명을 돌파하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특히 인처너카드에서 인천e음으로 전환하면서 결제 횟수는 약 1300배, 결제금액은 약 1660배까지 상승했다. 작년 3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 230만명, 누적 결제액은 1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지역화폐 인천e음은 인천시의 ‘히트상품’으로 거듭났다. 

단순히 거래규모만 증가한 것이 아니었다. 지역화폐 사용이 실제 인천시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실증데이터가 여러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팀이 2019년 발표한 성과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인천e음은 일반음식점, 도소매업, 슈퍼마켓, 편의점, 병의원, 약국 등 소상공인 매장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이로 인해 특히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분야에서 불과 3개월(2019년 8~10월) 만에 총 5만8000명에 이르는 추가고용이 발생했다.

더 고무적인 부분은 골목상권의 부가가치 상승이었다. 양준호 교수는 “당시 국세청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인천e음 도입 1년 만에 인천지역 부가가치세가 744억원(3.59%)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는 곧 지역 영세사업자들의 매출상승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가장 확실하게 입증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분석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연구원 연구 결과 인천e음의 재정투입 승수효과가 2.9에 이르렀으며 이를 통해 역외소비 또한 359억원이 줄어드는 효과도 났다(2019년). 2020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연구에서도 경제적 편익이 3566억원에 달했으며 2021년 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 연구에 따르면 중·소상공인 매출이 최대 47.2%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등 많은 연구결과에서 정책적 효과가 입증되고 있었다. 

또한 지역경제 선순환 효과를 유발하는 B2B거래(기업 간 거래)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2019년 기준 건축자재 부문에서 약 42억원, 용역서비스 24억원, 수리서비스 18억원 등 지역화폐 결제가 꾸준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역화폐가 외부 자본유출을 막고 지역 내 원자재 조달-제조-판매-소비의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천e음 성공비결. 캐시백과 확장성 
그렇다면 인천e음이 전국 수많은 지역화폐 중 가장 독보적인 성공사례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꼽히는 부분은 캐시백과 확장성이다. 먼저 인천e음은 전국 지역화폐 중 캐시백 10%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해 관심을 모았다. 가령 고양페이의 경우 현재 10만원을 충전하면 7000원이 추가적으로 들어오는 방식(7%할인 적용)인데 반해 인천e음은 카드를 사용할 때 마다 10%캐시백이 후불로 들어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소비를 유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더 큰 성공요인은 인천e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중층구조’와 이에 기반한 ‘확장성’이다. 중층구조란 양준호 교수의 말을 빌리면 인천시가 전체적인 콘트롤타워를 맡으면서 기본적인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각 자치구들이 해당 인프라를 활용해 자체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는 방식이다. 자치구들의 정책 자율성을 보장한 셈인데 이러한 운영구조 덕분에 인천e음은 각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특화사업과 연계될 수 있었다.

출처: 지역순환경제와 지역화폐, 곽동혁 전 부산시의원(2022.8.26 재인용)
출처: 지역순환경제와 지역화폐, 곽동혁 전 부산시의원(2022.8.26 재인용)

 

대표적으로 인천서구의 경우 단순히 지역화폐 정책을 넘어 독자적인 플랫폼 구축을 모색했으며 그 결과 서구 특별상품관 구축, 기부기능 추가, 지역축제와의 연계, 정책 수당과의 연계 등 다양한 추가서비스를 도입했다. 서구에서 자체 운영한 공공배달앱의 경우 한때 배달플랫폼 대표 업체인 ‘요기요’를 제치고 배달앱 실적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연수구의 경우 인천e음 인프라를 기반으로 특정 아파트 단지나 특정 단체, 대학 등에서 추가 할인이나 추가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멤버십 형태의 ‘특화카드’를 개발했다. 
 

화폐기능 넘어 사회공헌 확대로
이처럼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천e음은 최근 정부의 지역화폐 국비지원 감소결정과 이에 따른 인천시의 정책변화에 따라 현재 존폐기로에 놓여있다. 때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역화폐 자립모델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작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공기업 ESG경영모델 일환으로 14억5000만원의 인천e음 캐시백 예산을 지원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ESG경영 차원에서 기금을 기탁하면, 그 기금을 지역화폐 캐시백 예산으로 활용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외 은행 등 지역 독점자본의 지역경제 활성화 참여 의무화를 통한 재원확보 방안과 지역화폐 지방 공기업 법인화 등이 중장기적 재원확보 방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지역화폐가 단순히 결제시스템을 넘어 사회공헌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점순 인천대학교 후기산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민선8기 인천시정부 1년 평가 토론회’에서 인천e음의 지속가능성 방안을 두고 “지금까지 화폐기능에 편중되어 있었다면 이제 비화폐적 측면의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는 소비촉진 효과만 강조되어 왔는데 그 외 지역공동체 활성화나 환경보호, 공적투자 등 사회적 측면으로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점순 연구원은 일본 지역화폐 중 ‘사루보보 코인’과 ‘아쿠아 코인’을 사례로 들고 있다. 일본 기후현 히다신용조합에서 발행하는 사루보보 코인은 2017년 도입 이후 현재까지 누적 발행액이 4억엔에 달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금융기관이 발행주체이다 보니 정부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바시의 아쿠아 코인 또한 지자체뿐만 아니라 지역금융기관, 경제단체 등이 협업을 통해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점순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화폐가 지자체 주도로 정착하면서 주로 경제적 효과만 부각되어 왔는데 일본 사례처럼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면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양준호 교수는 “인천e음의 성과는 단순히 소상공인 매출 확대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지역 안에서 돈이 도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지역순환경제의 필요성을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나아가 지역 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등의 지역재투자를 유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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