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피해가 심각한 배추밭
피해가 심각한 배추밭

[고양신문] 요즘 배추와 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마다 나는 팔월 이십오 일 전후해서 김장 농사를 끝내는데 올해에는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느라 구월 초순에 김장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후 밭을 들여다보니 무탈하게 자라고 있어야 할 배추 모종 십여 주가 말라 죽어버렸고, 일제히 싹을 내밀고 있어야 할 무는 드문드문 간신히 머리를 내밀었다. 

배추 모종은 실한 놈으로 골라서 이백이십 주를 심은 뒤 낙엽으로 멀칭을 해주었고, 무도 묵은 씨앗이 아닌 올해 포장한 씨앗을 사다 심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가을볕 하루는 여름볕 일주일과 맞먹는지라 나는 부랴부랴 배추 모종을 사다가 보식을 했고, 무 씨앗도 새로 넣었다. 그런데 며칠 뒤 밭에 나가보니 배추 삼십여 개가 말라 죽어버렸고, 무밭에도 빈 자리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무밭의 피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무밭의 피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황망한 풍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제기랄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내 밭만 그런 게 아니라 몇몇 회원들 밭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껏 김장 농사를 지어오면서 나는 배추 모종을 새로 사다가 심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끔 배추 모종 두어 개가 비는 일은 있어도 그쯤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배추 이백이십 주 가운데 삼십여 주가 사라져버리다니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서둘러 배추모종을 사다가 빈 자리를 메꾼 뒤 나는 농장과 이웃한 집에 가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랬더니 때마침 미리 와있던 통장이 지금 배추 때문에 온 동네가 시끌시끌하다면서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가을 날씨를 들먹였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마다 물 한 번 주지 않아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던 배추가 바짝바짝 말라 죽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 또한 마찬가지다. 파종한 뒤에 비가 한번 시원하게 쏟아지고 나면 무는 일제히 싹을 틔우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파종한 이후로 비가 두 번이나 내렸는데도 싹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했다. 짐작이지만 비가 그친 뒤 불화살처럼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면서 씨앗의 상당수가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문득 십여 년 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일부 기상학자들이 2030년이 되면 기상이변으로 식량 대란이 일어나고 그 때문에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기사였는데, 그때 나는 기사를 읽는 내내 너무 과격한 예측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올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가뭄과 홍수로 인한 비극은 차치하고라도 만약에 내년 가을이 올해보다 더 뜨거워져서 배추가 전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이 일자 식량 대란이 기상학자들의 예측보다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열대 작물인 울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잘 자랐다.
아열대 작물인 울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잘 자랐다.

제발 그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야겠지만 해마다 달라지는 날씨를 생각하면 온갖 불길한 상상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물론 어떤 이들은 까짓 수입을 하면 되지 뭔 놈의 걱정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각 대륙의 농사가 기상이변의 직격탄을 맞는다면 그때에는 어찌할 것인가. 저출산율 못지않게 심각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생각하면 더욱 암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배추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내내 편치가 않다.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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