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자족도시의 미래, ‘지역순환경제’로 해법 찾는다③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

2021년 5월 6일 부산시의회에서 국내 최초로 지역재투자 조례가 통과됐다.  이 조례는 부산지역 내에서 창출하는 부의 역외유출을 방지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출처= 오마이뉴스)
2021년 5월 6일 부산시의회에서 국내 최초로 지역재투자 조례가 통과됐다. 이 조례는 부산지역 내에서 창출하는 부의 역외유출을 방지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출처= 오마이뉴스)

 

①자족도시 꿈꾸는 고양, ‘대기업 유치’만 해법일까
②지역화폐가 지역순환경제 이끈다 - 인천광역시 ‘인천e음’ 성공사례
③지역순환경제 위한 법제도 제정 가능한가 -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 
④지역순환경제 활성화 위한 거버넌스 구축 – 울산광역시 동구  
⑤쇠퇴하는 지방도시, 영국 최고의 도시로 거듭나다 - 영국 프레스턴
⑥프레스턴 CWB모델의 핵심, ‘진보적 조달체계’ 구축
⑦지역재투자 위한 커뮤니티 은행 성공할까

[고양신문] 부산시의회는 202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시 지역재투자 활성화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해결을 위해 제정된 이 조례는 부산지역에서 창출되는 소득의 역외유출을 방지하고 지역경제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또한 부산시·공공기관·금융기관 및 기업의 지역재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재투자 조례는 미국 클리블랜드와 영국 프레스턴의 지역순환경제 성공모델 핵심이 됐던 ‘공동체 부 구축 전략’(Community Wealth Building, 이하 CWB)의 핵심 원칙을 상당부분 담아내고 있다. 공공조달 체계의 재구조화를 통한 지역기업 구매 촉진부터 민주적 소유 기업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경제 육성방안, 조례추진을 위한 위원회 설치, 나아가 지역주민들의 악성부채 해결을 도와주고 공공사업의 투자를 지원하는 ‘재투자 기금’까지 조례에 명시했다.  
이번 기사는 국내 최초로 지역순환경제 법제도화 방안을 모색했던 부산시 지역재투자 활성화 조례의 제정 배경과 주요 내용, 의미 등에 대해 다룬다.   

지역의 부 유출 막는 지역재투자조례 
시작은 지역화폐였다. 2018년부터 전국 각 지방정부가 지역화폐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부산광역시에서도 지역화폐 동백전의 추진방안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당시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 소속으로 곽동혁 전 부산시의원은 동백전 도입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부산시 지역경제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한다. 

“부산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지금은 인구수도 줄어들고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해결책으로 항상 대기업 유치만 부르짖어 왔는데 사실 현재 부산은 그런 기업들을 유치할 환경이 안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부에서 생산동력을 찾아보는 소위 내재적 발전 전략을 고민하게 됐죠. 지역화폐부터 시작해 지역기업 공공조달 개선, 골목경제 활성화, 나아가 공공금융까지 논의를 넓히면서 이를 지역재투자라는 개념으로 묶어냈습니다.”

곽동혁 전 의원의 말처럼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는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방향을 프로젝트 개발 혹은 해외나 국내 대기업 유치에 두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역경제의 확대재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고용규모와 소득의 순환이 확대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각 지역마다 지역기업 우선구매나 지역주민 우선고용, 소상공인 지원 같은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담은 개별 조례들은 다수 존재했지만 이들을 ‘지역 재투자’라는 개념으로 하나로 묶어낸 기본조례는 부산시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부산 지역재투자조례에 담긴 지역재투자의 주요 개념도
부산 지역재투자조례에 담긴 지역재투자의 주요 개념도(출처: 곽동혁 의원, 지역재투자 조례를 통해 본 지역순환경제)

 

이처럼 지역경제의 내재적 발전전략 고민에서 출발한 부산시 지역재투자조례는 약 1년간의 논의와 토론을 거쳐 2021년 5월 6일 제정됐다. 워낙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례였기 때문에 시 담당부서는 물론이고 지역기업과 대기업, 금융기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50~60여 차례 간담회와 토론, 공청회를 이어가며 조례의 구체적인 상을 만들어 갔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김영춘 전 국회의원의 ‘지역재투자’ 법안(임기종료로 자동폐기)이 함께 준비되고 있었고 부산시 일자리경제실에서도 지역재투자를 BSC성과지표로 선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례추진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곽동혁 전 의원은 “기획재경위 동료의원들과 뜻이 맞았고 부산참여연대 등 지역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컸다. 무엇보다 담당부서 공무원이 열정적으로 함께 나서준 덕분에 조례제정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지역경제 선순환 위한 공공조달체계 개선
가장 갑론을박이 많았던 지역재투자의 개념정의는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조정 가능하도록 금융의 지역사회 사회공헌, 지역순환형 경제구축, 사회적경제 활성화 등 지역에 다시 투자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여기에는 지역화폐부터 기금, 사회적경제, 지역내재생산 영역(공공·민간) 등의 범주가 포괄적으로 담겼다. 구체적으로 △시와 공공기관 등의 지역기업제품 구매촉진 △지역 내 현지생산 부품의 조달 △현지법인 설립 △지역고용률 제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자금중개 △사회적 경제 육성 및 지원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및 지원 △지역화폐 활성화 등의 항목이 ‘지역재투자’를 위한 세부적 실행수단으로 명시됐다.

부산 지역재투자조례와 연관된 기존 조례 현황 및 실행방안(출처: 곽동혁 의원, 지역재투자 조례를 통해 본 지역순환경제)

 

여기에는 새롭게 추가된 항목도 있지만 대부분 기존 조례와 정책을 통해 추진해온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테면 지역기업 구매촉진은 ‘중소기업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지원 조례’와 ‘바이부산(Buy Busan)’이라는 정책을 통해 추진되고 있었고 사회적경제 육성분야와 소상공인 지원, 지역화폐 활성화 등도 각각 별도의 조례가 존재했다. 다만 해당 조례의 대부분은 별도 재원마련을 위한 근거조항이 없었고 기본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파편화되어있던 관련 정책들을 ‘지역재투자’라는 개념으로 하나로 묶어내는 기본조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테면 부산시가 ‘바이부산’이라는 공공조달 지역기업 우선구매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조달률이 80% 가깝게 나와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울에서 생산된 제품을 부산의 유통업체가 구매해서 부산시에 납품해도 실적에 잡히는 상황이죠. 이게 무슨 바이부산이겠어요. 지역에서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고 그걸 공공이 구매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역재투자 개념을 명확히 하고 여기에 기반한 공공조달 우선구매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 거죠.”

현지 생산품 조달, 현지법인 설립 등의 항목이 조례안에 포함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곽 전 의원은 “외국계 기업이 부산에 들어오면 시에서 지원금을 퍼주는데 정작 부산에 본사를 두는 것도 아니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며 “기왕 유치된 기업이라면 현지 법인화를 시키거나 지역에 투자하도록 해야 소득 유출도 막고 지역경제 재순환이 이뤄진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지역재투자 기금 통해 공공금융제도 마련
부산시 지역재투자 조례의 핵심조항은 위원회 설치와 기금조성, 평가지표 마련이다. 우선 지역재투자 정책 전반에 대한 시행사항을 심의·자문하는 역할인 지역재투자 위원회는 부산시와 시장(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곽동혁 전 의원은 “지역재투자라는 대원칙에 동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견과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지역주체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기본계획 수립부터 지역재투자기금 운용 및 관리, 평가지표 개발 및 성과평가, 기타 여러 가지 사항들을 논의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부산 지역재투자 조례의 독창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지역재투자 기금 설치다. 이 기금의 용도는 지역 취약계층의 금융중개를 위한 금융공헌계정, 지역재투자력을 높이는 다양한 제고사업 지원을 위한 지역상생협력계정으로 구분된다. 재원확보 방안 또한 부산시 예산뿐만 아니라 지역 금융기관, 공공기관, 기업 등의 출연을 통해 이뤄지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관행적으로 금융정책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중앙사무로 인식되어 왔다.

곽동혁 전 시의원
지역재투자조례를 제정한 곽동혁 전 부산시의원

 

하지만 곽 전 의원은 지역재투자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금융지원까지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지역금융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곽 전 의원은 “앞서 언급한 지역재투자 관련 사업들을 실질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공적 투자와 지원을 담당하는 재정적 기반으로서의 금융기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시작은 기금 형태이지만 기금사무 대행을 위한 사회적금융기관 설립 근거도 담아냈고 향후 국회에서 공공은행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지역공공은행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금 재원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항목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지역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의 출연이다. 이를 추동하기 위해 조례안에는 이러한 지역 금융기관과 기업 등 ‘앵커기관’들의 지역기여도를 평가하는 평가지표 개발 및 성과평가를 담아냈다. 지표를 통해 나온 ‘지역재투자’ 기여정도에 따라 금융기관에는 시금고 선정 및 시정책사업 연계, 기업에는 투자보조금 지원 확대 등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지역순환경제 법제도화 의미 커
이처럼 부산시 지역재투자조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순환경제 해법을 법제도화한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부산 참여연대에서 단 1명에게만 수상하는 ‘좋은조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지방자치학회로부터 개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경진대회에서도 광역의원으로는 유일하게 ‘1급 포상’을 받았다. 그만큼 조례의 의미를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하지만 지역재투자조례는 제정 당시 받았던 큰 기대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당 조례의 핵심인 위원회와 기금 설치는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겨우 만들어진 기본계획조차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례제정 시점에 부산지역 정치권력이 대거 교체되면서 추진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국내 최초의 지역재투자조례가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 곽 전 의원은 “과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부산시의 책임이 다소 모호했다면 이제 조례에 근거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관련 정책이 ‘지역재투자’ 관점에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적과 대책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또한 막연했던 지역재투자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제 정책과 연결시키고, 상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민관협치기구 마련을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부산시 지역재투자조례 사례는 앞서 2019년 ‘지역상품 우선구매 조례’와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조례’ 제정을 통해 지역경제 내재적 발전전략을 시도했던 고양시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지역재투자조례 같은 지역순환경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정책적 기조를 조정할 수 있는 시민들의 동력, 나아가 정치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곽동혁 전 의원은 “지역재투자 정책이 권력교체와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되려면 결국 중앙의제가 아닌 지역의제를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내야 한다”며 “내년 총선에서도 지역에 대한 고민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정책이 개발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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