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중국 역사와 문화, 생태 환경에 관심을 가져 중국어를 익히고 있다. 언론사 퇴임을 앞두고 안식년을 이용해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어학연수를 받기도 했다. 하얼빈을 택한 이유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얼을 새기고 자취를 더듬어보고 싶어서다.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26일 안 의사가 우리 강토를 침략한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역사의 현장이다. 일본이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워 허수아비 만주국을 세우고 저지른 만행의 증거 731부대도 하얼빈에 남아있다. 중국, 땅덩이는 넓고 역사의 굽이는 길고도 복잡하다. 문화의 호수는 크고도 깊고, 흘러드는 물줄기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길목에 사는 우리로서는 우리를 둘러싼 미,중,일,러 외세를 바로 알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 현 정부는 미, 일에 치우쳐 북, 중, 러를 밀어낸다. 마찰과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국익과 생존이 달린 만큼 우리가 중심에 서서 시각과 자세에 균형을 유지해야 마땅하다. 

한중 정치 외교 관계가 어떻든 학계나 시민 차원에서는 중국을 다방면으로 알고 이해하며 풀뿌리 대화와 교류를 이어감이 바람직하다. 중국 남부 푸젠성(福建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객가(客家) 토루(土壘)를 탐방하고자 자료를 찾았다. 토루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현장이다. 객가(중국어로는 '커쟈')란 4세기 초 중국 서진 시대에 내부 분란과 북방, 서방의 유목 민족의 침입으로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살 길을 찾아 남쪽으로 집단을 이뤄 이주한 한족의 분파를 이른다. 외지에서 더부살이하다보니 원주민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도적떼에게 재산을 빼앗기거나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자구책으로 언덕이나 산간에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흙과 벽돌, 나무로 성채처럼 지어 일가가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집합 주거 시설이 토루다. 푸젠성에는 원형, 타원형, 사각형의 다양한 토루가 모여 장관을 이룬다. 객가인들은 단결하고 근면하며 특히 후대를 위한 교육에 힘썼다. 쑨원, 마오쩌둥, 덩샤오핑을 비롯해 중국 근현대사 위인 가운데 객가 출신이 많다고 이른다.

중국 푸젠성의 객가 토루 순유루(順裕樓). 사진=중국 검색포털 바이두(百度) 사진.
출입구 밖 좌우 돌기둥에 '순시납호 유후광전(顺時納祜 裕後光前)'이란 여덟 자의 글귀가 새겨져있다. '때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며 하늘의 축복을 받아 후대를 넉넉하게 하고 선대 조상을 빛나게 함'이라는 의미다. 중국 푸젠성의 객가 토루 순유루(順裕樓). 사진=중국 검색포털 바이두(百度) 사진.

순유루(順裕樓)라는 원형 토루는 방이 300개나 되는 최대급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출입구 밖 좌우 돌기둥에 '순시납호 유후광전(顺時納祜 裕後光前)'이란 여덟 자의 글귀가 새겨져있다. '때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며 하늘의 축복을 받아 후대를 넉넉하게 하고 선대 조상을 빛나게 함'이라는 의미다. 후대가 잘 살도록 기틀을 이뤄주고 오늘의 자신들을 있게 해 준 선대가 빛나도록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함이 당대의 책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칠고 적대적인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객가인들의 의지가 드러난 구호이자 좌우명이기도 하다. 글에 담긴 뜻은 우리도 새길만하다 싶어 방송대 대학원 교수 동문의 도움으로 '유후광전'의 출전을 찾았다. 송(宋)대 진단(陳摶)의 인격 수양서 '심상편(心相編)'에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면 반드시 후대가 넉넉하게 잘 살고 선대가 빛이 날 것(敬老慈幼,必然裕後光前)'이라고 나온다.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기본 책무와 도덕을 짚은 귀절이다.

명나라 말기 주정(朱鼎)이 지은 '옥경대기(玉鏡臺記)'라는 희곡의 대단원 부분에는 '영명한 군주가 공적을 기리고 어진 이를 높이시니 후대가 넉넉하고 선대가 빛을 본다(荷明主褒功尙賢更裕後光前)'고 노래한다. 장차 백성이 주리지 않고 넉넉하게 살며 선인들의 업적이 폄훼받지 않고 빛을 내려면 군주가 영명하게 신하들의 공과를 가리고 어진 사람을 높여야 한다고 새길 수 있다. 글귀가 생겨난 배경과 글자에 담긴 뜻을 지금 우리 상황에 비춰본다. 청년들이 뜻을 펼 기회를 얻기 어렵다. 2022년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의 평균 자녀 수는 0.78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생활을 이어갈 수 있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안정적인 일자리, 적절한 가격의 주택이 넉넉하고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 부담이 문제가 없다면 이런 현상이 나올리가 만무하다.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젊은 부부는 물론 아기에게도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후대에게 넉넉함을 보장하지도 않고, 선대를 빛나게 하기는 커녕 욕보이고 끌어내리는 행태도 두드러진다.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철거'하겠다는 군과 정부 여당의 언동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반발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상해 임시정부에서, 국군의 뿌리를 구한말 의병과 일제시대 독립군, 광복군에게서 찾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숫제 당당하기까지하다. 후대를 아끼지도 않고 선대를 존중하지도 않는 현 세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은 지난 9월23일 기후정의행진에서도 높았다. 선대가 물려준 아름답고 건강한 지구 환경을 낭비하고 더럽히고 파괴한 현 세대의 책임은 막중하다.  '유후광전'은 권력자 지배계급의 윤리 덕목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은 유권자, 시민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갈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자랑스런 선대를 욕보이는 세력, 특히 정당 정치인 관료 언론을 가려내야 한다. 나라의 주인, 유권자가 영명하게 표로 심판할 계절이 곧 온다. 후대가 넉넉하게, 선대가 빛나게(유후광전;裕後光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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