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 허영호치과원장

내 집에서 자연사하면

경찰과 과학수사대 파견

죽음 인정권도 의사에게

국민의 결정권 존중돼야

최근 가까운 지인 한 분과 또 다른 지인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같은 날 듣고 같은 날 늦게까지 조문을 다녀오면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나의 어머님의 임종까지 이미 겪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임종하신 지인 한 분은 만64세 여성으로 10년 이상을 같은 종교활동을 하였기에 남편분과 자녀들 모두 서로서로 잘 아는 분으로서 약 15년 전 나는 일산으로 지인 가정은 수원으로 이사하면서 가끔씩 만나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1년 전 남편으로부터 아내분의 췌장암 4기 소식을 들었었다. 그동안 지인은 너무 바쁘게 살아왔지만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였기에 그러한 검사 결과는 너무나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조문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선 코로나를 걸리고 몇 개월 회복이 더딘 것이 한 원인이 아닌가 하였다. 그 후 지속적인 복통으로 검사를 진행하였을 때는 4기까지 진행된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하였다. 두 번째 항암치료까지는 비교적 잘 견뎌내었으나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너무나도 높아 세 번째 항암치료는 많이 망설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 번째 치료를 진행하였고 그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하였다. 의사는 첫 번째 치료제에 대한 반응률은 약 20%, 두 번째 치료제는 5%라 하였다고 했다. 그때 대체치료(맨발걷기)에 대한 가능성을 문의하였으나 면역력이 약하므로 극구 반대하였다 한다. 이 부분에서 나 또한 그러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한양방 협진체계가 가장 잘 되어있다고 할 만한 병원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한의학계와 서구의학계가 공존하고 협진하는 체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도 이럴진대 대체의학계의 치료법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치료성공률이 50% 이상 된다면 환자나 보호자도 당연히 그러한 치료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20% 혹은 5%라도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서구의료계는 판단하였으므로 자신들의 방법을 진행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이 정말 환자를 위하는 방법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이번 지인의 치료에 있어서도 맨발걷기가 감염 위험성이 있지만 몸의 체력을 최대한 유지시키거나 증진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환자나 가족들의 책임 하에 결정할 수 있었다면 하는 강한 아쉬움을 지인을 말하였다. 대체의학을 포함하여 한의학계와 서구의료계는 정말 환자를 위하는 본연의 자세로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는 근본적인 의료체계를 세워야만 한다. 오히려 서구의료계는 한의학계의 좋은 부분을 받아들여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한의학계에 대한 우리 서구의료계의 전향적인 자세를 바란다.

나의 치과수련 선배님의 아버님도 같은 날 임종하셨다. 아버님은 너무나 건강하셔서 약 2주일 전까지 함께 예배에 참석도 하셨다 하였다. 몇 년 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으셨지만 워낙 건강하셨고 아침 일찍 간단한 운동을 하시고 아침을 하시고 신문도 읽으시고 잠깐 주무셨는데 그대로 임종하셨다고 한다. 임종 이후 과정이 나의 어머님과 비슷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적어본다. 내 어머님을 포함하여 건강하신 노인분들이 자신의 집에서 이렇게 편안히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 참으로 반길 만한 상황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재앙에 가깝다. 선배님의 아버님은 몇 년 전 심장 스텐트 시술기록이라도 있어서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비교적 쉽게 발부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어머님은 임종 몇 년 전까지 병원기록이 거의 없었다. 고혈압 약 정도만 내과에서 받는 정도였다. 이러한 분이 약 2주일 정도 누워 계시다가 임종하셨는데 나를 포함한 온 가족이 피의자 신분이 된 느낌이었다.

연로하셔도 사회적 체계 안에서 건강하다고 파악되는 분이 사망하시면 체계적인 조사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어머님과 선배님의 아버님은 형사와 과학수사대가 파견되어 사진을 찍고 조사를 하였다. 나는 이 상황에서 의료인으로서 좀 더 민감하게 느낀 부분을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사망진단서에는 자연사 항목이 없다. 내 어머님은 병인이 없으므로 혹시 모르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엄격한 조사를 진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선배님의 아버님은 심장질환 연관성으로 사망진단서가 비교적 쉽게 발부되었지만 그러함에도 조사를 받았고 나의 어머님의 경우 병원에서 원인미상으로 사망진단서가 발부되어 그야말로 장례절차는 모두 정지되고 최종적으로 검사의 판단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논하기에는 아직도 가마득히 멀다는 생각이지만 나는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경험을 하면서 사망진단서에 자연사 항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사는 가장 평안한 죽음이며 사회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죽음에는 최소한의 절차만으로 고인과 그 가족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배우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동의하고 일정한 연령이상이면 불필요한 사회적 절차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수사대까지 와서 고인을 발가벗겨 범죄 혐의를 찾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가족 간의 재산다툼 가능성, 타살 가능성을 위하여 온 가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인 절차인가? 의사가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사망진단서에 그 원인을 분명히 밝혀야만 인간의 사망이 완료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가 의료인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단 의료분야만이 아니라 법조계, 교육계 등 현대사회가 해당분야의 전문가 집단의 역할을 대부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각 분야의 최종적이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보루는 다수의 국민이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고 지향해야 할 민주사회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영호 / 의료인, 허영호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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