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자족도시의 미래, ‘지역순환경제’로 해법 찾는다④ 울산광역시

울산동구 조선소 전경

 

①자족도시 꿈꾸는 고양, ‘대기업 유치’만 해법일까
②지역화폐가 지역순환경제 이끈다 - 인천광역시 ‘인천e음’ 성공사례
③지역순환경제 위한 법제도 제정 가능한가 - 부산시 지역 재투자 조례 
④지역순환경제 활성화 위한 거버넌스 구축 – 울산광역시 동구  
⑤쇠퇴하는 지방도시, 영국 최고의 도시로 거듭나다 - 영국 프레스턴
⑥프레스턴 CWB모델의 핵심, ‘진보적 조달체계’ 구축
⑦지역재투자 위한 커뮤니티 은행 성공할까

[고양신문] 과거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울산광역시 동구 지역(구 방어진읍)은 1972년 현대조선 울산조선소(현 HD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가 들어서면서 대도시로 성장했다. 현대라는 대기업이 지역에 자리 잡고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울산 동구는 한때 평균 소득이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젊고 활력 넘치는 도시로 각광 받았다. 조선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소비를 창출하고 이에 기반한 2, 3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전반적인 지역경제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시작된 조선산업 침체로 울산 동구 지역경제 전반에 위기가 닥쳐왔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실직 사태로 2018년 정부에서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됐고 급격한 인구감소로 인해 현재는 지방소멸 위기지역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작년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울산 동구는 인구증감률이 –2.60%로 ‘소멸 우려’지역으로 꼽혔다. 한때 전국적으로 가장 잘나가던 산업도시가 주력산업 불황으로 인해 이제는 소멸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전국 유일 진보정당 기초자치단체장을 선택한 울산 동구는 현재 새로운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대기업 의존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영세기업, 사회적경제 영역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활로를 찾는 ‘지역순환경제’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 이번 호에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안적 경제모델을 준비 중인 울산광역시 동구 사례를 살펴본다. 

조선업 쇠퇴, 대기업 이탈로 지역경제 피폐화
울산광역시 자치구 중 하나인 울산 동구는 국내 최대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이 자리한 곳이다. 과거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이곳은 70년대부터 조선소를 통해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업 특성상 인력이 많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보니 대규모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울산뿐만 아니라 타지역 사람들까지 동구로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다. 인구 증가는 대규모 택지개발과 상권형성으로 이어졌고 문화, 복지시설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인프라 투자도 이어지면서 주민들 삶의 질도 높아졌다. 때문에 울산 동구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 상위 10위권 내에 자리할 정도로 역동적인 도시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주력산업이었던 조선업의 불황은 도시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2015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위기로 인해 이곳에서는 대규모 해직사태가 발생했고 해고노동자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지역경제가 피폐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급기야 지역산업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최근 본사뿐만 아니라 주력 사업부서마저 하나둘 서울과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HD현대그룹의 통합 연구개발센터(R&D센터)가 성남시 분당구에 들어서며 울산 동구에 있던 연구개발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울산동구 중심에 자리한 HD현대중공업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 전경. 과거 조선업 호황으로 울산동구는 한때 전국에서 손꼽히는 잘사는 도시가 됐지만 산업침체와 대기업이탈 등의 문제로 현재 심각한 지역경제 침체위기를 겪고 있다. 
울산동구 중심에 자리한 HD현대중공업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 전경. 과거 조선업 호황으로 울산동구는 한때 전국에서 손꼽히는 잘사는 도시가 됐지만 산업침체와 대기업이탈 등의 문제로 현재 심각한 지역경제 침체위기를 겪고 있다. 

지역경제 침체는 인구감소로 이어졌다. 작년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울산 동구는 2018~2020년 인구감소율이 –2.60%로 ‘소멸우려’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20만에 달했던 인구는 현재 15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고령화로 인한 자연적인 인구감소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공동체 부 구축’전략 주목한 울산동구
“지금까지 현대라는 대기업에 의존하면서 도시가 성장해왔는데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규모가 작더라도 지역 내부에서 지역경제가 순환되고 발전하는 그런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찾게 된 거죠. 작년부터 부분적인 고민이 있긴 했지만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울산동구에서 추진하는 지역순환경제를 고민하고 있는 방석수 울산동구청 비서실장의 이야기다. 작년 6월 전국 유일 진보정당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된 김종훈 울산동구청장은 취임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중 영국 프레스턴 시를 주목했다.

영국 북부지역의 작은 소도시인 프레스턴은 제조업 쇠퇴와 긴축 정책,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 등의 타격으로 한때 가장 궁핍한 도시로 전락했던 곳이지만 2011년부터 시작된 ‘공동체 부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전략을 기반으로 진보적 조달체계, 생활임금 도입, 집단소유권 및 민주적 참여 지원 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 지역 내에서 순환되도록 만들고 경제 여건을 크게 개선했다. 그 결과 프레스턴은 2020년 최근 15년 내 가장 높은 고용률과 함께 가장 낮은 비경제활동인구를 달성했고 2018년에는 영국에서 주거와 노동 여건이 가장 크게 개선된 도시로 선정됐다. 

방석수 울산동구 김종훈 구청장 비서실장. 그는 "현대라는 대기업에 의존해왔던 지역경제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할 때"라며 "규모가 작더라도 지역 내부에서 지역경제가 순환되고 발전하는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추진 중이다"라고 전했다.
방석수 울산동구 김종훈 구청장 비서실장. 그는 "현대라는 대기업에 의존해왔던 지역경제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할 때"라며 "규모가 작더라도 지역 내부에서 지역경제가 순환되고 발전하는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추진 중이다"라고 전했다.

방석수 비서실장은 “프레스턴 시는 우리 울산동구와 인구수도 비슷했고 한때 산업중심도시에서 쇠퇴과정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많았다”며 “무엇보다 진보적 성향의 영국 노동당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주도해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을 이끌었다는 점을 눈여겨 봤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진보당 입장에서는 울산동구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강했던 지역이고 정책추진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지역 기반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당의 대안경제 모델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마침 올해 4월 민간 연구기관인 희망제작소에서 마련한 영국 프레스턴 방문 연수 일정에 김종훈 구청장과 울산동구 공무원들이 동참하는 기회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전략을 통한 지역순환경제 모델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경제 강화 통한 지역경제 활로 모색
프레스턴의 성공사례 중 울산 동구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바로 공공조달 시스템 개선이다. 이를 위해 울산 동구는 먼저 현재 예산과 지출구조, 공공조달의 지역 내 지출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다. 방 비서실장은 “현재 파악한 바에 따르면 동구 자체적으로 집행하는 계약규모가 약 300억원 정도 되는데 이중 동구에 소재를 둔 지역기업에게 조달되는 비중은 약 40%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지출구조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 어떤 부분부터 해결해 나갈지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라고 이야기했다. 

조달체계 개편뿐만 아니라 이를 맡아서 수행할 사회적 경제 주체들의 역량 강화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석수 비서실장은 “조달방식 개선을 통해 사회적 경제 분야와 같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공공적 역할도 하는 경제조직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라며 “다만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공동체적 마인드와 자생력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공공의 지원이 뒤따른다고 해도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김종훈 구청장은 프레스턴을 다녀온 뒤 곧바로 지역 사회적 경제 협의체와 간담회도 가지고 8월에는 토론회를 마련하는 등 사회적 경제 당사자들과의 정기적인 소통창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8월 울산동구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
지난 8월 울산동구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


공공조달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별개로 울산 동구는 내년 사회적 경제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그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회적 경제 영역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주축으로 삼을 계획이다. 물론 조례제정 같은 이슈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경제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방 비서실장은 강조한다. 그는 “단순히 관급공사를 지역업체에 맡기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조달체계 전환을 통해 지역사회 경제공동체가 함께 성장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동구에 환경문제와 마을공동체, 숲 체험 등을 주제로 120명 정도 참여하는 100여명의 마을교사 그룹이 있어요. 이분들이 교육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학교나 마을 곳곳에서 기후위기, 자원순환 관련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청에서 지원예산을 마련해 육성하는 그림을 고민 중입니다. 큰 기업도 중요하지만 이런 작은 협동조합이 마을에 뿌리 내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 경제 기반도 만들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지역공동체가 튼튼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역순환경제에 기반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첫발을 뗀 울산 동구. 영국 프레스턴 시에 비해 정치적 환경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지만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방석수 비서실장은 “형식보다는 기반을 강화시키면서 사회적 경제의 저변을 자연스럽게 넓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당장 단기적 목표보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매우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전략들을 모색 중이라고 답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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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형 울산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장
손은형 울산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장

“사회적 경제 내 협력·교류 많아져야”

짧은 인터뷰- 손은형 울산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장

“관의 지원확대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경제 영역 내에서 서로 교류협력하는 장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끼리 서로 상품을 구매하고 순환구조를 마련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거든요.”

울산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는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던 지난 2019년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간의 네트워크 모임에서 시작했다. 타 지역에 비해서도 열악했던 동구 사회적경제분야 상황은 역설적으로 함께 뭉쳐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이듬해인 2020년 협의회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됐다.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자활기업이 하나의 협의체로 통합된 것은 울산시에서 동구가 유일하다. 

올해부터 2대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손은형 ㈜다한기술 대표는 올해 6월 김종훈 구청장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현재 담당부서, 구의회 등과 정기적인 회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지역순환경제 전문가인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와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토론자로 참여한 손 회장은 동구지역 사회적기업들이 작년 한 해 1만3000명이 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서비스를 펼쳤으며 150명에 달하는 고용창출을 이끌어내는 등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다시금 환기시키는 대목이었다. 

손 회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 경제 영역 안에서 고용창출도 많이 이뤄지고 있고 직간접적인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현대중공업이 동구를 먹여살린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지금부터라도 지역 소상공인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사회적 경제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 회장은 “공공조달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경제 내부에서도 서로 상품을 구매하고 이 안에서 순환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자생력을 갖추지 않겠느냐”며 “동구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범위를 넓혀 고양시 같은 타 지역 사회적경제 업체들과도 협업체계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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