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미지=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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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여러분은 ‘유보통합’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을 의미한다. 유아교육법에 근거하여 유아교육은 학교로서 유치원에서 한다. 보육은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한 각종 어린이집에서 하는 사회복지서비스다. 유치원은 학교이고 어린이집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의미다. 학교로서 유치원과 사회복지시설로서 어린이집을 합하는 시도가 유보통합이다. 그런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누리과정’이 생겨서 3~5세 유아 대상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동일한 교육ㆍ보육 과정을 운영해왔다. 어린이집에 가든 유치원에 가든 누리과정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돌봄도 받고 배우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돌보는 시설과 교육하는 시설이 따로 되어 있는 우리와 달리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교육과 돌봄을 하나의 체계에서 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도 영유아기 교육과 돌봄을 통합하는 개념으로서 ECEC(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네트워크 구축을 회원국 간 권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던 유치원에 더하여,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을 통해 어린이집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 저출산 대응의 하나로서 어린이집 확대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유치원ㆍ어린이집 이원화 체제가 더욱 굳어졌다.

둘로 나뉜 교육ㆍ보육체계가 무엇이 문제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로서 유치원과 사회복지시설로서 어린이집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우리의 ‘똑같은’ 아이들이 질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결과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즉 유보통합 시도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유보통합 시도가 더욱 구체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진 유보통합은, 그러나, 실패했다. 시설, 교사 자격, 재원조달 형태, 평가 체계 등 영역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이에서 너무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과정이라도 공통으로 만들자고 하여 ‘누리과정’이 3~5세 아동 대상으로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많이 변하였다. 태어나는 아이 수가 급감하면서 어린이집, 유치원 이렇게 나누면서 시설 유지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성장 과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해야 하는 교육ㆍ돌봄의 질적 수준 격차에 대한 문제 의식도 높아졌다. 그래서 보육과 교육 모두의 관점에서 유보통합은 해야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유보통합을 할 것이냐 하는 과제가 있다. 

과거에는 각 영역에서의 다름을 어떻게 같음으로 만들지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유보통합을 시도하였다. 그러다보니 논쟁의 순환고리 속에서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지 못했다. 일단 울타리(관리체계)를 쳐놓고 어떤 나무를 심고 가꿀지(각 영역의 쟁점 사항)를 논의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떻게 가꿀지 논의에 집중하다 보니 나무를 심을 울타리는 만들지도 못했다. 그래서 금년 유보통합 논의에서는 관리체계의 일원화가 우선 등장했다. 사회복지시설로서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업무를 학교로서 유치원을 관리하는 교육부로 넘겨서 교육ㆍ돌봄의 일원화된 관리체계를 만드는 과제다. 교육ㆍ돌봄의 융합서비스를 관리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교육부의 역할 전환 및 확대이다. 교육부라는 울타리를 우선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 시설, 교사 자격, 재원조달 형태, 평가 체계 등 영역에서 어떤 나무를 심고 가꿀지 논의를 하자는 접근이다.

그래서 현재 복지부의 영유아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나와 있다. 개정안에 대해 여야가 당연히 합의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정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추진해 왔던 과제가 유보통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합된 교육ㆍ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울타리로서 교육부로 관리체계 일원화가 이루어지면 이제 본격적으로 개별 정책 영역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가 역시 돈, 재정이다.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이 교육부로 가게 되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던 예산이 당연히 지속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보통합 시행을 앞두고 지역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30일 이경혜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이 ‘어린이집 유보통합과 정책지원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한 모습. 
유보통합 시행을 앞두고 지역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30일 이경혜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이 ‘어린이집 유보통합과 정책지원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한 모습. 

문제는 지자체다. 지자체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교육부의 교육청으로 간다고 지자체장들이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 쓰던 예산을 교육청으로 넘겨줄 것인가라는 불안감이 높다. 특히 어린이집 현장에서 높다. 아이들은 교육청으로 왔는데 지자체가 지금까지 쓰던 돈을 넘겨주지 않으면 유치원도 덩달아 힘들어진다. 교육청에서 지원해야 할 아이들 수만 늘어나고 지자체가 돈을 주지 않아서 교육청 예산 형편이 어려워지면 유치원 지원도 함께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설마 지자체장들이 아이들 돈을 넘기지 않겠냐고들 이야기한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이미 모여서 성공적인 유보통합을 위한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초지자체, 즉 시장과 군수, 구청장들 중 ‘ㅇㅇ수당’해서 표 획득에 유리한 아이템을 찾는 대가로 교육청으로 간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예산을 더 이상 배정하지 않을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시도 지사가 시장, 군수, 구청장을 임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되겠는가? 가뜩이나 저출생, 지역소멸 이야기들을 하는 마당에 만약 그런 결정을 하는 지자체장이 있다면 부모들을 비롯한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그래도, 안전장치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제안한다.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와 전국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함께 국민 앞에서 선언하는 것이다. “기존 보육예산과 향후 증가율을 감안한 예산을 유보통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통합 교육ㆍ보육시설 운영 지원에 쓰겠다.” 지역소멸이나 저출생 위기에 대응하는 기초 지자체장들의 진심을 보일 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 환경 조성에 노력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보일 때이다. 226명의 시장님, 군수님, 구청장님 중 어느 한 분이라도 먼저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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