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고양신문] 원치 않는 섹스를 경험한 적이 있다. 청소년기의 일이다. 불쾌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여성 청소년인 나에게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공간은 없었다. 청소년기에 성에 관심을 가진 나를, 부모의 허락도 없이 먼 거리에 있는 낯선 이를 만나러 간 나를 세상이 비난할 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가 성과 관계에 대해 욕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그 욕망을 안전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줬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나의 불쾌함과 두려움이 ‘안 된다’는 금기의 언어 속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고립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교육이 폭력을 예방하는 것을 넘어 인권을 말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전하지 않아서 집을 나왔다. 스무 살 가을 무렵의 일이다. 상담소에서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한결같았고, 두 번 다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7년이 지났다. 최근까지도 나는 스스로를 가정폭력 피해자로 명명하지도, 아버지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지도 않았다. 내게 일어난 일을 직면할 여유가 없었고, 사법적 절차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올 용기가 없었다. 

몇 달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다시 마주쳤다. 한결같은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때 그 일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주변 동료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내가 ‘가정폭력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지역의 여성폭력 피해자 상담소에 연락을 했다. 

수년을 헤매고 오랜 시간 침묵했던 마음이 간신히 닿았다. 여성폭력 상담소를 찾아가는 일은 내게 그런 일이었다. 그 자리에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기까지 지켜봐 주고 곁을 내어주는 상담사들이 있었다. 나는 결국 주민등록 열람 제한 등의 보호조치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번의 상담으로 끝나더라도, 변화를 선택하지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됐다.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성인권교육 예산과 각종 여성폭력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예산이라는 숫자 속에 켜켜이 쌓여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정부가 손쉽게 지워낸 자리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성인권교육을 통해 나의 욕구와 권리를 존중받는 경험을 처음 했을 사람들, '거절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받았을 사람들, 더 많은 욕구와 권리의 세계를 탐험하며 희망을 얻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수많은 망설임 속에서 상담소를 찾아갔을 사람들, 자신의 피해경험을 말하고 해석할 용기를 냈을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피해자의 곁에 있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결국 정치는 사람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떠올리고 기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폭력을 겪고, 권리의 침해를 겪은 여성, 청소년, 소수자의 삶을 지워서는 안 된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

다가올 국회의 예산 심사에서 성인권 교육 예산을 비롯한 청소년 예산과 각종 여성폭력 피해 예산을 원상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202년 정부 예산안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름이 다시금 호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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