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 대표작가 명화전
<사시산색(四時山色) 그리고 바람>
12월 17일까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왼쪽부터 천경자, 박래현, 장우성의 작품.
왼쪽부터 천경자, 박래현, 장우성의 작품.

[고양신문] 놓쳐서는 안 될 전시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10일 시작해 다음달 17일까지 계속되는 <사시산색(四時山色) 그리고 바람> 전이다. 전시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박서보 등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명작이 전시되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23 한국근현대명화전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미술 유학생이자 서양화가인 고희동을 시작으로 이상범, 이응노, 이우환, 천경자 등 50명의 작품 총 80점을 망라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과 고양문화재단을 비롯한 타 미술기관 14곳의 소장품으로 구성했다. 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던 작품들도 다수 만날 수 있어 의미를 더한다.

변시지 작 '고양의 봄'을 테마로 한 영상작품.
변시지 작 '고양의 봄'을 테마로 한 영상작품.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변시지 작가의 ‘고양의 봄’을 테마로 한 영상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작가는 2004년에 고양시를 상징하는 백송, 장미, 까치, 그리고 고양시 주변의 산을 천에다가 그렸다. 이 작품은 고양문화재단이 개관할 때 어울림극장에 면막(面幕)으로 설치되기도 했다.

1부 ‘사시산색(四時山色)을 그리다’에서는 근대 미술을 공부한 화가들이 그리고자 했던 우리의 자연과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시산색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산의 풍경’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고희동의 ‘쌍수도’를 시작으로 전통 산수화를 근대적 화법으로 그린 이상범의 ‘사계산수도’, 한국화의 현대화를 추구한 성재휴의 ‘산’, 서양의 화풍을 한국적 인상주의로 구현한 오지호의 ‘항구’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숙자, 맥파-황맥, 1980, 순지 5배접, 암채, 181.8×227.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숙자'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이숙자, 맥파-황맥, 1980, 순지 5배접, 암채, 181.8×227.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숙자'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2부 ‘그리고 그리다’에서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분단이라는 굴곡의 시대를 겪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상의 풍경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보리 그리는 화가’로 불리는 이숙자의 대형작품 ‘맥파(麥波)-황맥’이 자리하고 있다. 이숙자는 고양시의 원로 작가로 아람미술관 개관전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는 이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6개월 동안 보리씨앗 5만개를 하나하나 그렸다고 한다. 이번전시에서는 이숙자의 청맥과 황맥, 하얗게 된 백맥까지 3점의 작품으로 보리밭의 사계를 살펴볼 수 있다. 작품은 하나같이 채색의 입체감을 살려내어 생동감을 더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수근, 복숭아, 1957년경, 캔버스에 유채, 28x5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박수근연구소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박수근, 복숭아, 1957년경, 캔버스에 유채, 28x5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박수근연구소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박수근은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를 회백색으로 표현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리고 표면을 거칠게 마무리하는 작업 방식은 ‘고목과 여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복숭아’는 특별하다. 소반과 복숭아 9개를 그린 이 작품은 연두색과 분홍색이 칠해져 질감뿐만 아니라 색감까지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작품이다. 전시를 설명하던 큐레이터는 “이 작품 하나만 보고 가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귀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이응노의 ‘등나무’, 천경자의 ‘전설’, 박래현의 ‘부엉이’ 등을 통해서는 한국 채색화의 흐름이 보인다. 이중섭의 ‘두 어린이와 복숭아’, ‘꽃과 노란 어린이’, ‘바닷가의 아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들을 생각하며 그린 것으로, 가족에 대한 그의 애틋함이 한가득 묻어난다. 장욱진은 ‘나무’, ‘가로수’, ‘까치와 나무’로 가족 사랑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최영림의 ‘전설’은 전설과 설화를 소재로 하여 향토적 정감이 두드러진다. 제주의 풍토와 정서를 그려 ‘바람의 화가, 폭풍의 화가’로 불리는 변시지의 ‘고향생각’, ‘노인과 조랑말’은 독특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노란색으로, 제주의 풍경을 검은색 윤곽으로 표현하여 강렬한 터치감이 돋보인다. 작품 속 등장인물인 지팡이를 짚은 초로의 행색은 삶에 대한 깊이가 묻어나는 듯하다. 

유영국, 양(陽), 1966, 캔버스에 유채, 128×80.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유영국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유영국, 양(陽), 1966, 캔버스에 유채, 128×80.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유영국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3부 ‘바람을 그리다’에서는 한국적 추상을 추구한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펼쳐진다. 김환기를 비롯해 유영국, 이우환, 윤형근, 이준, 김창열 등의 보석 같은 작품들과, 박서보의 초기 묘법 시리즈도 한자리에 모여있다. 

김환기의 ‘월광(月光)’과 이준의 ‘달밤’은 같은 달을 그렸지만, 전자는 자연 추상으로, 후자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차별화된다. 단순한 선과 푸른 색으로 산과 산에 걸린 달을 표현한 김환기의 작품에서는 우리 고유의 정서가 묻어난다. 이준 작가는 고양시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과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한 인물이라 의미가 있다 하겠다.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의 작품 ‘양(陽)’은 강렬함을 품고 있다. 배경의 산과 들판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붉은색으로 묘사했고, 허공에 떠 있는 태양은 노란 원색으로 그린 걸작이다. 작가의 가족이 직접 소장하고 있어 일반 전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이다. ‘물방울 작가’라 불리는 김창열의 ‘회귀’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상징한다. 프랑스에서 활동할 때 조국을 향한 그리움을 천자문과 물방울로 담아냈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에는 추상 단색화가들의 작품이 이어진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 5점을 선보인다. 얼마 전 타계하여 안타까움을 남긴 그가 묘법을 그리기 시작한 일화는 유명하다. 어린 아들이 연습장에 글씨를 쓸 때 제대로 되지 않자 연필로 죽죽 그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작가의 초기작들이 그를 추억하게 한다. 

이우환, 바람과 함께, 1989, 캔버스에 유채, 혼합안료, 181.5×227.3×4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이우환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이우환, 바람과 함께, 1989, 캔버스에 유채, 혼합안료, 181.5×227.3×4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이우환 [사진=고양문화재단 * 재배포 및 DB 금지]

관람 동선의 마지막은 이우환의 대작 ‘바람과 함께’가 장식하고 있다. 우리의 근대 미술은 서양미술을 공부하면서 움트기 시작했다. 서양의 기법과 재료를 배우며 걸음마를 떼었지만, 작가들은 우리만의 것을 주체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런 움직임의 대표작이 이우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정채경 주임은 “이번 전시에는 이준 선생이나 이숙자 선생처럼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근현대 작가들도 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의미 있으며, 한국 미술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흐름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 속의 인간이라는 주제로 기획을 했고, 그 자연의 품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다. 작가들이 바라본 시대적 풍경을 느껴보시기를 추천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화에서 시작해 추상화로 마무리되어, 관람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적의 구성이 돋보인다. 이미 다수의 지역 명사들이 전시장을 찾았고, 전시의 감동을 되새기기 위해 재방문하는 관람객들도 많다고 한다. 로비에는 작가들의 화집이나 도록을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와 이숙자 작가의 보리밭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이 설치돼 있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4000원이고, 고양시민은 50% 할인을 받는다. 고양시립 아람미술관(031-960-0180, 월요일 휴관)과 고양문화재단 콜센터(1577-7766)와 홈페이지(www.artgy.or.kr)에서 문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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