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쳐, 고양을 그리다]⑦

자유로 진입할 때 보이는 건축물의 정체는?
정자, 아름다운 바깥 경치를 담는 액자 
정발산 인근에 살았던 문신 사재 김정국 

▲망원정은 정자 내부에는 희우정 현판이 걸려 있고 자유로 쪽에서 보면 망원정 현판이 걸려 있다. 액자처럼 된 프레임에 멀리 아파트 단지와 노들섬이 보인다. ⓒ 오창환
▲망원정은 정자 내부에는 희우정 현판이 걸려 있고 자유로 쪽에서 보면 망원정 현판이 걸려 있다. 액자처럼 된 프레임에 멀리 아파트 단지와 노들섬이 보인다. ⓒ 오창환

[고양신문] 예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풍광 좋은 곳에다, 그 풍광을 더 즐기기 위해서 정자(亭子)를 지었다. 정자는 보통 기둥 위에다 지붕만 얹는 형식인데, 실용적인 용도의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멋을 내서 지은 경우가 많다.
정자는 좋은 풍광에 스스로 한 구성 요소가 되어서 어반스케쳐들도 정자를 즐겨 그린다. 외부에서 정자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정자가 만들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정자 안에서 밖의 풍경을 그리는 것 또한 좋다.
나는 고양시에 사니까 자유로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합정동 쪽에서 자유로에 진입하면 오른편 위로 정자가 하나가 보인다. 차로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데 정자를 그리기 위해 그리로 갔다.

차경(借景)의 끝판왕

망원역에서 내려서 망원시장을 거쳐서 예쁜 카페들이 모여있는 망리단길을 지나면 망원정이 나온다.

▲위 사진은 망원동 쪽에서 본 망원정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망원정 내부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 오창환
▲위 사진은 망원동 쪽에서 본 망원정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망원정 내부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 오창환

망원정 자리는 원래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세종 6년인 1424년에 별장으로 지은 곳인데 정자를 지은 다음 해에 세종께서 계속되는 가뭄을 걱정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둘러보시다가 효령대군의 새 정자에 올랐을 때 마침 비가 내렸다.

세종께서는 가뭄에 단비를 보고 매우 기뻐하셔서 그 정자의 이름을 기쁠 희(喜) 자에 비 우(雨) 자를 써서 '희우정(喜雨亭)'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 후 성종 15년(1484)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희우정을 효령대군으로부터 받아서 수리를 했는데 성종이 멀리 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여 '망원정(望遠亭)'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현재 망원동이라는 이름도 물론 망원정에서 나온 것이다.

망원정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서울시가 1987년에 망원정 정자터를 발굴하고, 1989년 7월 정자를 재건했다. 1990년 망원정 터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로 지정했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지나서 올라간 망원정에서는 한강과 그 너머의 아파트 단지 그리고 한강 중간에 있는 노들섬이 보인다. 그 옛날 이 자리가 멋진 곳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로가 너무 가까이 있고 빠르게 달리는 차량의 소음이 좀 성가시다.

그림을 그리려고 망원정에 자리를 폈다. 예부터 한옥의 문이나 창문은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액자라고 본다. 차경(借景)이라고 해서 외부의 풍경을 빌린다는 개념으로 경치를 감상한다. 정자는 기둥만 있고 사방이 뚫려 있으니까 차경의 끝판왕이라고 하겠다.

망원정의 기둥과 지붕 그리고 난간을 프레임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 보이는 한강 풍경을 액자에 든 그림처럼 그렸다. 망원정의 단청과 한강 풍경이 대비되는 그림이 되었다.

고양시에 숨겨져 있는 예쁜 곳

망원정을 그린 다음에 바로 정자를 그릴 기회가 생겼다. 어반케쳐스 고양에서 11월 정기 모임을 고양아람누리 뒤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하기로 했는데, 그 공원에는 정발못이라고 하는 작은 연못과 사재정(思齋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전통 연못 정발못과 사재정 전경. 조화롭고 아름답다. ⓒ 오창환
▲전통 연못 정발못과 사재정 전경. 조화롭고 아름답다. ⓒ 오창환

사재 김정국(思齋 金正國 1485~1541) 선생은 1509년(중종 4)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518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 조광조가 숙청당하는 기묘사화로 삭탈관직된 후 고양에 내려와 정발산 인근에서 약 20여 년을 학문을 닦으며 저술과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1537년에 복직하여 다양한 관직을 거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예조·병조·형조의 참판을 지냈다. <사재집(思齋集)>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고양시 공원 관리과에서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자의 이름을 사재정이라 명명하였다.
사재정은 기둥 4개의 아담한 정자인데 연잎이 떠있는 아담한 정발못과 잘 어울린다. 고양시에 숨겨져 있는 예쁜 곳 중 하나인 듯하다. 어반스케쳐스 고양 멤버들이 연못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그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서 좋다.

▲사재정 안에서 밖을 보고 그린 그림. 단청에 색을 칠하지 않으니까 액자 프레임이 더 강조된다. ⓒ 오창환
▲사재정 안에서 밖을 보고 그린 그림. 단청에 색을 칠하지 않으니까 액자 프레임이 더 강조된다. ⓒ 오창환

어디나 액자가 되는 정자

나는 먼저 망원정에서 그렸던 것처럼 정자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그렸는데 이번에는 약간 폭을 넓혀서 액자 3개를 배치한 것처럼 그렸다. 그리고 정자의 단청을 채색하지 않고 액자 안에 있는 풍경만 채색했더니 액자 안의 그림이 더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런 그림을 현장에서 그릴 경우 좌우로 얼굴을 돌려가면서 그리게 되는데, 그러면 왼편과 오른편 그림이 사진을 찍어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넓게 펼쳐져서 보인다. 안에서 그리는 그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사재정을 한 번 더 그렸다.

이렇게 밖에서 보이는 풍경과 안에서 보이는 풍경을 같이 그리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정자는 멋진 풍광을 더 멋지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그림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흥미로운 사실은 옛날에 만들어졌던 정자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고양 대표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고양 대표

아마도 기둥만으로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어 건축적으로 불안정한 건물인 데다가 풍광 좋은 곳에 지어 자연재해나 인위적인 공격에 더 취약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없어진 정자터에는 지금은 대부분 새로운 정자가 서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정자터는 지금도 여전히 정자를 세우기에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자에 올라 서면 어디나 액자가 되고 나의 그림 소재가 된다.

▲사재정 전경. 상록수 숲에 단풍이 들고 있다. ⓒ 오창환
▲사재정 전경. 상록수 숲에 단풍이 들고 있다. ⓒ 오창환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