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타운 고양을 벗어나기 위한 제언

정진경 전 청와대 행정관
정진경 전 청와대 행정관

[고양신문]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 콘텐츠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음악·영화·드라마·예능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 결과 해외 곳곳에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팬층이 두텁게 형성됐다. 특히 K-pop의 도약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제 국내 음악산업 수출액은 1조2000억원을 웃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음악산업 수출액은 2016년 4억4000 달러에서 2021년 9억4000만 달러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작년과 올해에도 싸이, BTS, 블랙핑크, 뉴진스 등이 빌보드 HOT100에 오르며 K-pop이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공고히 자리매김했음을 증명했다.

2019년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K-pop을 좋아하는 글로벌 팬들의 90%가 한국여행을 희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그들을 ‘취향저격’할 관광지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시에 ‘K-pop 성지’가 생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수많은 해외 팬들이 고양시로 '성지순례'를 오지 않겠는가. 만약 BTS 콘서트까지 열린다면 고양시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도시로 발돋움할 것이다. 이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CJ라이브시티만 무사히 완공된다면 반드시 실현된다.

CJ라이브시티 조감도.
CJ라이브시티 조감도.

CJ라이브시티는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 약 10만 평 부지에 개발 중인 복합문화단지이다. 흔히 K-콘텐츠라 부르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콘텐츠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부지 내에 ‘CJ라이브시티 아레나’라는 초대형 음악전용 공연장도 짓고 있는데, 자그마치 6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실내 객석이 2만 석에 이르고 실외에도 4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었다. 

우리나라에서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는 대구스타디움과 서울월드컵경기장, 그리고 잠실의 올림픽주경기장뿐이다. 그런데 월드컵경기장은 잔디훼손 우려로 콘서트 개최 허가를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올림픽주경기장은 리모델링 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 현재 수도권에는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 전무한 셈이다. 무엇보다 이곳들은 음악전용 공연장이 아니다. 그간 가수들이 체육시설을 빌려 공연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반면 CJ라이브시티 아레나는 기획·설계 단계부터 K-pop공연에 특화된 공연장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원하는 무대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연장이 될 것이다. 완공만 된다면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 전용 공연장이 된다. 미국 라스베가스의 유명한 공연장인 MSG스피어가 1만8000석 정도의 규모인데 CJ라이브시티 아레나는 무려 그 3배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공연을 위한 시설 및 환경 역시 국내외 최고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언제든 열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연장이 될 것이다.

많은 해외 가수들이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하고 싶어도 장소를 구하지 못해 포기한다. 해외 유명가수들이 무대에 들이는 제작비를 고려하면, 회당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공연을 여러 차례 열어야 한다. 그래야 수지 타산이 맞다. 말했듯이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콘서트가 가능한 곳은 올림픽경기장이나 월드컵경기장뿐이다. 그런데 이곳들 모두 현재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장소 섭외가 안 되니, 투어를 하는 가수들이 한국은 건너뛰고 일본 도쿄돔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CJ라이브시티 아레나만 완성되면 해외 유명 가수들의 초대형 콘서트가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고양시에서 말이다.

아레나는 국내외 가수들뿐 아니라 국내 관객들에게도 호재이다. 얼마 전 아이돌 국내 팬들 사이에서 가수 임영웅씨의 공연이 화제가 되었다. 공연은 올림픽공원 KSPO DOME(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됐는데 무대 환경이 그간 아이돌 무대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 규모부터, 모든 객석에서 임영웅씨의 표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360도로 배치된 초고화질 대형 스크린, 팬들을 위한 아늑한 대기 공간 등등, 콘서트 환경이 기존의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했던 환경보다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시의 CJ라이브시티 아레나는 KSPO DOME보다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고, 말했듯이 K-pop에 특화되어 설계되었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은 이곳에서 보다 높은 퀄리티의 콘서트를 열 수 있다. 아이돌 그룹들이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한다면 그 팬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CJ라이브시티 예정지 위치도.
CJ라이브시티 예정지 위치도.

그렇다면 CJ라이브시티가 계획대로 완공되었을 때, 고양시민들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첫째, 고양시가 드디어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벗고 문화의 도시로서 자체 생산력을 갖추게 된다. 오랫동안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하나다. 정주인구는 100만이 넘는데 일자리가 없고 유동인구가 없다. CJ라이브시티가 완공되고 바로 그 옆에 경기도가 추진 중인 방송영상밸리까지 들어서면 충분한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그야말로 K-콘텐츠와 방송문화 특화단지가 생기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각종 방송사와 연예기획사들이 이곳으로 옮겨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방송관련 일자리와 더불어 호텔을 비롯한 각종 관광업 일자리도 늘어날 것임이 자명하다.

둘째, 상권이 발달한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상권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마운트를 비롯해 상권 침체로 공실이 넘치는 라페스타, 웨스턴돔 같은 곳도 유동인구만 많아지면, 경쟁력을 갖추려는 임대인들과 상인들이 시설 투자를 늘릴 것이다.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게 했던 라페스타-웨스턴돔의 상권 침체가 시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일산 지역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진다. 1기 신도시가 들어선 지 30년이 지났다. 많은 고양시민들이 아파트 재건축을 꿈꾼다. 그에 비해 실제 진행은 지지부진한데, 위태로운 건설경기 때문에 아파트 재건축의 사업성을 더 조심스럽게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의심되는 이유는 또 ‘그 이유’이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 CJ라이브시티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면 아파트 재건축의 사업성에 대한 비전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이렇듯 CJ라이브시티는 고양시의 미래 먹거리다. 그냥 먹거리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고양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활로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업이 형편없이 축소되거나 백지화될 위험에 처했다. CJ라이브시티는 2024년 6월 완공을 목표로 2021년 10월에 착공했는데 올해 4월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건설 자재비와 인건비 등이 올라 건설사와의 기존 계약상으로는 공사를 이어가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금리까지 오르면서 자금조달마저 어려워졌다. 결국 각종 인허가 지체와 코로나 장기화,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공사가 지연된 셈인데, 이 때문에 완공시점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CJ가 경기도에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CJ는 연간 25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체상금을 내야 한다. 부과시점 기준을 2020년으로 잡으면 물어야 할 지체상금만 무려 1000억원 이상이다. 경기도는 지난 2020년 테마파크를 아레나 등 경험형 K콘텐츠 복합단지로 바꾸는 사업계획 변경은 승인했지만, 지체상금 문제가 걸린 완공기한 연장은 자칫 배임이나 특혜로 비쳐질 수 있어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지난달 CJ라이브시티 측은 기간연장과 지체상금 면제, 용적률 변경 등 사업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국토교통부 민관합동 PF조정위원회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다. 현재는 그저 조정만을 기다리는 상태이다. 

CJ라이브시티의 모기업인 CJ ENM은 3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만약 건설비용 증가와 지체상금 등의 문제가 겹쳐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CJ가 사업규모를 축소한다면 고양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재 중의 악재라고 할 수 있다. 사업이 축소되면 일자리 증가와 상권 활성화 등 고양시가 얻을 수 있는 이점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지화될 수도 있다는데, 그런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 당장 고양시와 국회의원들이 CJ라이브시티 사업이 폐지되거나 축소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비 지원을 타내든지 고양시 합작 프로젝트로 변경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발벗고 나서 경기도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CJ라이브시티 사업은 세금 한푼 들이지 않고 오로지 CJ의 자금과 대출로만 진행돼 왔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 사기업이 회사 자금으로만 이 정도 규모의 관광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하면 어느 지역이 되었든 두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만약 부지 선정을 경매로 진행했다면 전국 지자체들이 서로 유치하겠다고 앞다투어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 호재가 지금까지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았는데도 고양시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니 멀뚱멀뚱 있다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지역 정치인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말 못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체상금을 면제해 주고 국비라도 투입해서 완수하라는 말을 했다가는 자칫 대기업 편에 서는 정치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고양시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체면을 세우느라 놓치기에는 너무 큰 기회이다.

CJ라이브시티는 고양시민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타조라 부를 정도의 사업이다. 사업가치를 시민들에게 더 알리고 지체상금을 면제해주고 완공기한을 연장해 주도록 경기도를 설득해야 한다. 사업을 축소하려는 CJ와는 협상을 해야 한다. 원래 계획된 규모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말이다. 오히려 국비, 도비, 시비라도 지원해 '고양라이브시티' 사업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CJ라이브시티 살리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고양시가 드디어 베드타운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무사안일주의로 그 기회를 날려서는 아니 된다. 서두르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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