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십일월 초에 수확을 시작한 울금은 다 걷어 들이기까지 장장 열흘이 걸렸다. 예년 같으면 사나흘이면 수확이 끝났을 텐데 올해에는 수확이 하냥 늘어졌다. 농사가 풍년인 탓도 있었지만 한창 울금을 수확할 시기에 우르르 쾅쾅 폭우가 쏟아진 영향이 컸다. 울금은 무게가 5㎏ 가까이 나가는 덩이를 삽으로 떠서 서너 차례 힘껏 집어던져야 하는데 진흙이 덕지덕지 들러붙는 바람에 한층 무거워졌고 흙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수확하는 내내 곱절 힘이 들었고 덩어리진 울금을 잘게 쪼개야 하는 아주머니들도 애를 먹었다. 

어쨌건 수확을 끝낸 울금은 마대에 담겨 하우스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여섯 번의 세척을 기다리고 있다. 세척이 끝난 울금은 절편기로 편을 썬 뒤 건조기에 넣어 바짝 말리고, 경동시장의 전문업체에 싣고 가서 가루와 환으로 가공을 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면 참 좋겠지만 칠백여 유리병을 깨끗이 씻어서 고온에 말린 뒤 포장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한 해가 간다. 

그런데 문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밤 열 시까지 강행군을 해도 크게 힘든 줄을 몰랐는데 나이 육십을 앞둔 탓인지 이제는 오후 여섯 시만 되면 체력이 바닥나면서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 퇴근을 서두르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면서 멍하니 허공을 우러르곤 한다. 

김장만 해도 그렇다. 

작년에는 혼자서 삼백 포기에 달하는 배추를 혼자서 수확하고, 절이고, 씻었다. 내가 하우스 밖에서 배추와 씨름하는 동안 세 명의 여동생들은 재료를 손질해서 속을 만들었다. 그 과정이 어찌나 고되던지 올해에는 배추를 이백 포기만 심었다. 그 가운데 사십 포기가 고약한 날씨 덕분에 녹아버렸고 결국 나는 동생들과 함께 백오십 포기의 김장을 했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매제들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배추를 나르고 씻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김장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바로 큰대자로 뻗고 말았다. 

 

그런데 김장을 끝낸 다음 날부터 어깨가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울금을 씻기 시작해야 하는데 팔을 움직이기만 하면 어깨에 무리한 통증이 왔다. 이제껏 그 많은 농사를 지어오면서 한 번도 어깨가 아팠던 적이 없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드디어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일을 쉴 수도 없는 노릇, 살짝 난감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농부들이 늙어간다는 건 참으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골에 다니다 보면 내 나이는 막내 축에도 끼지 못한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 태반은 팔십 이쪽저쪽이다. 멀리 시골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농사짓는 우리 농장만 해도 오십 대 중후반이 태반이다.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 속한 산하농장들 또한 사십 대 보다는 육십 대나 칠십 대가 훨씬 많다. 
 

도시의 사정이 이러한데 도시를 먹여 살리는 농촌이야 오죽할까. 

최근 들어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차츰 커지고 있지만 늙은 농부들 손에 식량을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훨씬 심각한 문제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급격한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로 더 늦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농업을 고민해야 될 때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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