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송원석 문산고 교사
송원석 문산고 교사

[고양신문]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일 겁니다. 두 번째로 많은 인사말은 아마 “건강하세요”일 거라고 제 오른쪽 손목을 걸 순 없어도, 500원쯤은…^^

인사말로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만큼 상투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늘 사용해서 습관이 된 것이고 그래서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요즘의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국가적 돌림병은 ‘나’와 ‘우리’의 몸에 주목하게 했습니다. 일상의 단절이 가져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대단했습니다.

작년 2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을 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초등학교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2022년 2월 11일(토)

위궤양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아했나 봅니다. 몸에 큰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간 정상 수치의 1000배. 의사의 한숨 소리와 시작된 검진 결과 리포트는 30분이나 이어졌습 니다. 1000배라는 강렬한 수치에 압도되었는지 역시나 정상 범위에서 한참 떨어진 고지혈, 당뇨 결과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천 일 동안’, ‘천년의 사랑’도 아니고 ‘간 수치 1000배’라니. 천일 새벽기도와 함께 천 배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당장 뭐 어떻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1년 후에는 무슨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 같은 확신이 대뇌의 전두엽에 전달됩니다.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이 아니라서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렵습니다. 병의 원인과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해야 하니 간 초음파를 해야 합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원인은 알 것 같네요. 간염보균자도 아니니 정상 수치의 1000배라면 아마 음주이겠죠. 70% 기능이 상실되기 전까지는 증상도 없다고 하니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눈을 감아버린 결과라서 이제라도 눈을 떠야 할 것 같습니다. 새해에 늘 해오던 일반적인 작심삼일과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처방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처방을 내립니다. 하루 만 보 이상 걷기, 주말의 늦잠 대신 텃밭에서 아침이슬(참이슬X) 보며 나 이제 가노라 외치기, 간댕이가 더 붓지 않도록 아내에게 충성하기, 죽기 전에 담배 한 개비 정도는 괜찮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기, 혀가 즐거운 음식에서 간 좀 맞추는 음식으로 바꾸기 등등.

그리고 2023년 12월 현재

나의 작심삼일에 대해 ‘간’은 그래도 고생했다고 정상 수치의 5배를 성적표로 주었습니다. 가장 공정한 성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의 내가 모여 만든 결과이니까요. 수능 대박의 확률보다 만 배 정도 낮은 것이 아마 건강 대박이 아닐까요?

올해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 한 해의 결과를 평가하는 시기입니다. 독감이 유행인 학교는 곧 기말고사라 아플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생활기록부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교사나 몸을 돌볼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올라갑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면 쉬자’, ‘아프면 건강검진’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아프니까 사람이다’로 몸에 대한 예의를 저버립니다. 한 해의 마지막.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몸에 대한 예의’도 추가합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이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아프기 전에 미리 쉬어”라고 문자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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