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인공증식 두루미
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인공증식 두루미

[고양신문] 두루미가 올 겨울에도 우리나라에 날아왔다. 철원, 연천, 파주, 강화가 겨울 보금자리다. 정수리에 깃털이 없이 피부가 드러나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두루미는 단정학(丹頂鶴)으로도 부른다. 붉은 모자를 쓴 것 같기도 하고 왕관 같다고 하는 표현도 있다. 동아시아, 특히 한중일에서 주로 볼 수 있어서 세 나라 문화에는 고대로부터 두루미가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두루미를 선학(仙鶴)으로 부르며 용, 봉황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꼽는다. 용과 봉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두루미는 실재하기에 특별히 문학에서 일찍부터 자주 등장한다. 두루미가 처음 실린 문헌은 유교 경전의 하나인 시경(詩經)이다. 시경 소아(小雅)편의 '학이 울다(학명;鶴鳴)'라는 시에 '두루미는 늪지 깊은 구석에서 울어도 소리가 온 들판에 울려퍼진다'는 표현이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나서지 않고 숨어 살아도 이름과 뜻이 널리 퍼진다는 비유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신의 지혜와 덕을 단련하는 데 유용하다는 뜻의 '타산지석(他山之石)도 이 노래에서 시작한다.

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두루미박물관 전경

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두루미박물관 전경

중국에서 두루미 월동지로 가장 이름난 곳이 장쑤성 옌청(鹽城)이란 도시다. 소금의 도시라는 뜻이다. 황해 바다를 끼고 있어서 일찍이 2500여 년 전 춘추시대 무렵부터 소금의 주요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옌청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이가 582㎞나 되는 동쪽 해안을 따라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위성지도에도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드넓다. 황하와 회하(淮河), 양쯔강을 타고 대륙 깊숙이서부터 흘러나온 토사가 오랜 세월 동안 연안에 쌓여서 이뤄진 갯벌이다. 우리나라 서, 남해안 갯벌과 함께 황해 연안 갯벌을 이뤄 생태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연안의 철새 이동경로에 속해 봄 가을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는 다양한 도요새와 물떼새의 다양한 종과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등등 희귀한 야생조류가 모여든다. 옌청에서 겨울을 나는 야생 두루미들은 대한민국 고양시의 자매도시이기도 한 북쪽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의 자롱습지에서 번식한 무리다.

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내부 전경
옌청 두루미습지생태관광구 내부 전경
장쑤성 옌청습지 희귀조류 국가급 자연보호구 전경(옌청 철도역 전시 사진)
장쑤성 옌청습지 희귀조류 국가급 자연보호구 전경(옌청 철도역 전시 사진)

두루미 수난 사건이 벌어졌다. 옌청의 해안 갯벌과 주변 습지대에서 주민들이 총질을 하거나 그물, 농약을 놓아 두루미를 잡아 먹는다는 사실이 1982년 3월 광명일보 보도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이자 서기처 서기인 후챠오무(胡喬木)가 사건을 엄중하게 여겼다. 장쑤성 당국에 경위 조사와 해결책을 세우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제대로 시정되지 않았다. 1983년 2월 21일 인민일보에 '치치하얼 자롱습지보호구의 선학, 남쪽에 내려가도 평안치 못함'이라는 독자 글이 실렸다. '남쪽'이란 두루미 월동지 옌청이다. 후챠오무는 장쑤성 당위원회에 불호령을 내렸다. 두루미와 야생조류를 해치는 범법자를 엄벌에 처하고,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두루미 보호구를 긴급히 설치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후챠오무는 중국 최고 지도자 반열의 원로 정치인이다. 마오쩌둥의 비서를 25년이나 지내고 국가 중요 문서를 직접 작성하던 인물이다. 마오쩌둥도 '챠오무에게 기대야 밥 얻어먹는다'고 농담할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덩샤오핑도 중국공산당 내에서 으뜸가는 문장가라고 평가했다.

어영부영 하다가 불벼락을 맞은 장쑤성 당위원회는 서둘러 후 서기의 지시 사항을 이행하고 나섰다.  옌청에 '연안갯벌 희귀조류 자연보호구'를 설치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후챠오무는 보고를 받고 손수 시를 한 편 지었다. 시는 장쑤성의 각급 책임자들에게 전달됐다. 시의 제목은 '선학(仙鶴)'이었다.  

'선학이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지 마시게 / 부디 머물러 주시게나, 날개 돋은 인간의 본보기여! / 그대 모습은 우아함의 절정 / 그대 붉은 정수리는 진기한 왕관이어라 / (중략) / 그대는 중화(中華)를 보금자리로 택하였으니 / 하늘이 내리신 이 좋은 인연을 누군들 부러워하지않으리 / 우리 수천 년의 벗이여 / 어찌 그대가 받는 흉포한 고통을 그저 보고 있겠는가! / 우리 이제부터 온 힘을 다해 잘못을 속죄하리니 / 부디 믿어주시게나, 인간 세상에 악도 있지만 또한 선함도 있음을 / (중략)/ 맑디맑은 생령이여, 지상의 선녀여 / 선학이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가지 마시게나!' 

후챠오무 생전 모습(중국 포털 바이두 사진)
후챠오무 생전 모습(중국 포털 바이두 사진)

시를 받아든 장쑤성 간부들 심정은 어땠을까, 상상하고도 남는다. 옌청 희귀조류 자연보호구는 1992년에 성(省)에서 국가급 보호구로 승격하고 같은 해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02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4년 전,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이 '한국의 갯벌'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2021년보다 2년 앞선다. 옌청은 국제적인 생태관광지, 야생조류 관찰지로 명성을 굳혔다. 중국은 옌청 갯벌습지를 생태 환경의 성지라고 부르며 자랑과 긍지로 삼는다. 우리는 어떤가? 여야 정치권은 자연 훼손 개발, 대형 이벤트 끌어들여 유권자 환심 사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틀어막고 드넓은 갯벌을 메워 개발하는 새만금 사업을 33년째 벌이고 있다. 미군을 위함이 분명한 새만금 국제공항을 고집하고, 세계 엑스포 유치한다며 가덕도 깎아 바다 메워 공항 만든다고 한다.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 올리자고 목청 돋운다. 죽어가는 자연의 생명을 위해 시 한 수 지을 수 있는 도량과 품격의 정치인,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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