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중앙대 교수 교육특강 - 대한민국 교육,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대전환

군림하는 자와 무릎 꿇는 사람
오만과 모멸로 가득한 한국사회
지독한 경쟁과 능력주의가 횡행
자아와 존엄성 높일 교육 절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교육의숲’ 교육연구원(원장 성기선)이 주최한 강좌에서 “한국의 교육이 파렴치하고 오만한 엘리트를 키워낸 결과 파시스트적이고 미성숙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오만과 모멸’이 구조화된 나라가 됐다”고 비판하며 “능력주의 교육에서 존엄주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대전환해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워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교육의숲’ 교육연구원(원장 성기선)이 주최한 강좌에서 “한국의 교육이 파렴치하고 오만한 엘리트를 키워낸 결과 파시스트적이고 미성숙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오만과 모멸’이 구조화된 나라가 됐다”고 비판하며 “능력주의 교육에서 존엄주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대전환해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워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신문]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7일 일산서구 주엽동에 있는 즐거운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찾아 교육특강을 했다. ‘교육의숲’ 교육연구원(원장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주최한 제1기 교육의숲 교육나무강좌의 연사로 나선 김 교수는 ‘거대 위기의 시대, 대한민국 대전환 – Meritocracy에서 Dignocracy로’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지난달 개원한 ‘교육의숲’은 교육 주체들이 행복한 교육혁명에 관한 제반 연구를 진행하면서 교육 관련 기관·단체와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실질적인 교육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미래를 위한 교육 발전으로 교육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연구원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날 강연 내내 능력주의(Meritocracy)에 바탕을 둔 지독한 경쟁 사회를 극복하고 교육주권혁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존엄한 인간, 성숙한 민주주의자로 키워내는 존엄주의(Dignocracy)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JTBC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강의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등의 저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99%가 패배감, 열등감, 좌절감에 빠져 살 수밖에 이유는 지독한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파렴치한 엘리트를 키운 교육
“정부와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사실 : 의사 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 의대 의사.”

2020년 대한의사협회 산하 연구소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던 공공 의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올린 홍보성 글 내용이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최근엔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이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더러 젊은 엄마들이 일찍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어서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 시간엔 스톱’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필수의료 위기와 의대 정원’이란 제목의 시론을 올려 엄마들의 공분을 샀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그 이유는 한국 교육이 파탄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은 파렴치하고 오만한 엘리트를 키워내는 시스템이고, 그 결과 미성숙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공공 의대 설립이나 의사의 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전 세계에 우리나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의대에 가기 위해 매년 서울대 공과대학과 자연대학에서 400여 명이 자퇴한다고 한다.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김누리 중앙대 교수

성숙한 민주주의자 배출 실패
상명하복이 지배하고 파렴치가 판치는 법조계의 판검사들은 또 어떤가. 과거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눈치를 보며 억울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판사들, 그중에서 누구 하나 과거를 반성하면서 참회의 변을 내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법의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법조문만 달달 외워 그에 근거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대부분이다. 

별장 성 접대를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김영란법을 피하고자 ‘99만원 짜리 불기소 세트’를 만들어낸 검사들은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고 ‘개돼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돼 있다’라고 규정했는데, 사회적 지위나 권력과 돈의 유무에 따라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군림하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 사람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교육이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워내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능력주의는 공동체 파괴하는 ‘폭군’
사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100년 동안 우리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일제 지배 30년 제국주의 시대에는 ‘황국신민’을 만드는 교육, 독재정권 시절 국가주의 시대에는 ‘반공·산업전사’를 양성하는 교육, 문민 통치가 이뤄진 민주 정부 시대에는 자본과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적자원’ 채굴을 위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 교육에는 3대 불가사의가 있다. 첫째, 왜 세계 최고의 학력을 가진 나라가 실질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가, 둘째, 왜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공부를 하는 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하나도 없을까, 셋째, 왜 그렇게 많은 시간 공부를 하는데도 학생들은 자기 생각이 없을까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교육에 횡횡하고 현실은 주입식 교육, 교육 없는 학습, 사유 없는 지식 습득, 승자독식 주의, 경쟁 만능주의, 학력 계급사회가 판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리는 성공이 개인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실력의 결과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신봉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최신 경제학 연구를 통해 착각에 불과함이 드러나고 있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평생 소득의 50% 이상이 결정되고, 부모가 물려준 DNA가 30%, 자라난 환경이 10% 비율로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실증 경제학의 데이터와 통계 분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공공선을 파괴하고, 노동의 존엄성과 공동체 민주주의도 파괴하는 ‘폭군’으로 작용하기 쉽다.

2015년 독일 함부르크 초등학생들이 지중해 난민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타인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Hamburger Abendblatt]
2015년 독일 함부르크 초등학생들이 지중해 난민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타인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Hamburger Abendblatt]

전범 국가 독일의 교육혁명
이제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아니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유대인 학살의 만행을 저지를 전범 국가 독일의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독일은 히틀러식 파시즘과 잘못된 과거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68혁명’ 이후 강한 자아를 지닌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교육개혁에 나섰다. 

독일은 경쟁 없는 학교와 반엘리트 교육으로 자존감을 높이고, 반권위주의·비판 교육으로 자유인을 양성하고, 타인과 인류에 대한 책임감과 적극적 정치·사회활동으로 민주 시민으로서 정의감을 배양하는 교육을 통해 오늘날 EU의 중심국가가 됐다. 여전히 쓸모없는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으며 '해답'이 아닌 '정답'만을 묻는 시험제도와 성적·학력·실력·능력 지상주의에 함몰돼있는 우리가 갈 길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산서구 주엽동에 있는 즐거운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7일 열린 제1기 교육의숲 교육나무강좌 제2강 강연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일산서구 주엽동에 있는 즐거운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7일 열린 제1기 교육의숲 교육나무강좌 제2강 강연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대학입시·서열·등록금 폐지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네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먼저 천재들의 무덤인 한국 교실을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장으로 바꿔야 한다. 원래 교육(education)이란 말의 어원(라틴어 educare)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안에 있는 개성과 재능을 밖으로(e) 끌어내는(ducare) 것에서 유래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전혀 쓸 일이 없는 죽은 지식을 더는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말자. 

둘째,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기 위해 능력주의 교육을 존엄주의 교육으로 대전환하자. 내가 귀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그만큼 타인 또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는 주는 교육으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아이들을 자본과 기업에 충실하고 일 잘하는 인간 부품이나 인적자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비판 정신을 갖춘 진정한 자유인으로 키우자.

마지막으로 이제 한국도 어엿한 선진국인 만큼 ‘성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워내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자. 이를 위해 대학입시와 대학서열 그리고 대학등록금을 폐지하자. 쫓아야 할 이상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일상이고, 미국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같은 교수가 그 방향을 주창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의지만 있다면 역량은 충분하다. 다음 대선에서는 교육주권혁명으로 이를 꼭 실행할 교육대통령을 선출하자.

제1기 교육의숲 교육나무강좌 전체 일정
제1기 교육의숲 교육나무강좌 전체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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