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이전 논란’ 되돌아본 1년

[고양신문] “경기도 투자심사 재검토는 사실상 이전불가 통보다” “예산낭비 그만하고 원안대로 원당 신청사 즉각 착공하라”
13일 시청 앞에서 열린 고양시 신청사 원안 착공을 위한 13차 궐기대회는 앞선 집회와는 달리 고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경기도 투자심사 결과 시청 이전사업 ‘재검토’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승리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내친김에 신청사 원안 착공까지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는 올해 초 이동환 시장의 일방적인 시청 백석 이전 발표 이후 1년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투쟁을 일차적으로 마무리하는 자리로도 의미가 컸다. 지난 1월 4일 신년 기자회견부터 11월 23일 경기도 투자심사 재검토 결정까지 이어진 시청 이전 관련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봤다.   

 

이동환 시장 시청사 백석이전 발표
“고양시청 신청사를 백석동에 있는 요진 업무빌딩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1월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동환 시장이 시청사 백석 이전 선언을 발표했다. 지역주민과 시도의원,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담당 공무원조차 발표 당일까지 몰랐던, 모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던 일방적·기습적인 통보였다. 

이 시장의 시청사 백석 이전 선언은 지역주민들과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발표 5일 전 기자회견 당시만 해도 이동환 시장은 시청 이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시청을 옮기겠다는 말을 언제 했느냐”고 되묻는 등 완강히 부인해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욱 컸다. 당일 현장에 있던 심상정 국회의원은 “이미 90%이상 진행된 행정절차를 뒤집는 것은 시장의 오만이자 독선”이라고 지적했으며 같은 당인 권순영 고양갑 당협위원장조차 “시청사 백석 이전을 재고해달라”며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다. 

일주일 뒤 기자회견에서 이정형 제2부시장은 일방적인 시청 이전 발표에 대한 비판에 “시 예산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논의보다 지역적 갈등으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에 신청사 문제에 대해 시민들과 공개적 논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답해 논란을 키웠다. 

아울러 시청사 이전에 따른 원당지역 슬럼화 문제 대책과 관련해서는 ‘원당 재창조 프로젝트’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성사혁신지구 업무 시설화’와 ‘창조R&D센터 캠퍼스’의 경우 현재 국토부와 경기도 등 상급기관으로부터 ‘불가’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시의회 동의절차 무시? ‘지방자치법 9조’ 위반 
이동환 시장의 갑작스러운 시청사 백석동 업무빌딩 이전발표는 즉각 관련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임홍열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주교·성사·흥도)은 1월 6일 시정질의에서 시청사 백석 이전 발표에 대해 지방자치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의 청사 소재지를 변경하거나 새로 정하려면 해당 지자체 조례로 정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조례를 제정하려 할 경우 ‘해당 지방의회의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즉 공공청사 이전은 단순히 시장의 정무적 판단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시의회 의원 과반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시의회 동의절차 없는 1월 4일 이동환 시장의 백석 이전발표는 법·행정적 선행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법행위’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시청사 이전 절차에 앞서 시의회 협의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상급기관인 경기도를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3월 9일 경기도민청원 2호 안건으로 제출된 ‘신청사 원안추진’ 민원에 대해 “지방자치법 9조의 취지는 청사 위치 결정 시 지역주민들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와 충분한 협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라는 의미”라며 의회 및 해당사안에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반면 고양시는 지방자치법과 조례에 의한 시청 소재지 변경 문제에 대해 “시청 이전 후 조례개정을 통해 소재지를 변경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청이전 반대시위, 원당 넘어 덕양 전체 확산
새해 초 이동환 시장의 일방적인 시청사 백석이전 발표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가져왔다. 발표 열흘 뒤 시청 앞에는 무려 1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궐기대회가 열렸는데 기존 시청 주변 원당주민들 뿐만 아니라 덕양구 23개 동 주민자치회도 현수막을 걸고 동참했다. 시청 이전은 원당지역 슬럼화를 넘어 덕양구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덕양구 23개 동 주민자치회에서 붙인 시청이전 반대 현수막

 

이같은 주민들의 궐기대회는 지난 13일까지 총 13차에 걸쳐 진행됐으며 이후 경기도가 시청이전사업에 대해 사실상 ‘반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대시위를 조직한 신청사 원안건립 추진연합회(이하 원안추진위)는 이후 시청사 이전 공청회 저지 운동, 행정소송, 주민감사 청구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경기도 주민감사 청구&시청 이전 행정안전부 타당성 용역
연이은 궐기대회를 거치며 시청이전 반대여론이 확산돼 갔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청 이전절차를 막기에 부족했다. 이에 주민들은 상급 기관인 경기도에 기존 신청사 건립계획 백지화 및 시청사 이전 결정 위법성 여부를 다투기 위한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윤용석 전 시의원(대표 청구인) 외 211명이 참여한 경기도 주민감사청구는 3월 18일 경기도 심의위원회 결과 감사 청구요건에 부합하는 것으로 심의·의결됐으며 이후 3개월 동안 감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고양시는 경기도 주민감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시청 이전 행정절차를 강행했다. 특히 4월에는 행정안전부에 ‘시청 이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의뢰했는데 관련 예산인 용역수수료 7500만원을 의회 의결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관운영비 등으로 집행하려고 하는 ‘꼼수행정’이 뒤늦게 발각돼 의회의 큰 반발을 샀다. 이에 5월 16일 시의원 34명 중 21명의 명의로 행정안전부에 ‘시청 이전 적정성 검토’ 용역의 즉각 반려를 촉구하는 청원서가 제출됐다.    
 

‘신청사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사회 논의 잇달아
시청 이전을 둘러싼 고양시와 주민, 시의회와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6월 12일 고양신문이 주최한 ‘고양시 신청사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는 단순히 시청부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를 논하는 수준을 넘어 민선 8기 이후 1년간 펼쳐진 신청사 논란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했다.

발제를 맡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현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발제를 맡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현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해당 토론회에서는 시청사 백석이전 추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의사결정 민주주의 부재’뿐만 아니라 기존 신청사 건립사업을 취소할 경우 발생하는 매몰비용, 각종 행정소송 문제, 지역갈등 문제 등이 제기됐다. 특히 ‘예산부담 없는 시청 이전’이라는 시의 주장과 달리 이전에 따른 사업비용이 2000억원 이상 소요된다는 점(업무빌딩 기회비용 포함), 신청사 건립에 따른 경제파급효과가 간과됐다는 점 등도 함께 지적됐다.  

한편 일방적인 시청 이전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동환 시장 지지그룹 내에서도 나왔다. 친 이동환 오피니언 그룹인 ‘고양워킹포럼’은 7월 20일 민선1기 출범 1년 기념포럼 행사의 주제 중 하나로 시청사 백석 이전 현안을 다뤘다. 이날 포럼에서 △원당 신청사 추진 중단으로 인한 업체와의 법적 문제 △좁은 주차장 등 시청 건물로는 부적절한 백석 업무빌딩의 구조 △난항이 예상되는 시의회 협조 등의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시청 이전 타당성 용역, 지방재정법 위반’ 감사발표
3개월가량 진행된 시청사 백석 이전 절차 관련 경기도 주민감사청구 결과는 고양시 행정을 발칵 뒤집어놨다. 경기도 감사관 측이 고양시의 시청 이전 사업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 신청에 대해 지방재정법 등 관련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7월 14일 통보했기 때문이다. 앞서 시 집행부는 시청 이전사업을 위한 행정절차 중 하나로 행안부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의뢰했는데 정작 용역 집행을 위한 수수료를 예산안에 편성하지 않았다. 즉 시의회 동의 절차 없이 타당성 용역을 추진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고양시는 의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예비비를 활용한 용역수수료 ‘편법 집행’을 강행했다. 이어 9월 1일에는 경기도 감사결과에 대해 불복의사를 밝히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및 효력정지 가처분을 청구했다. 고양시의 헌재 청구는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고양시 투자심사 통과 위해 과도한 여론전
내년 6월까지 시청사 백석 업무빌딩 이전을 목표로 내건 고양시는 9월 핵심 절차 중 하나인 경기도 지방재정 투자심사 통과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정작 투자심사 서류에 반영되어야 하는 행안부 타당성 조사 결과 보고서가 함께 제출되지 않아 경기도로부터 1차 반려통보를 받았다. 당초 2024년 예산안에 시청사 이전 비용을 반영하고자 했던 고양시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결과였다. 

 

다급해진 시는 경기도 투자심사를 다시 신청하기 위해 대대적인 여론전에 돌입했다. 10월 추석 명절 전후로 백석동 업무빌딩을 비롯한 고양시 전역에 ‘고양시청 백석이전 사업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 통과’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으며 10월 30일에는 시청 이전 여론조사 결과 찬성 58.6%, 반대 41.4%로 찬성 여론이 높게 집계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반면 시청 이전 반대 측은 행안부 타당성 조사 결과는 ‘통과’보다는 ‘통보’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경기도 투자심사 절차와 달리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는 데다가 보고서 내용을 살펴봐도 사업이 ‘적합하다’ 혹은 ‘타당하다’는 평가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안부 측은 원안추진위 측의 질의에 대해 “(시청 이전 사업에 대해)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총력전 끝에 경기도 투자심사 ‘재검토’
시의 여론전에 맞서 원안추진위와 지역정치인들은 투자심사 통과를 막기 위해 경기도를 강하게 압박했다. 심상정 국회의원은 10월 23일 국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도지사에게 시청이전사업에 대한 투자심사를 반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했으며 김 지사는 “주의깊게 살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재준 전 시장은 경기도 투자심사위원회에 시청 이전사업의 각종 위법사항을 지적하는 자료를 제출했으며 문명순 더불어민주당 고양갑 지역위원장은 지역구에 대대적으로 현수막을 걸며 투자심사 반려를 위한 주민들의 여론을 모았다.  

주민들도 막바지 행동에 나섰다. 투자심사를 일주일 앞둔 11월 15일 경기도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심사 당일인 11월 23일에도 경기북부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경기도 투자심사위원회는 △주민과 숙의 과정을 거칠 것 △시의회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진행할 것 △기존 주교동 신청사 사업에 대해 선제적으로 종결할 것 등 3가지 조건을 내걸며 재검토를 결정했다. 사실상 시청이전 ‘불가’통보에 가깝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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