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 산책: 아무튼, 동물!>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기획전시
옛사람들의 삶과 함께했던 동물들
다양한 모양으로 유물 속에 담겨

[고양신문]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저물고,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靑龍)의 해가 옵니다.” 연말 연초에 수없이 듣는 얘기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12종류 동물(十二支)들의 순환으로 표현했을 만큼 옛사람들의 삶은 말 그대로 ‘동물들과의 공존’이었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초입에 자리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 열리고 있는 <수장고 산책: 아무튼, 동물!>은 우리의 민속문화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박물관 소장품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다. 

재작년 문을 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원래 박물관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계획됐지만, 건물 구조를 ‘열린 수장고’와 ‘보이는 수장고’로 설계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맞이하고 있다. 

보기에도 좋고, 의미도 새기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서니, 박물관 건물 전면에 예쁘게 디자인된 각종 동물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동물 캐릭터들은 메인홀 1~2층을 수직으로 연결한 타워형 수장고 외벽에도, 개방형 수장고 유리문에도, 전시 브로셔와 스티커 등에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또한 작은 블록형 조형물로도 제작돼 실제 유물 옆에 나란히 전시되기도 했다. 간결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전시의 콘셉트를 유쾌하게 이끌어가려는 기획이 참신하다.  

전시의 관람동선은 복잡하지 않다. 1층과 2층에서 각각 열린 수장고 세 곳과 보이는 수장고 두 코너를 둘러보면 된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수많은 유물 사이에 숨어있는 여러 동물들을 하나하나 찾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장고 속에 머물게 된다. 

우리의 민속유물 속에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앞서 말했듯 동물들과의 공존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전시는 세 가지 관점에서 감상하면 좋다. 동물들이 어떤 모양과 형태로 유물 속에 담겼는가를 보는 ‘미학적’ 관점, 동물 디자인이 유물의 쓰임새에 어떻게 부합하는가를 가늠하는 ‘기능적’ 관점, 마지막으로 옛사람들이 동물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담았는가를 살피는 ‘상징적’ 관점이다. 

물론 이 샛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상징과 디자인과 기능이 하나로 어우러져 삶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물들 속에 녹아들어 있다. 각종 생활용품에 동물을 넣으면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동물들의 형태나 습성에서 유추된 다양한 덕목들을 자연스레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비 모양의 머리 장신구.
나비 모양의 머리 장신구.

생로병사 함께 하는 동반자 

어떤 물건에 어떤 동물을 디자인할 것인가에도 재미난 원칙들이 적용됐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물에서 사는 잉어, 자라, 개구리, 새우, 게 등은 물과 연관이 있는 벼루나 연적, 물병 등에 주로 그려졌다. 위로 튀어오르는 습성을 가진 개구리는 출세를,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는 다산을, 딱딱한 등껍질(甲)을 가진 게와 새우는 장원급제(甲等)를 염원하는 의미다. 

또한 날짐승인 학과 새, 그리고 상상의 동물 봉황은 상서로움과 고귀함, 장수를 의미했고, 박쥐(蝠)는 발음이 같은 복(福)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런가 하면 개와 말, 소와 같은 가축들은 부지런하고 친숙한 일상을 대변했고, 반대로 용과 호랑이는 권위와 용맹을 지닌 존재로 각별한 우러름을 받았다.

용이 그려진 백자 항아리. 
용이 그려진 백자 항아리. 

동물들은 인간의 생로병사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동물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자라고, 나무기러기 앞에서 혼례를 올리고, 나비모양 촛대를 켜며 평안한 가정을 꾸리고, 학이 그려진 항아리를 보며 장수를 염원하고, 동물 꼭두가 얹힌 상여에 실려 저승길로 떠나고, 동물 모양 토우와 함께 무덤에 묻히고, 후손들은 기린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내와 함께 제사를 올린다.

미학적으로도 일상 속 물건에 동물이 그려지면 생동감이 부여되고, 여유와 해학이 더해지기도 한다. 정겨우면서도 멋스러운 유물들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다양한 물건들 속에 동물들을 그려넣거나 새겨넣은 옛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이 전해오는 듯하다.  

소의 건강을 기원하며 외양간에 걸어둔 돌방울.
소의 건강을 기원하며 외양간에 걸어둔 돌방울.

재미난 정보 가득한 전시해설

전시를 관람하는 팁 하나. 이왕 관람할 거면 박물관이 제공하는 전시해설을 놓치지 말자. 각각의 동물들이 지닌 상징을 비롯해 유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준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평일에는 4회, 주말에는 5회 해설이 진행된다.  

이달 초 시작돼 내년 2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여러 면에서 온 가족 나들이 일정으로 안성맞춤이다. 양력·음력 새해를 전후해 열리고, 고양에서 멀지 않고, 주차료·입장료 모두 무료라는 점도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박물관 전시를 아이들과 함께 보기가 쉽지 않은데, 테마가 ‘동물’이다 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무척 재밌게 관람할 수 있다. 헤이리예술마을, 또는 파주출판도시와 연계해 알찬 나들이 일정을 짜 보자. 전시문의 031-580-5800

액운을 몰아낸다고 믿었던 호랑이발톱 노리게.
액운을 몰아낸다고 믿었던 호랑이발톱 노리게.
 개구리 모양의 연적.
 개구리 모양의 연적.
기린 모양의 작은 향로.
기린 모양의 작은 향로.
오채현 조각가의 작품 '웃는 호랑이'.
오채현 조각가의 작품 '웃는 호랑이'.
상여를 장식한 꼭두인형.
상여를 장식한 꼭두인형.
전시 해설을 듣고 있는 가족 관람객.
전시 해설을 듣고 있는 가족 관람객.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