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백장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고양신문] 작년 12월 26일~30일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다. 당이 지배하는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가장 중요한 기구로서, 전원회의는 일 년을 결산하고 다음 해 국정 방향을 결정짓는 자리이다. 김정은 총비서를 비롯한 상무위원 및 정치국 위원, 중앙위원회 위원들이 회의 멤버이며, 내각과 도급·시급 주요 간부, 중요공장 및 기업소 책임자들이 참관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의 주요 내용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김정은 총비서의 보고 내용은 전반적으로 자신감에 차 있다. 장문의 보도 중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농업 부문을 비롯해 주요 분야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것이다. 만성적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작년에 알곡 103%를 비롯해 전력·석탄·질소비료·압연강재·유색금속·통나무·세멘트·일반천·수산물·철도화물수송량·살림집 등 인민경제 발전 12개 고지를 모두 달성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농업 생산이 기대 이상으로 증가해 각지의 근로 단체에서 당에 애국미를 바치겠다고 하는데, 중앙위 전원회의의 이름으로 감사를 보내자고 제안하였다. 북한의 통계를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 같은 발표는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맞아 무지막지한 봉쇄조치로 대처했던 북한에서 위기를 넘기고 경제 회복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김정은은 국방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고 보고하였다. 핵무기 운반수단인 화성-17형, 화성-18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 성공, 첫 정찰위성인 만리경-1호 발사 성공, 전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발사 훈련 진행, 무인정찰기와 다목적무인기 개발, 새로운 잠수함 건조 등을 나열했다. 또한 2022년 9월 핵무기 군사교리를 법령화한 데 이어 작년에 핵정책을 헌법에 넣어 법적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2023년을 국력제고 · 국위선양 · 국가발전 행로에서 전환의 해 · 변혁의 해라고 의미지었다.      

둘째, 대외정책 특히 대남 관계에서 근본적 방향 전환을 천명하였다. 김정은은 남한이 보수·민주 가릴 것 없이 일관되게 북한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을 추구했다며, 이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사업기구를 정리·개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외 관계에서도 2023년에 국제정치 지형과 역량 관계에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났다며,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든 반제·자주적 국가들과 연대해 반제 공동행동·공동투쟁을 전개하겠다고 한다. 
그간 북한 당국자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언급됐던 북미관계 정상화노력 포기, 대남 적대시 정책이 이번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공식화된 셈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왕왕 필요에 따라 수령의 이름으로 기존 정책을 뒤집는 사례가 있어 당국의 언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쨌든 민족과 통일을 국가 정체성으로 여겨 왔던 북한에서 ‘민족’ 담론을 폐기하고 ‘두 국가’ 담론을 채택했다는 것은 큰 사건이다.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일관되게 힘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22년 11월에 북한이 비핵화에 착수하면 북한의 경제회생을 돕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지만 진정성이 없는 정책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해 “하찮은 물건짝과 북한의 국체인 핵과 맞바꾸자는 부등가 교환”인 ‘담대한 망상’이라고 조롱했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담대한 구상’은 국제사회의 기존 합의를 무시한 제안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와 수많은 협상을 통해 북핵 폐기와 북한의 안보위협 해소, 즉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조치를 동시에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더욱이 윤 정부는 유엔과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시퍼렇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 지원을 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1년 반 윤석열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며 한미군사훈련과 전략폭격기·전략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로 대북 압박을 추진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 고도화, 단거리·중거리·장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발사 등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김정은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올해는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핵무기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3개의 군사정찰위성을 추가로 쏘아올리며 무인 무장장비와 전자전 수단을 개발·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작년 말에는 ‘9.19 남북 군사합의’까지 무력화시켜 접경지역에서 군사 충돌의 위험이 더 커진 상태이다. 올해 한반도 상황은 마치 봄날 메마른 산야에 강풀이 부는 형국이다. 작은 불씨 하나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것처럼, 고조된 군사적 긴장상태에서는 작은 오인과 충돌이 전면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신년사에서도 대북 강경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히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신년사에서도 대북 강경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히했다.

윤석열 정부는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제재와 압박을 못 견디고 북한이 비핵화 협상장에 나올 것이라고 보는가? 언젠가 북한 경제가 파탄나고 북한이 망할 것이라고 믿는가? 당국자가 주관적 정신 승리에 안주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북·러 군사협력으로 북한의 핵무기체계가 질적·양적으로 고도화되고, 북한의 군사위협이 가중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핵위협이 커지면 우리는 미국 핵우산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는 한·미의 북한 압박 -> 북한 핵 및 군사력 증가로 위협 증대 -> 미국 핵우산 의존 심화의 악순환이다. 

더욱이 연말에 있을 미국 대통령선거를 생각한다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우선주의 아래 기존의 동맹 질서와 자유무역 질서 유지를 위한 비용 부담을 꺼리는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할 때, 차기 미국 정부는 주한 미군 유지와 핵우산의 댓가로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당국 차원에서 민간 차원에서 북한의 대문을 두드려야 한다. 절대 우세의 국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북한에게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은 저자세·종북이 아닌 주체적 포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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