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택배기사 하루 따라가보니

쿠팡CLS 일산1·7캠프를 나서는 택배트럭. 분류작업을 마친 택배기사들은 9시에서 10시 사이에 캠프에서 출발한다.
쿠팡CLS 일산1·7캠프를 나서는 택배트럭. 분류작업을 마친 택배기사들은 9시에서 10시 사이에 캠프에서 출발한다.

분류작업 여전히 택배기사 몫
성과따라 상시퇴출 클렌징제도
부당업무 감수하며 시간 쫓겨
“실제 배송시간 꼭 늘려야”


[고양신문] 이른바 ‘로켓배송’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고객들을 사로잡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지난해까지만 해도 쿠팡은 만성적자를 기록했으나 작년 2분기 7조674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택배업계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오후 2시 전에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빠른 속도가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CLS의 무기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성장 이면에는 택배기사들의 고된 노동이 존재한다. 배송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택배 무게는 늘어나지만 근무환경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쿠팡CLS 일산1·7캠프 현장 속에서 택배노동자들과 하루를 함께했다. 

‘공짜노동’으로 하루열어
부당한 ‘분류작업’ 몸살

쿠팡CLS 하청 택배기사 하루 일과.
쿠팡CLS 하청 택배기사 하루 일과.

일산1·7캠프로 출근한 택배기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당일 싣고 나갈 택배 ‘분류작업’이다. 자동집하시설에서 1차로 처리하지만 이때는 영업점별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사들이 개인별로 배송할 택배들은 2차로 다시 분류해야 한다. 이러한 분류작업은 평균 2시간가량 소요돼,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사실상 10시에 택배를 모두 싣고 캠프를 떠날 수 있다. 아울러 전날 신선제품을 담았던 프레시백도 택배기사들이 하루 80개꼴로 회수해야 해 본격적인 배달 시작은 상황에 따라 더 늦어진다.

분류작업을 택배기사가 맡는 쿠팡CLS와 달리, 동종업계 타 업체의 경우 회사가 분류작업을 책임지고 택배기사들은 배송만 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특히 2021년 정부-더불어민주당-택배업체 간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합의’가 이뤄져, 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CJ대한통운·우체국택배·로젠택배는 별도의 분류 도우미 인력을 증원해 더 이상 분류작업은 택배기사의 몫이 아니다.

송정현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 일산지회장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분류작업을 배송과 분리하고 있으며, 표준계약서를 통해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가 수행하게 되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쿠팡CLS는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로 인해 부족해진 배송 시간은 그대로 택배 노동자 개인이 오롯이 감당한다”라고 토로했다.

자동집하시설에서 1차 분류된 물건을 택배기사들이 2차로 개별 분류하는 주차장 현장.
자동집하시설에서 1차 분류된 물건을 택배기사들이 2차로 개별 분류하는 주차장 현장.

퇴출통보 ‘클렌징’ 안 당하려
점심시간·차량보수 시간아껴

고된 분류작업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오전 10시에 캠프를 출발해도 배송 시간은 촉박하다. 쿠팡CLS가 성과에 따라 영업점과 택배기사를 상시 퇴출하는 ‘클렌징’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촌각단위로 최대한 많은 택배를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임의로 영업점과 택배기사들에게 배송 구역을 할당한 뒤, 수행률·성과가 낮다면 구역을 회수해 다시 다른 영업점에 할당한다. 영업점별로 일감 경쟁을 붙이고 이에 도태된 택배기사들은 구역을 빼앗겨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받는 격이다. 일례로 일산1·7캠프는 20개의 영업점과 이에 소속된 230명이 일산지역을 나눠 배송한다.

고양신문이 입수한 쿠팡CLS와 한 영업점 간 계약서 발췌, 해당 계약서에는 구체적인 담당구역을 명시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배서비스 산업에 관한 표준계약서'의 담당구역 관련 내용 발췌.
고양신문이 입수한 쿠팡CLS와 한 영업점 간 계약서 발췌, 해당 계약서에는 구체적인 담당구역을 명시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배서비스 산업에 관한 표준계약서'의 담당구역 관련 내용 발췌.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배서비스산업에 관한 표준계약서’에는 택배사업자-영업점, 영업점-택배기사가 맡는 ‘위탁지역’ ‘담당구역’을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쿠팡CLS 경우 대리점·택배기사에서 특정한 담당구역을 명기하지 않고, 회사가 이를 조정할 수 있게 한다. 본지가 입수한 한 영업점과 쿠팡CLS 간 계약서에는 ‘본 계약은 영업점에 어떠한 독점적인 권리 또는 최소 물량 또는 고정적인 물량의 위탁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작년 퇴직한 쿠팡CLS 택배기사 성락경(57세)씨는 “구역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일감을 빼앗는 클렌징 제도 때문에 영업점·택배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사측이 강요하는 장기간노동·분류작업 등 부당업무까지 도맡을 수밖에 없어 점심은커녕 화장실도 별도의 간이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해결한다”라고 밝혔다.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택배기사 중 쿠팡CLS에서 구역회수를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3%가 그렇다고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선상품은 8시에 빨리마감
마감 맞추려 2회전·장기노동

클렌징 제도와 함께 택배기사들의 부담을 높이는 것은 신선식품이다. 쿠팡CLS는 오후 10시에 마감하는 타 상품들과 달리 신선식품만을 따로 분리해 오후 8시까지 배송마감을 마치도록 하고 있다. 다른 택배와 함께 신선식품을 한 번에 싣고 간다면 8시 전까지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해 신선식품을 오전 1회전 때 따로 먼저 배송하고, 캠프로 복귀한 뒤 일반 택배들을 싣고 2회전을 도는 것이 일상이다.

쿠팡CLS 일산1·7캠프.
쿠팡CLS 일산1·7캠프.

만약 식품마감 시간이 8시가 아니라면, 다른 택배와 함께 10시에 마감할 수 있어 캠프를 두번이나 오갈 필요가 없다. 이렇게 불필요하게 소요한 이동 시간 탓에 신선식품이 아닌 일반택배가 많은 날에는 회사 기준을 맞추기 위해 오후 11시 이후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송정현 지회장은 “쿠팡CLS 택배노동자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서 많은 움직임이 이뤄져야 하지만, 관건은 비효율적인 업무수행 방식을 개선해 ‘실제 배송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최근 발생한 부당해고 문제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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