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산동 30년 산 류장복 화가
그림수업으로 공동체회복 꿈꿔

[고양신문] “처음에는 여행 그림그리기로 시작했어요. 다들 여행을 가면 일정에 쫓겨서 구경하기만 바쁘고 또 외국여행처럼 멀리 떠나는 계획만 세우잖아요. 그게 아니라 일상을 마치 여행처럼, 가까운 동네를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 거죠. 그렇게  시작했던 그림그리기 모임이 지금의 공개드로잉 수업으로 발전했어요.”

사과나무치과병원(일산 주엽동)에서 매달 건강넷 회원들과 함께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는 류장복 화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는 재작년 인사동 통인갤러리 개인전을 비롯해 총 27번의 개인 전시 경력이 있으며 그 외 대학과 예술의전당 등에서 강의를 하는 직업 화가다.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림 강의를 많이 해왔던 그는 “나에게 강의는 단순히 먹고사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도구”라고 말한다. 

현재 건강넷에서 진행하는 그리기 수업 또한 단순히 드로잉 스킬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통해 ‘나’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상대방과 소통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그림 실력이 다소 부족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류 화가의 지론이다. 

류 화가는 현재 작업실이 자리한 정발산동 밤리단길의 한 단독주택에 30년 전부터 살았다. 외부 강의와 전시활동은 많았지만 정작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지역사회와 함께 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중 과거 공동육아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사과나무치과병원 김혜성 이사장의 제안으로 인문학 모임 ‘귀쫑’에 참여했고 작년 5월 그림그리기 수업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류 화가가 제안했던 것은 바로 마을그리기였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쳐오던 동네 모습을 그림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고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수업이라고 해서 제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강의는 절대 아니에요. 같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그림그리는 장소도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지 않아요. 지난번 공개강좌는 우리 건강넷 대표를 모델로 해서 다 같이 초상화를 그렸는데 모델이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기를 하는 과정을 함께 가졌어요. 우리가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놓치고 있던, 이러한 감각 거리의 회복이 바로 공동체성의 복원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건강넷 회원들과 류장복 화가가 매달 함께 진행하는 공개 드로잉 수업

그림그리기 수업을 통해 류 화가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자기 표현력’이다. 그는 “물론 잘 그린 그림이 좋은 그림일 확률은 높지만 숙련도에만 치중하다보면 자칫 영혼없는 나쁜 그림이 된다”며 “오히려 어린아이와 어르신의 그림처럼 순수한 표현력을 가진 그림이, 기법만 뒷받침되면 훨씬 더 훌륭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나를 위한 그림그리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그린 그림을 가지고 전시전을 열 계획도 갖고 있어요. 거창하게 큰 그림을 그려서 화이트 박스 갤러리 전시를 하려는 게 아니라 작게는 엽서 그림, 혹은 하루 여행 그림을 책으로 묶어내는 방식 등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죠. 장소도 작은 카페나 병원 같은, 사람들이 오가며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적 공간에서 전시하고 싶어요. 그래야 그림 그리기라는 게 생활 속에서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어떤 걸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겠죠.”

본인의 정체성을 ‘마을 화가’로 표현하고 싶다는 류장복 화가. 마지막으로 “화가라는 직업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의사나 변호사처럼 공동체 일원으로서 마을에 한 명쯤은 꼭 있어야 할 존재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