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정치학 박사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정치학 박사

[고양신문] 세계 36개국 선진 민주주의 국가를 연구한 아렌드 레이파트는 『민주주의의 유형』이라는 책을 통해 세계의 민주주의를 합의제 민주주의와 다수제 민주주의로 유형화했다. 합의제는 공감이라는 의미의 컨센서스(consensus)에서 기원했고, 권력 공유(power sharing)가 원리다. 다수제는 과반수(majority) 다수결의 의미이고, 51% 지지율로 권력을 전담하는 승자독식이 원리다. 다수제 국가는 미국과 영국이고, 스위스와 유럽의 국가들이 합의제다. 

대한민국은 다수제에 속한다. 2022년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0.73%였다. 1%도 안 되는 차이지만,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이 되어 전권을 행사한다. 2022년 6월 고양시장 선거에서도 이동환 국민의힘 시장은 52.14%의 득표율로 집행권을 100% 행사한다. 

다수제 민주주의의 장점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의 편리함에 있다. 그리고 1%라도 앞선 승자가 임기 동안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점도 장점이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처럼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다른 분점 정부가 되면 교착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2024년 1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여 국회가 의결한 특검법과 이태원 특별법을 국민의힘 소속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정국이 교착되어 있다. 양당이 대립하면 서로 싸우느라, 정치인들이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의 삶(민생)과 미래를 위한 정책 개발에 소홀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그 동료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주도의 미 의회 사이의 대결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정치인이 권한의 80% 이하만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이나 의회의 정치인들이 자제하고 양보해야 다수제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양당 대립 구도 속에서 정치인들이 양보하기는 쉽지 않다. 제3, 제4의 중재자가 있으면 어떨까? 중재자가 있으면 당사자들이 대화하고 조정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것이 합의제 민주주의이다. 다자간 경쟁 속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타협하여 동의를 구하는 정치다. 

뉴질랜드는 1993년까지 지역구 1위 대표 선거제도를 시행했던 다수제 국가였다. 국민당과 노동당이 여/야 자리를 번갈아 가면서 집권했고, 극단적 대립을 했다. 국민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아 선거 독재라 비판받았다. 결국, 국민의 불만이 커져 1993년 국민투표로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양당제의 의회정치는 승자독식의 정치에서 3~4당제의 합의 정치로 변했다. 정부는 노동당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작은 정당이 연합하는 연합정부로 구성되었다. 의회는 녹색당 등 여러 정당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소수자인 여성과 마오리인의 국회의원이 늘어 대표성도 높아졌다. 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높아졌고, 정치에 대한 참여 효능감은 80%에서 92%로 증가했다. 정책적으로도 연금 개혁에 있어서 보수성향의 국민당이나 진보성향의 노동당이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여 연금제도의 급격한 축소를 억제하기도 하였다.

197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학자인 아서 루이스(Arthur Lewis) 경은 다수제의 승자독식 원리는 배제 원리이며, 그것은 민주주의 체제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란 정책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 모든 정당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라 말했다. 간발의 차이로 집권한 대통령과 시장, 그리고 의회 권력 모두 상대를 양보하고 배려하고 타협하는 합의제 정치를 하길 바란다. 상대를 배려하는 정치인은 상대로부터 도움과 지혜를 얻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상대와 협력하고 삶을 개선하는 정치인은 국민 신뢰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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