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시인 신작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길고 험난했던 ‘산황산 지키기’ 10년
단단한 벽 마주할 때마다 절망했지만 
힘없는 생명들과 하나 되며 힘 얻어 

[고양신문] 조정 시인이 신작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이소노미아 刊)를 펴냈다. 조 시인은 2022년 전라도 방언을 입말 그대로 옮긴 시집 『그라시재라』로 노작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시집은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시인의 문학적 성취만을 보여주는 시집이 아니라, 고양시민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산황산 지키기 운동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시민불복종 기록물’로서의 성격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 시인은 고양에서 ‘시인’이라는 호칭보다는 ‘고양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라는 직함으로 더 많이 불린다. 그 직함 안에는 길고도 험난했던 산황산 골프장 증설 반대 시민운동을 앞장서서 이끈 ‘끈질긴 싸움꾼’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2014년 1월에 시작된 산황산 지키기 싸움은 9년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실시계획인가 미승인이 결정되며 시민들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앞이 보이지 않는 힘겨웠던 싸움을 10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시집을 보면 답을 알게 된다. 일상을 강탈당한 평범하고 힘없는 존재들과 연대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마음의 발전소가 되어 고갈되지 않는 행동력을 생산해왔던 것이다. 

발문을 쓴 이용임 시인은 조정 시인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산을 대신해 산에 깃든 생명을 염려하고 산그늘에 사는 사람들을 살피느라 한겨울 텐트 한 장으로 바람을 막고 땅바닥에 누워 지샜’다고 회고하며 ‘그러느라 시도 잊은 줄 알았는데 웬걸. 시인에게 시란 뼈와 내장의 움직임을 읊는 성대와 같은 것’이라는 말로 조 시인의 시가 전해준 감동을 표했다. 

조 시인과 동지들이 함께 지켜낸 산황산은 해발 62m에 불과한 야트막한 야산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 예쁘고 여린 목숨들이 공존하는 생명의 우주를 본다. 두더지들이 땅속에 길을 내고, 고라니는 매화꽃송이와 눈을 맞추고, 초록색 뱀은 오엽딸기나무 사이로 몸을 감춘다. 시인은 결코 인간이라는 우월한 존재의 책임감으로 그것들을 지켜내겠노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의 세계를 걷어차버려야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의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한없이 몸을 낮춰 숲을 이루는 모든 존재들과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생명의 세계를 지켜내는 싸움에 참전한다. 

싸움의 주체들이 누구인가는 ‘춘분의 갈채’라는 시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언 땅을 깨우는 봄기운이 ‘벌레의 군대, 나뭇잎 결사대,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충영들, 죽은 소나무의 말굽버섯들’을 ‘마법사의 제자들아’라고 호출하며 ‘껍질을 깨고 나오라’고 주문한다. 여기에 시인은 ‘봄아, 죽기로 이 산을 살려보자!’는 벅찬 결의로 응답한다.    

신작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를 발표한 조정 시인. 산황산 지키기 운동 '10년 싸움'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사진제공=고양환경운동연합]
신작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를 발표한 조정 시인. 산황산 지키기 운동 '10년 싸움'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사진제공=고양환경운동연합]

시집에 기록된 10여 년의 시간은 산황산의 생명들로부터 설렘과 기쁨을 선물받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상의 단단한 벽과 마주하는 절망의 시간, 손잡아주기를 요청했던 이들에게 수시로 외면받아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인이 맞닥뜨린 벽은 자본과 공권력이라는 실체적 힘이기도 하고, 나무에 끌질하고 숲에 불을 놓는 나쁜 손길이기도 하고, 불의에 맞서는 법을 망각해버린 파편화된 시민들이기도 하다.

시집 첫머리에 놓인 ‘환경영향평가서’라는 시에는 산황산 싸움을 처음 시작했던 순간의 모습이 그려졌다. 조정 시인, 그리고 든든히 곁자리를 지킨 김경희 전 도의원은 곳곳에서 허위와 부실이 발견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줄을 쳐가며 읽은 후 ‘어찌 못 막으랴’며 싸움의 개전에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미처 몰랐다 / 십년이나 걸릴 줄’. 때때로 누군가의 순진한 믿음 덕분에 놀랍고 좋은 일이 마침내 성취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마음 갈피에 덜 꺼진 슬픔과 분노’(시인의 머리말 중) 역시 순진한 믿음을 품었던 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결국 시집에 담긴 시들은 ‘어찌 못 막으랴’가 ‘미처 몰랐다’로 변해가는 시절동안 마음의 균열을 메워온 수많은 멍자국들인 셈이다.

시집에서 시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산황산만은 아니고, 생태적 약자들만도 아니다. 팽목 포구, 구의역 그 아이,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망월동의 식당, 오월의 묏등, 성산포와 강정과 산방산을 두루 들르며 안부를 묻는다. 힘 있는 이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폭력적 질서에 치여 일상을 박탈당한 이들 곁을, 한쪽으로는 따뜻하고 반대쪽으로는 서늘한 시인의 언어가 맴돈다. 

12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조정 신간시집 북토크 참가자들이 시인과 함께 '초록여우 모금운동'의 시작을 약속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고양환경운동연합]
12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조정 신간시집 북토크 참가자들이 시인과 함께 '초록여우 모금운동'의 시작을 약속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고양환경운동연합]

지난 12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렸던 북콘서트에서 조정 시인은 “산황산을 지키는 싸움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다”고 말하며, 산황산 한평 사기 운동인 ‘초록여우 모금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고양시가 ‘공유임야특별회계’를 풀어 산황산을 시민 모두의 녹색자산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마중물을 마련하자는 것. 

모금운동이 힘을 얻으려면 산황산이 품고 있는 생명들의 소중함, 그리고 험난했지만 가슴 벅찼던 산황산 지키기 싸움의 순간들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정 시인의 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를 읽는 것이다. 혼자만 읽을 게 아니라 주변에 권하고, 이웃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면 더 좋겠다. 문학적 측면에서도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럴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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