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대> 17호, 고양작가회의 발간
기획특집 ‘금정굴 사건의 문학적 수용’
“작가로서의 곧은 길, 함께 걸어가자”

종합문예지 17호(고양작가회의 발간)
종합문예지 17호(고양작가회의 발간)

[고양신문] 고양작가회의(회장 정수남)가 발간하는 종합문예지 <작가연대> 17호가 출간됐다. 중앙문단의  내로라하는 문예지들도 명맥을 유지하기가 만만찮은 출판환경에서 고양지역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전국규모의 종합문예지를 또 한 권 엮어냈다는 점 자체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17호 <작가연대>에는 고양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문인 40여 명의 신작시와 단편소설, 수필, 서평이 풍성하게 실렸다. 또한 지난해 고양작가회의 초청으로 고양포럼 강연을 펼친 임헌영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가 ‘분단문학과 레드 콤플렉스’라는 주제로 특별기고문을 게재했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한국전쟁 당시 고양시에서 벌어진 비극적 역사인 ‘금정굴 사건’을 다룬 기획특집이다. 특집은 특별좌담과 추모시, 2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문창길 편집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특별좌담에는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과 이현옥 금정굴유족회 사무국장이 초청됐고, 고양작가회의 측에서는 정수남 회장과 김나영 소설가, 조수행 수필가가 참여해 ‘금정굴 양민학살사건의 의미와 문학적 수용’이라는 주제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금정굴 양민학살사건의 의미와 문학적 수용'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별좌담.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고양작가회의]
'금정굴 양민학살사건의 의미와 문학적 수용'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별좌담.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고양작가회의]

먼저 신기철 소장이 금정굴 사건의 개요와 배경을 설명했다. 신 소장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후퇴와 수복을 하는 과정에서 반민중적 정치를 펼친 것이 사건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행주나루를 건너 28일 무렵 일산에 들어오기까지 권력의 무정부상태에 놓이게 됐고, 이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금정굴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금정굴 사건이 △경찰에 의해 학살이 이뤄지고 △검찰에 의해 사건이 은폐되는 2개의 단계로 나뉜다고 말했다. 특히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며 ‘좌익세력이 양민을 학살한 사건’으로 사실관계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상황은 전국에서 금정굴이 유일하다는 점을 짚었다.

이현옥 사무국장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사무국장은 이 사건의 가해자가 분명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반공이라는 이념이 서로의 진실을 가로막고 있고, 좌익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악마화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복잡하고 예민한 상황들을 설명해줬다. 또한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실현 이후 금정굴 발굴과 진상규명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지만, 문제가 쉽게 정리된 건 아니었다. 이 사무국장은 희생자의 가족임이 알려진 후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사직한 한 유족의 사례도 들려줬다. 이야기를 통해 참석자들은 금정굴 사건 안에는 피해와 가해라는 단순한 구도로 정리되기 어려운, 복잡한 지역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대담의 주제는 금정굴 사건의 문학적 수용으로 이어졌다. 작가들은 먼저 지역의 문학인들이 금정굴을 주제로 한 작품활동이 많이 부족했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이현옥 사무국장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밑바닥에 아픔들을 숨겨놓도록 만든다고 진단했다. 반면 신기철 소장은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작가들이 문학적 형상화의 해답을 못 찾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문창길 편집장은 작가들이 좀 더 용기 있게 금정굴 양민학살과 같은 우리 민족의 불행한 현대사를 문학적 주제로 적극 수용해 창작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대담에서는 사유지 문제, 정권 변화에 따른 무관심, 외부요인으로 인한 제동 등에 막혀 금정굴 평화공원 조성사업이 진도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공유됐다. 고양작가회의 차원에서 금정굴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기릴 것인가에 대해 정수남 회장은 우선 금정굴문학제를 시작하고, 이후 뜻이 맞는 진보예술단체들과 함께 금정굴예술제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문창길 편집장은 “대담을 계기로 자주 만나 금정굴을 비롯한 전쟁 당시 양민학살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자”는 바람을 전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 이현옥 금정굴유족회 사무국장, 조수행 수필가, 문창길 편집위원장, 정수남 고양작가회의 회장. [사진제공=고양작가회의]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 이현옥 금정굴유족회 사무국장, 조수행 수필가, 문창길 편집위원장, 정수남 고양작가회의 회장. [사진제공=고양작가회의]

기획특집 두 번째 ‘금정굴 추모시’ 섹션에는 권성은 김두녀 김대두 문창길 이기형 정수남 진란 최두석 최창균 시인이 서로 다른 시선과 목소리로 금정굴 사건의 고통과 아픔을 위무하고, 평화를 향한 염원을 노래했다.

쉽지 않은 여건과 과정들을 거쳐 독자들의 손에 전해진 <작가연대> 17호는 고양작가회의 회원들의 수고와 협력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책머리말에서 정수남 회장은 “자식 같은 신작들을 아낌없이 내어준 회원들과 전국의 작가, 시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앞으로 더욱 강해져 고양작가회의가 목표로 하는, 곧고 곧은 길을 언제까지나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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