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한파가 또 전국을 덮쳤다. 지난주에 충남 서해안과 호남, 제주엔 수십cm 큰눈까지 내렸다. 제주엔 한때 모든 항공기가 뜨고 내리지도 못해 수만 명의 발이 묶였다. 한 달 전인 지난 연말에도 겨울답지 않게 20도까지 기온이 오르고 큰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체감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던 사람들은 허둥지둥 두꺼운 방한복을 챙겨입어야 했다. 사흘쯤 춥다가 나흘쯤 풀리기를 되풀이하는 이른바 3한4온으로 특징짓던 우리나라 겨울 날씨 유형은 보기 어려워졌다. 난데없이 포근하다가 갑자기 맹추위가 몰아치는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일상으로 굳어졌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3한4온 겨울날씨는 시베리아 고기압 덩어리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세력이 커진 시베리아 고기압이 주변의 다른 공기 흐름을 막자 북극을 둘러싸고 찬 공기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파가 남쪽으로 밀려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계절에 맞지 않는 날씨와 혹독한 추위뿐 아니라 1년 내내 지구 전체가 태풍, 호우, 가뭄, 산불 등의 기상 이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 선진공업국으로 올라선 미국 유럽은 지구 거죽을 파헤치고 석탄 석유 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캐내 아낌없이 태웠다. 경제 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그렇게 얻었다. 잔치를 벌였으면 설거지도 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가 지구 전체에 위기로 닥쳤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인류는 예지를 발휘해서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나섰다. 21세기 안에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아래로 억제하는 목표를 세웠다. 2050년까지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를 100% 충당하자는 'RE100' 목표도 약속했다.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 13위의 경제대국(2022년)으로 올라선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 규모가 세계 9위다.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비난받는 건 물론이고 수출길도 큰 난관에 부닥칠 판이다.

숙제 시한이 코앞인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 문제는 아예 묻혀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정부와 여, 야 정치권은 유권자 환심 사기에 바쁘다. “~을 해 주겠다”는 약속어음 가운데 '30년 노후 아파트 재건축 절차 간소화'가 두드러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직접 고양시까지 와서 '민생토론회'를 주재하며 던진 약속이다. '앞으로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고, 주택 재개발 노후도 요건은 대폭 완화된다'고 국토교통부도 당일 정책브리핑 자료로 발표했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30년 지나면 못 살 정도라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정도로 건설 기술 수준과 내구성이 엉망이라고,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서 홍보한 셈이다. 사업성은 과연 있는 건지, 조합원이 내야할 분담금은 얼마나 될 것이며, 재건축 기간 임시 주거 확보에 따른 전·월세난, 엄청나게 쏟아져나올 건설 폐기물 처리와 잇따라 벌어질 공사판 진동과 소음, 먼지, 교통 문제 등은 또 어찌할 것인지, 상식있는 시민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부분이다.

이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민간 재건축 단지 용적률을 500%로 올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촘촘하게 하늘로 솟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 햇빛은 제대로 들 것이며 바람은 잘 통할 것인지, 건물 간 거리가 좁아지는만큼 사생활 보호 문제, 용적률에 비례해 늘어난 세대 수에 맞게 상·하수도와 도로, 학교, 병원 등의 기반 시설을 늘릴 수 있을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은 다른 나라에선 50년 100년도 너끈히 쓴다. 우리는 고작 30년 남짓에 부수고 새로 짓는 데 들어갈 철근, 시멘트야말로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대량으로 나온다. 기후변화 대응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30년 노후 아파트 정책이 실행된다면 누가 이익을 볼 것인지는 자명하다. 분담금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부유층, 부동산 투기세력, 건설기업, 재건축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주며 표심을 노리는 정치업자, 권력의 의중만 충실히 살피는 공무원, 그리고 30년 노후 아파트 철거와 재건축 이론을 세워줄 관변 전문가 그룹이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가운데 환경 분야는 4개뿐이다. 특히 '기후' 에 관한 언급은 ' 87. 기후위기에 강한 물 환경과 자연 생태계 조성' 이라는 제목 아래 '안전한 스마트 물 관리 / 수도 서비스 품질 제고 / 환경시설 현대화 / 생물다양성 보전' 정도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거시적인 비전과 국가 시스템의 근원적 개혁 약속은 찾을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 생태를 최대한 훼손하지 말아야 '생물다양성 보전'도 이룰 수 있는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부산 가덕도공항, 새만금공항, 부산 낙동강 대저대교 건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4대강 사업식의 지방하천정비 등으로 국토는 만신창이가 될 참이다. 환경영향평가를 개발사업자에게 맡기는 고질적인 모순도 개선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토양, 아름다운 자연과 건강한 생태계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의 자산이다. 정치권, 정부가 지킬 의지가 없다면 시민들이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권리요 의무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70여 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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