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릉 가는 길. 아직은 젖소개량사업소 부지 안이라 방역소독실 통과 후 철제펜스로 구획된 좁은 통로를 지나야 다다르게 된다.
효릉 가는 길. 아직은 젖소개량사업소 부지 안이라 방역소독실 통과 후 철제펜스로 구획된 좁은 통로를 지나야 다다르게 된다.

[고양신문] 차일피일 미루던 서삼릉 효릉에 다녀왔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맞은 편초지언덕으로 펼쳐진 설경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홍살문 안으로 바라다보이는 참도와 정자각, 살짝 숨은 능침공간은 신의 정원인양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40기 중 마지막으로 일반에 개방된 조선 제12대 왕 인종과 부인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지난해 9월  이미 개방된 태실묘역과 함께 묶어 추가개방은 되었지만 아직도 하루 세 번, 해설사 동반으로만 입장이 가능한 미완의 공간이다. 효릉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출입기록부를 작성 한 뒤 방역소독실을 지나 펜스로 구획한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  

  이처럼 태실묘역과 효릉을 관람하기 위해 다소의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연 속에는 서삼릉이 걸어온 50여 년의 수난사가 함께 한다. 왕릉 3기, 원(園, 왕이 되지 못한 세자의 묘) 3기, 묘 48기(폐비 윤씨의 회묘 포함), 태실 54기가 모여있는 서삼릉역은 당초 137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규모였다. 소중한 문화유산과 푸른 산림자원으로 뒤덮여 있던 이곳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서쪽 방면으로 20여 만평 규모의 한양골프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이어서 반대편 동쪽 방면의 18만 평이 뉴코리아 골프장으로 떨어져 나갔다. 가장 결정적인 훼손은 서삼릉역 중심부의 광활한 숲을 “뉴질랜드와 같은 방목목장”으로 만들어 우유공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골프를 치다가 던진 절대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서삼릉 중심부 40만 평의 푸른 숲과 수백 년된 적송군락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농협중앙회의 젖소개량사업소와 드넓은 초지, 그리고 한국마사회의 종마목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외에도 서삼릉역 안에는 군부대, 농협대학교,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까지 설치되면서 순수 문화재구역은 7만 평 규모로 축소되고 그마저 젖소개량사업소와 종마목장에 포위되고 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릉과 예릉은 외부로 통할 수 있는 출입구를 확보할 수 있어 일반에 개방이 가능했으나 효릉은 초지 안에 외로운 섬처럼 완전히 갇히게 되었고 이 지역은 우량 젖소종자를 키우고 보급하는 사업의 특성상 일반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국민들의 고픈 배를 채우고 국가 경제를 부흥시킨 박 전 대통령과 제3공화국의 공적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전국의 수많은 청정지역을 놓아두고 왜 서삼릉역이었나 하는 아쉬운 문제제기를 할 따름이다. 

  서삼릉복원을 위한 시민운동은 1995년 한양골프장의 36홀 증설계획이 밝혀지면서 시작되었다. 골프장의 농약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문화유산 훼손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고양시 환경단체들의 격심한 반대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중 고(故) 유재덕 목사, 신기식 목사, 두봉 주교, 김성호 법사 등 일부 인사가 '서삼릉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들의 활동으로 한양골프장의 증설계획은 저지되고 오히려 한국마사회로부터 4000여 평의 땅을 돌려받아 희릉으로 들어가는 홍살문의 진입로가 확보되고 나머지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어 고(故) 김지하 선생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직을 '서삼릉 되살리기 국민운동 본부'로 확대 개편한 뒤 서삼릉 복원을 위한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전개하지만 내부사정 등으로 활동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효릉 정자각에서 바라 본 홍살문과 눈 덮인 초지.
효릉 정자각에서 바라 본 홍살문과 눈 덮인 초지.

 이후 2009년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왕릉이 지닌 문화적·자연친화적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서삼릉 복원추진위원회(공동대표 김득환·김성호)'가 다시 부활했다. 추진위 회원들은 유네스코 권고사항인 왕릉의 전면개방과 원형복원 이행을 강력히 주장하며 줄기차게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마사회 등과 협의를 이어간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2020년 10월 우선적으로 태실묘역(태실, 왕자왕녀묘, 후궁묘, 회묘)이 일반에 개방되었으며 2023년 9월에는 효릉까지 개방되었다. 물론 50여 년간 굳게 닫혀있던 서삼릉역이 조금씩이나마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시민운동만의 결과는 아니다. 유네스코 권고를 이행하려고 다방면의 행정력을 기울인 궁능유적본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젖소개량사업소(농협중앙회), 한국마사회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자각 신문(神門)을 통해 본 효릉의 능침. 누군가의 발자국을 남긴 눈내리는 능침이 오백 년의 세월을 담은 듯 고요하고 평안하다.
정자각 신문(神門)을 통해 본 효릉의 능침. 누군가의 발자국을 남긴 눈내리는 능침이 오백 년의 세월을 담은 듯 고요하고 평안하다.

 서삼릉 복원은 이제 첫 걸음마를 떼었을 따름이다. 갈 길이 아주 멀다. 다른 시설은 차치하고 젖소개량사업소만이라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면 3기의 능을 비롯한 모든 문화유산을 통제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부차원의 결정과 부지매입을 위한 예산확보가 있으면 추진이 가능한 일이다. 서삼릉이 50여 년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쉬고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적 향수(享受)를 제공할 수 있도록 큰 틀의 결정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대기오염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 서삼릉은 수도권 시민들에게 넓고 푸른 숲과 청정한 공기로 보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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