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주말인 지난 1월 20~21일 양일간 독일 전역에서는 140만 이상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발호를 걱정하는 시민들(Alle zusammen gegen die AfD)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쾰른 등 대도시뿐 아니라 독일대안당 지지세가 30% 넘는 동독 소도시들에서도 데모가 이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 극우파 시위 모습. 팻말에 '동서독 불문하고 나치 병균 박멸하자!' 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 극우파 시위 모습. 팻말에 '동서독 불문하고 나치 병균 박멸하자!' 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전국 평균 20% 이상 지지율로 집권여당인 사민당(SPD) 지지율을 상회하고, 일부 동독지역에서는 30% 이상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주의회(Landtag)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작센, 튀링겐 주 등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진다면 이들 주에서는 독일대안당이 제1당으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도시 드레스덴에 있는 작센 주 청사에 어느 날 독일대안당 깃발이 휘날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치를 경험한 독일국민들에게 차별을 조장하고, 증오를 선동하는 극우세력은 오랫동안 금기였다. 그랬던 것이 독일통일 후 낙후된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슬금슬금 그 세력을 키워가더니, 지금은 독일 전체적으로 1, 2당을 넘보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과거 동독지역에서 극우가 성장한 배경으로는 낙후된 동독경제와 그로 인한 옛 동독인들의 상실감, 소외감을 들 수 있다. 1990년 통일 후 30년이 지난 2020년 현재, 동독지역 평균소득은 서독지역의 80% 정도까지 따라왔지만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소외감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15년 이후 쏟아져 들어온 난민이다.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짧은 시간에 들어오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데 이 틈을 파고든 것이 극우세력이었다. 동독인들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처지를 난민들, 그리고 이를 묵인한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지지세를 넓혀 갔던 것이다.

1989년 동독민주화 상징이었던 '라이프지히 촛불시위'의 주역, 라이프치히 시민들. 
1989년 동독민주화 상징이었던 '라이프지히 촛불시위'의 주역, 라이프치히 시민들. 

지난 주말 독일 전역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데에는 한 탐사언론 보도가 기폭제가 되었다. ‘코렉티브(Correctiv)’라는 매체의 1월 10일자 보도다. 이에 따르면 2023년 11월 25일 독일대안당 주요인사들과 극우단체 대표들이 베를린 근처 포츠담 한 호텔에서 극비 회동을 가졌는데, 여기서 독일에 거주하는 비독일계 이주민들의 추방계획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여기에는 ‘동화되지 않은’ 독일시민자권들도 포함되는데 이는 주로 이슬람계인 터키계 독일국민들을 겨냥한 것이다. 대규모 이민자 추방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여론 조작, 공영방송 무력화,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 조장 등, 반대 의견에 대한 탄압 방안 등도 논의되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8300만 독일 국민 중 2200만 명이 이주민 배경을 갖고 있다. 1950년 이후 이주해 왔거나 그 후손들이라고 한다. 전체 국민의 26%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이 독일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가 불안해지니까 독일 극우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한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고 선동하는 것이다. 히틀러 시절, 유대인을 희생양(scapegoat) 삼아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나섰던 나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 극우파 시위 모습.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 극우파 시위 모습.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헝가리 등 전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우세력들 행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존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기 보다는 희생양을 내세워, 많은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그쪽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희생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외국인, 난민, 성 소수자 등이다.

그러면 극우세력이 준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그에 따른 물가 불안이 심각해지는데도, 또 날로 심화되는 기후위기, 빈부 격차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이 극우 쪽의 날선 언어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다.

정범구 전 주독일대사
정범구 전 주독일대사

정치가 사라진 곳에는 혐오와 선동이 난무한다. 정치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곳에서 차별과 배제, 폭력이 난무한다. 국회가 통과시킨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다시 거부한 윤석열 정부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던 희생자 유가족들을 거리의 투사로 내몰고 있다. 합리적 토론이 사라지고 증오의 언어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는 정치인들이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앉아 정치를 파괴하고 있는 자들, 이들이 문제의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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