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돌보는 월요시민강좌

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강의 
전쟁과 폭력의 시대 살았던 장자
은유와 상징의 ‘우언 걸작’ 남겨 

[고양신문] 고양신문, 건강넷, 사과나무 의료재단이 주최하는 <생명과 건강을 살리는 월요 시민강좌>가 지난 22일 사과나무 치과병원 닥스메디 빌딩 지하 1층 대강의실에서 열렸다. ‘장자와 나비의 꿈’이라는 주제로 전호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끝나지 않는 장자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호근 교수는 고교 시절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 주인집 아들 방에 있던 제자백가들의 책을 읽으며 동양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일화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장자라는 철학 우화집 속에 숨겨진 뜻을 풀어 놓았다. 이날 강의 내용을 정리해 옮긴다.

전호근 교수는 고교 시절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 주인집 아들 방에 있던 제자백가들의 책을 읽으며 동양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전호근 교수는 고교 시절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 주인집 아들 방에 있던 제자백가들의 책을 읽으며 동양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장자는 누구인가?

 장자를 듣는 청중은 현실이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장자(B.C. 369~B.C. 286)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산 인물이다. 사형당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서로 베개를 베고 누워 있고, 차꼬를 차고 칼을 쓴 죄수들이 바글거리고, 형륙을 당해 손발 잘린 자들이 서로 마주 볼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들은 성(聖)과 지(知), 인(仁)과 의(義)를 잘난 척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과 지는 차꼬나 목에 씌우는 칼의 쐐기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들이 내세우는 인과 의는 죄수의 형구를 채우는 자물쇠와 마찬가지였다. 장자는 세상이 평화롭게 다스려지려면 먼저 성지(聖知)와 인의(仁義)부터 끊어 버려야 한다고 유가와 묵가를 비판했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전국시대(B.C. 403~B.C. 221)라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았으나, 공맹과 달리 주변에 권력자도 없었다. 

『장자』의 내용이 우언(寓言)인 이유

 『장자』의 내용은 대부분 우언(寓言, 우화 속 은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이 가능하다. 장자가 우언이라는 이야기 전략을 사용한 이유는 장자가 살았던 ‘몽(蒙)’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몽은 국경의 분쟁지역으로 송나라, 초나라, 위나라가 각축했던 곳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장자는 너는 어느 편인가를 묻는 핍박을 당해야 했고, 자유롭게 발언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았다. 자신의 뜻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우언이라는 이야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런 결핍 속에서 『장자』라는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요임금과 허유의 만남

 『장자』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중에 요임금과 허유의 이야기가 있다. 천하를 차지한 요임금이 숨어 사는 은자인 허유를 찾아간다. 요임금은 허유에게 자신의 덕은 관솔불과 같으나 허유의 덕은 해와 달과 같으니 천하를 받아 달라고 한다. 허유는 천하와 같이 큰 물건은 쓸 데가 없으니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포도주 통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라’고 한 서양의 일화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장자 강의를 듣는 시민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월요시민강좌는 매주 넷째 주 월요일 주엽동 사과나무치과병원 강의실에서 열린다. 
장자 강의를 듣는 시민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월요시민강좌는 매주 넷째 주 월요일 주엽동 사과나무치과병원 강의실에서 열린다. 

혼돈의 죽음 이야기

 남해의 임금은 숙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이고 중앙의 임금은 혼돈(渾沌)이다.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함께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자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이 혼돈만은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주자” 하고는 하루에 구멍 한 개씩을 뚫었더니 칠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 
 숙과 홀은 시간의 신으로 유위, 작위,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며, 혼돈은 시간의 흐름에 적용받지 않는 원시의 도, 무위, 자연을 상징한다. 혼돈은 흑백이 나눠지지 않고, 선악과 피아가 구분되지 않으며, 시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혼돈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줬다는 것은 감각기관을 부여했다는 말이다. 지금의 과학기술 문명을 보면 지구의 구멍을 여섯 개 정도 뚫은 것 같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기후 위기만 봐도 그렇다. 『장자』에 등장하는 혼돈의 죽음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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