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흙과 생명이 어우러지는 ‘습지’
물 변하듯 늘 변하는 속성 지녀
습지 경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건강한 습지의 척도는 ‘생물다양성’

물안개에 둘러싸인 버드나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물안개에 둘러싸인 버드나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오늘은 장항습지 모니터링 중에 글을 씁니다. 저는 장항습지를 보면 여전히 마음이 뜁니다. 습지란 저에게 휴식과 성찰의 공간, 흩어진 마음을 다시 보듬게 해주는 존재이니까요. 

습지를 보노라면, 아름다운 경관에 우선 매료됩니다. 그리곤 온전한 자연이 가진 힘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습지에 오면, 정신이 건강해짐을 느낍니다.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뭇 생명과 함께 거닐면 저의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게 습지는 정신적 위안을 주는 자연입니다.

사실 습지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 정신적 위안뿐만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내어 주고 있지요. 습지가 주는 혜택 중엔 음식이나 땔감처럼 시장에서 값을 매길 수 있는 물건들도 있지만, 있을 때는 잘 몰랐다가 없어지면 한없이 소중함을 느끼는 혜택들도 참 많지요. 때로는 튼튼한 방파제였다가 때로는 정화조였다가 때로는 홍수 때 수해를 덜어주는 홍수터 역할을 하지요. 뜨거운 여름 도시의 열을 식혀주는 냉각기이자 수많은 생물의 보육장이기도 합니다.

기러기 무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기러기 무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그 많은 가치를 돈으로 매기려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공기 중 탄소를 땅속에 저장하는 능력은 어떤 기계장치나 생태계보다도 뛰어나지만 이를 증명하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때론 메탄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연구자들이 습지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그 일원으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습지의 날은 2월 2일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습지와 인간복지’입니다. 습지의 날이 있는 2월에 주변의 습지를 찾아서 조용히 습지를 겪어 봅시다. 습지의 물안개, 물빛, 물내음, 바람과 생명이 내는 작은 소리들을 들어봅시다. 여러분들도 습지가 발산하는 매력 덕분에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습지는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갈대숲과 버드나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갈대숲과 버드나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젖은 땅’이 습지라지만, 무턱대고 물이 있는 땅을 찾아갈 순 없겠지요. 강가와 바닷가, 호숫가를 찾는다고 어디가 습지이고 어디가 물인지 쉽게 알 수는 없습니다. 논과 갯벌, 양식장과 양어장, 연못과 웅덩이도 습지라고 하지요. 쉽게 감이 오나요? 사실 습지는 형체가 고정된 무기물 속성보다는 살아있는 유기물과 비슷합니다. 물과 흙이 만나 버무려진 땅을 습지라고 정의하는데, 물은 항상 흐르거나 증발하거나 침투하려는 동적 속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습지와 물을 한 몸으로 보면, 물이 변하듯이 습지도 계속 변하기 마련입니다. 변화의 동인이 바로 하늘이나 땅 위, 땅속에 있는 물이니 얼마나 다이내믹하게 변하겠습니까. 20년 가까이 장항습지를 매주 또는 매달 찾아가도 늘 새로운 장항습지를 만나니 늘 심쿵(!)할 수밖에요.

이쯤에서 난제가 있음을 고백해야겠네요. 도대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습지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까요? 습지는 숲이나 농경지처럼 인간이 정한 토지 유형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경계를 정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 속에 사는 생명을 기록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보전이든, 복원이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습지 울타리 위의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습지 울타리 위의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하지만 경계를 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국가에 따라 습지를 습원, 하천, 호수, 하구, 연안까지 모두 포함하여 경계를 삼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연중 3주 이상 연속적으로 물에 잠겨있는 땅’으로 정하고 늘 잠겨있는 강과 호수, 연안은 습지에서 제외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지하수위가 지표면이나 지표면 아래 1m 이내에 있는 지역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습지를 어떻게 정해두었을까요.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중위도지역은 강수량이 계절마다 달라져 습지의 경계를 정하기가 까다로워집니다. 그래서 습지를 법으로 정하고, 이름을 붙여 목록을 관리합니다. 내 주변의 습지가 궁금하면, 환경부서나 국립생태원 습지센터와 같은 습지연구기관에 묻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고양시에는 장항습지와 일산호수공원습지, 장월평천하구습지, 공릉천의 사리습지, 덕은동습지, 난지한강공원습지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봉산습지나 영주산습지, 배다골습지, 대장천습지 등 많은 새로운 습지들은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노력과 관심이 더 필요하겠지요. 

버드나무숲과 물안개속의 기러기 잠자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버드나무숲과 물안개속의 기러기 잠자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이제 이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습지를 만날 준비가 되셨다면, 마지막으로 습지와 친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습지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아갑니다. 다양한 생물이 사는 습지는 건강한 습지임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할 때 필수항목이 있듯 습지 건강의 필수항목이 생물다양성입니다. 습지에 살아가는 생물이 다양하면, 즉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습지가 주는 혜택, 바로 생태계서비스 가치도 높아집니다. 우리 인간이 받는 선물이 엄청 많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습지를 만나러 갈 때는 새와 꽃, 벌과 나비, 물고기와 뭇 생명을 만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습지에서 생명 탐사 준비가 되었다면, 습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습지 안에 든 여러분들의 심장은 요동칠 것입니다. 

습지를 찾을 때마다 '심쿵'하는 감동을 만난다는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습지를 찾을 때마다 '심쿵'하는 감동을 만난다는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갯벌의 흰꼬리수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갯벌의 흰꼬리수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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