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고추像’ 깎으며 영화 복귀 ‘와신상담’

「태권파이터」「이슬」「달빛 자르기」「인간사표를 써라」…. 협객만화같은 이들 이름은 중년층 영화 팬들에겐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액션영화광이라면 이들 영화가 권일수의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떠 올릴 것이다. 그 권일수 감독이 지금 고양시에 살고 있다. 평범한 음식점 주인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담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불처럼 뜨겁다.

박씨가 경영하는 <고추마을>(일산구 백석동 13블럭)은 TV의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음식점이 됐지만 그의 관심사는 식당 경영이 아니라 다시 영화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박씨의 모습에서 70~80년대 한국무술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끈 왕년의 패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재기를 꿈꾸는 결연한 의지는 무서우리만큼 강하다.

권일수감독은 정통파 무술감독이었다. 홍콩영화배우 성룡이 ‘따거(형님)’라 부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그는 대한민국 1회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딸꾹질’에 출연하여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영화계 데뷔는 70년대 초 한영체육관(서울 종로)에서 카라데 사범으로 있던 중 액션배우 모집에 응모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첫 출연 작품은 이두용 감독의 ‘돌아온 외다리’. 사무라이 자객으로 나쁜 짓만 하다 마지막엔 맞아 죽는 배역이었다.

“배우 생활을 몇 년 하다 액션영화 바람을 타고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됐죠. 80년대 중반까지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여의치 않아 KBS, MBC등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 「태평무」「길손」등 드라마에서 무술지도를 맡았죠.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사자 역으로 고정 출연했는데 어쩌다 보니 얻어맞거나 남을 못살게 구는 악역만 맡았어요.”

1991년 영화계로 돌아온 권 감독은 그 해 제작한「전국구」가 대성공을 거둬 「장군의 아들」을 감독한 임권택과 함께 히트작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 뒤로 흥행작이 안 나와 마지막 승부수로 전 재산을 털어 코믹에로물 「고추불패」를 전국 32개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그 해는 2002년.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그는 고양시에서 식당업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권씨가 식당 옥호를 <고추마을>로 정하고 틈만 나면 남근(男根)상을 깎는 것은 영화「고추불패」의 참패가 준 쓰라림 때문이다. 그는 남근상 1만개를 깎는 것이 목표라며 매일 작업실에 나가 나무를 깎고 있다. 남근상을 깎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추불패」는 말 그대로 패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결국 망했어요. 그래서 그 실패를 되새기고 재기를 다짐하는 의미로 매일 ‘나무 고추’를 만들고 있지요”

권씨가 경영하는 음식점엔 그의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듯, 수십 개의 남근상이 진열되어 있다. 외설이 아니냐고 물으면 손님들이 재미 있어하고 여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진정한 뜻은 영화계 복귀를 다짐하는 ‘와신상담’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영화로 돈을 벌면 모두 영화발전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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