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박스가 소원인 황 할머니

“지나던 사람들이 초가집이라고 사진 좀 찍자고 해요. 어떤 사람은 마구 사진을 찍어대서 가라고 하면 인심 야박하다는 말을 해요. 그럼 내가 그러지. 오죽하면 이렇게 살겠냐고.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하고 가지.”

일산에서 강화 중앙대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화도면이 나온다. 그 길가에 있는 초가 한채의 주인 할머니가 뱉는 푸념이 길손의 얼굴을 뜨겁게 한다.

금새라도 쓰러질 것같은 초가는 진흙 사이사이로 기둥을 세운 나무들이 드러나있다. 지붕은 짚이 삭아 군데군데 무너져있다. 3평이나 될까. 나무를 때는 아궁이와 가스렌지 하나가 있는 부엌과 장정은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방이 이 집의 전부다.

화려한 전원주택에 요사스런 카페, 식당들이 즐비한 대로변의  초가집은  낯설기만 하다. 지은지 50년이 되었다는 이 초가에는 황영희(75)할머니가 30년째 살고 있다. 건물 값만 3만원을 쳐주고 산 집이다. 땅은 다른 집안의  종중 땅이다.

“이 집은 전쟁때 피난 온 사람들이 지은 건데 30년째 살고 있어. 내 고향은 강화군 교동인데 남편이 죽은 뒤 살림이 박살이 났어. 여기 와서 포구에서 물건 받아다 팔면서 애들을 키웠지.”

포구에서 꽃게, 새우, 밴뎅이같은 걸 받아다 40리씩 걷는 곳까지 가서 팔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자식 넷을 다 인천,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게 했으니 할머니의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으나 모두 노모에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이다.

“작은 아들은 날품팔이를 하다 깡패의 칼에 찔려 일도 못하게 됐지. 지금은 연락도 끊어지고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 의정부 사는 큰 아들은 7년 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락 해서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온 뒤 자취를 감췄어. 며느리는 애 데리고 친정엘 가구. 내가 눈물을 흘린 게 강을 이뤘을 것이여.”

황 할머니는 강화 교동 황씨네 종가 집에서 태어났다. 손이 귀했던 친정은 그를 아들처럼 위했다. 큰 지주였던 아버지는 어린 딸이 일제의 ‘처녀 공출’에 끌려갈까 봐 서둘러 출가시키고 사위에겐 땅 1만평을 넘겨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장까지 지낸 교육자였다.

“아버지가 사위한테 큰 재산을 주며 당신 자식 고생시키지 말라고 당부를 했지. 그런데 시동생이 그 많은 땅을 다 날리는 바람에 남편은 울화병에 죽었지 뭐야. 그 뒤 시동생이 집까지 내놓으라고 해서 입던 옷 하나만 가지고 이곳으로 왔구먼. ”

할머니는 행상을 다니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래도 동네사람들이 다 알만한 친정 아버지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자식들을 시집 장가 보낸 뒤에도 혼자 현재의 초가집을 지켰다. 한때는 음식점에서 회 뜨는 솜씨를 인정받아 벌이가 괜찮았지만  3년 전 집 앞 도로에서 큰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고난이 계속됐다. 허리뼈가 네 조각이 나는 중상을 입은 할머니는 더이상 생계전선에 나설 수 없었다. 

“무엇보다 2년에 한번씩 올려야 하는 초가의 지붕 갈이를 못하는 것이 가슴 아파. 요즘엔 짚 값이 크게 올라 지붕을 한번 올리는데 1백만원은 있어야 해. 짚만 500뭍(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마련할 엄두가 안나. 전에는 짚 얻어다가 새끼 꼬고 이엉 엮어서 올릴 때만 사람을 부르고 나머지 일은 내가 혼자 다 했지.”

지난 여름 비왔을 때는 방 옆의 진흙이 무너져 벽돌을 가져다 새로 발랐다. 이렇게 사는 할머니를 보고 면사무소, 군청에서 찾아왔지만 “위험하게 도로변에 왜 이렇게 사시냐”는 걱정만 해 줄 뿐이었다. 집 짓는 돈을 지원해주는 지원책이 있지만 나중에 갚을 능력이 없는 황할머니에겐 그림의 떡이다. 방송사의 집지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의했으나 땅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내 소원이요? 별거 없어요. 작은 컨테이너 박스라도 하나 갖다 놓고 죽을 때까지 살았으면 해요. 땅 주인인 종중에 내 생전만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데 언제 땅이 팔릴지 몰라 불안해요. ”

황할머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도 해당이 안된다. 나이가 많으니 취로사업에도 나갈 수 없고, 갚을 능력이 없어 강화군청의 집지어주기 지원대상도 못된다. 도대체 할머니에게 해당되는 도움은 무얼까.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호사가와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은 처지가 미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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