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정부가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시행하면서 「저출산예산」 규모를 발표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바닥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수백조 쓰고도 소용없는 저출산예산’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마저 “…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모두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시행했고, 그동안 투입된 예산을 합쳐보면 무려 200조에 가까운 그런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진짜 한국사회는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예산’을 썼나? 기존 저출산예산이라고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임신ㆍ출산ㆍ돌봄과 관련 없는 목록들이 많다.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지원사업’ 등 흔하게 있다. 물론 우리 아이의 미래 교육 환경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저출산예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청년주거지원은 저출산예산인가? 아이 낳으려면 우선 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맞을 수 있지만, 이건 보편적인 주거지원 분야 사회보장예산일 뿐이다. 최소한 서유럽 복지국가에서는 청년주거지원을 출산지원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사이트에 들어가면 「Family Database」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복지 지출 규모다. 직역하면 「가족 급여를 위한 공공지출(public spending on family benefits)」’이다. 오직 가족 대상 자녀돌봄 지원 투자만 집계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저출산예산으로 간주하는 난임 지원, 임신ㆍ출산 비용 지원 등은 포함하지도 않는다. 의료서비스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개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저출산예산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거지원도 포함하지 않는다.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 노인, 그리고 1인가구나 무자녀 부부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사회보장예산일 뿐이다. OECD에서는 오로지 아동돌봄 지원 관련 투자를 가족복지 지출로 간주한다. 그리고 지출 영역을 육아휴직수당과 아동수당 같은 현금(cash), 킨더가르텐이나 전일제학교 등 아동돌봄 지원 서비스(services), 그리고 부양자녀 공제 등 조세지출(tax breaks)로 분류한다.

OECD 가족복지 지출 개념을 따르게 된다면 “수백조 쓰고도 소용 없다”는 이야기는 염치가 없어서 못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족복지 지출 비율은 1.56퍼센트이다. 회원국은 2.28퍼센트 이하다. 38개 회원국 중 스페인, 미국, 코스타리카, 멕시코, 튀르키예만이 한국보다 동 비율이 낮다. 출산율 높다고, 그 나라 좇아가자고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같은 국가는 3퍼센트를 넘는다.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이다. 그나마 2018년부터 아동수당을 실시하면서 우리는 OECD 평균 쪽으로 향해가는 가족복지 지출을 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일본이나 이탈리아가 평균 이하 가족복지 지출 비율을 유지하면서 간신히 1.3 정도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엉뚱한 항목들이 들어가서 저출산예산 규모가 부풀려졌다는 비판에 대응하여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는 직접지원예산과 간접지원예산으로 저출산예산 항목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 임신ㆍ출산ㆍ돌봄 지원 예산이 전자이고, 청년주거지원 등 보편적 사회보장예산이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 역시 사회복지제도 확대 자체를 저출산 지원과 혼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진짜 저출산예산 규모를 파악하려면 직접지원예산만 저출산예산으로 집계하는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OECD의 가족복지지출 비율만을 갖고서 저출산 투자 규모를 논할 수 있다. 어떤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써야 한다. “쏟아 부었다”는 과장된 주장을 하지 말자. 진짜 돈을 쏟아부는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제 한번 쏟아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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