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 〈위선지〉 완역 출간

농사에서 중요한 ‘날씨와 풍흉 예측’ 다뤄 
상세한 해제·각주, 488점의 시각자료 보태
임원경제연구소, 21년째 완역·완간 작업 

[고양신문] 조선 최대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위선지〉(魏鮮志)가 완역 출간됐다.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이 발간을,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현)가 번역작업을 담당했다. 임원경제연구소는 2003년부터 『임원경제지』 16개 분야의 번역·출간작업을 20년 넘도록 지속해왔다. 

〈위선지〉는 농사를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절기와 기후,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는 지식을 다룬 책이다. 총 4권 중 3권은 ‘풍흉과 길흉의 예측’, 1권은 ‘바람과 비의 예측’이 주제다. 저자인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는 서문에서 “이 책을 농가에서 어렴풋이나마 근거로 삼아 밭 갈아 수확하는 일에 그르침이 없어야 한다”고 적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문명의 이기가 부족한 시골에서 평범한 농부들이 해와 달, 바람과 구름, 그리고 동식물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농사에 필요한 시기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편찬된 책이다. 

『임원경제지』의 전체 구성 속에서 〈위선지〉는 6번째에 배치돼 있는데, 곡식농사를 다룬 〈본리지〉, 식용채소농사를 다룬 〈관휴지〉, 화훼농사를 다룬 〈예원지〉, 과실나무농사를 다룬 〈만학지〉, 직물관련작물 농사를 다룬 〈전공지〉 다음에 자리하고 있다. 풍석문화재단 신정수 이사장은 펴낸이의 글을 통해 “이렇듯 체계만 보더라도 『임원경제지』가 얼마나 삶의 본질에 충실한 책인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고 적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표시한 3원28수의 위치. [이미지제공=임원경제연구소]
'천상열차분야지도'에 표시한 3원28수의 위치. [이미지제공=임원경제연구소]

전통시대 세계관에 대한 이해 확장 

저자 서유구는 〈위선지〉 집필을 위해 중국의 고대로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전해 내려오는 천문서와 농서를 비롯해 경서(經書)·사서(史書)·유서(類書)·점서(占書)·병서(兵書) 및 민간 자료 등에서 농사일에 도움이 될 만한 천문과 기상 자료를 선별하고, 재배치했다. 그리고 이를 압축하는 편찬 방식을 동원해 농가에 유효한 점후서로 집대성했다.      

물론 〈위선지〉에서 기술하고 있는 지식이 현대인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요소들도 적지 않다. 정명현 소장도 서문을 통해 “현대 학문에 익숙했던 역자들이 〈위선지〉에서 펼쳐놓은 예측 점들의 인과론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번역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현대와는 다른 사유체계를 갖고 있었던 전통 시대의 자연관을 현대과학의 논리로만 이해하려 해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신정수 이사장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내용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선현들의 합리적인 사유가 번뜩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고 기술했듯, 오히려 〈위선지〉 완역본을 통해 전통 시대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볼 수 있겠다. 

원전과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번에도 번역연구자들의 각별한 수고가 보태졌다. 원문과 번역을 일별하기 쉽게 병기하고, 상세한 해제와 꼼꼼한 각주를 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림 274장, 사진 154장, 일러스트 12점, 표 48개 등 총 488점에 달하는 시각적 참고자료를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시각자료 제작을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촬영, 조사하고 있는 정명현 소장(왼쪽)과 최시남 번역팀장. [사진제공=임원경제연구소] 
시각자료 제작을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촬영, 조사하고 있는 정명현 소장(왼쪽)과 최시남 번역팀장. [사진제공=임원경제연구소] 

독보적 차원의 실용지식인, 풍석 서유구

조선 최고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집대성한 풍석 서유구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서 이조판서와 호조판서 등 조정의 최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 고향마을인 파주 임진강변 장단에서 손수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음식과 술을 만들며 임원(林園, 농촌마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지식을 몸으로 익혔다. 

그는 이러한 실용지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하기 위해 조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온갖 서적들을 섭렵하고, 여기에 실생활에서 몸소 체험하고 관찰한 내용들을 녹여내 16분야로 분류한 실용지식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113권을 편찬해냈다. 천문과 수학, 한의학, 농학 등 실용학문의 영역은 물론 어로, 건축, 원예, 요리, 주조, 기악, 가사경영 등에 두루 능통했던 서유구는 재야나 한직에서 경학과 경세학의 세계관에 머물렀던 대부분의 선비들과는 전혀 다른, 독보적 차원의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행성의 합충구를 표시한 일러스트. [이미지제공=임원경제연구소]
행성의 합충구를 표시한 일러스트. [이미지제공=임원경제연구소]

풍석문화재단, 전통문화 창조적 복원 노력

책을 출간한 임원경제연구소는 다양한 전공분야 소장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단법인으로, 풍석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완역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번 〈위선지〉 번역에는 정명현 연구소장과 함께 민철기·최시남·김용미 연구원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의 노력이 단순히 고전 번역과 출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번역사업 과정에서 축적한 결과물과 노하우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 또는 단체들과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통학문과 지식이 오늘날의 대중들과 소통하는 ‘임원경제학’을 정립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표다. 이러한 노력들이 평가를 받아 지난해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원경제연구소의 연구와 번역작업은 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의 지속적인 후원에 힘입고 있다. 재단은 풍석 서유구 저술의 번역·출판을 토대로 전통문화 콘텐츠를 새롭게 복원하고 창조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해 풍석학술대회 개최, 전통음식문화 복원, 『임원경제지』 기반 대중문화 콘텐츠 공모전, 풍석디지털사료관 운영 등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임원경제연구소 측은 “이번 〈위선지〉 1·2권 출간으로 『임원경제지』 출간작업은 총 16지 중 14지가 출간되어, 〈본리지〉, 〈인제지〉만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당초 2025년까지 마무리지을 예정이었던 완역·완간은 조금 늦어질 것 같다”며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간된 완역작업을 통해 조선 실용지식의 놀랍고도 방대한 신세계를 맛본 독자들의 더 많은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의 031-946-6614(임원경제연구소) 

풍석문화재단과 임원경제연구소가 출간한 『임원경제지』 완역본 시리즈 일부.
풍석문화재단과 임원경제연구소가 출간한 『임원경제지』 완역본 시리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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