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인쇄한, 고양의 독립운동가
만년 행주내동에 기거하며 쓴 한시 900수
6명 번역가들의 수고로 80여 년 만에 완역
“숭고한 독립지사의 삶 온전히 조명됐으면”

장효근 선생 타계 78년 만에 번역 출간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장효근 선생 타계 78년 만에 번역 출간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고양신문]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인 동암 장효근(東菴 張孝根, 1867~1946) 선생이 생전에 남긴 한시 900수를 번역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이 출간됐다.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편찬위원회(위원장 장세청)가 펴낸 한시집은 3·1독립만세운동 105주년을 맞는 1일 발행돼 의미를 더했다. 

삼일절 오전 덕수장씨 종친(중앙종친회장 장세일)들과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덕양구청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윤열상 한국한시협회 명예회장, 김용규 고양문화원장, 우관재 파주문화원장, 장한진 덕수장씨 행주종친회장, 장순복 지도농협조합장 등 내빈이 참석해 한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정치권에서는 한준호 국회의원, 이경혜·명재성 경기도의원, 이해림·최규진 고양시의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동암 장효근 선생은 개화기와 구한말,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동기 내내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꿈꿨던 애국지사였다. 제국신문과 만세보를 출간하며 민족계몽을 이끌었던 그는 천도교 출판사인 보성사의 책임자로 있으며 독립선언서 2만1000매를 비밀리에 인쇄·배포하여  3·1만세운동의 거사를 성사시킨 장본인이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에도 동암 선생은 천도교 경성교구장으로서 교육계몽운동을 펼치며 제2의 만세운동을 도모하기도 했다.

1925년 이후에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아랫자락 고양군 지도면 행주내리(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에 정착해 교육과 계몽을 이어가다가 해방 이듬해에 영면했다. 출간된 한시집에 담긴 작품들이 바로 이 시기, 장효근 선생이 행주내리 생가에서 보낸 20여 년 동안에 쓰여졌다.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선생(1867~1946)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선생(1867~1946)

동암 선생의 숭고한 행적은 뒤늦게 평가를 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고, 지역에서의 조명작업도 2018년 ‘자랑스러운 고양인’ 선정을 계기로 비로소 시작됐다. 동암 선생은 <장효근 일기>와 900여 수의 한시를 유고로 남겼다. 이 중 <장효근 일기>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며 번역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시들은 오래도록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동암 선생 타계 78년 만에 비로소 900여 수 전체가 번역·출간된 것이다.        

한시의 해석과 번역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동암 선생의 친손자인 장세청 편찬위원장이 여러 방면으로 번역작업을 타진했지만, 방법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지금 못하면 언제 될지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직접 번역에 착수하기로 결심했고, 고맙게도 한국고전번역원 특강에서 만난 지인들이 힘을 보태기로 의기투합해주었다. 공동번역자로 이름을 올린 김동현, 김창기, 이성배, 장세청, 주헌욱, 최해림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력으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독립지사 장효근 선생의 생생한 목소리가 독자들을 찾아온 것이다.

동암 장효근 한시집 편찬위원회의 장세청 위원장. 동암 선생의 친손자다. 
동암 장효근 한시집 편찬위원회의 장세청 위원장. 동암 선생의 친손자다. 

번역자들은 시를 번역하면서 “시인이 시를 쓸 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시인의 마음으로 당시 사회를 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장세청 편찬위원장은 한시집 앞부분에 덧붙인 글을 통해 번역 과정에서 여섯 명의 동암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요한 표현으로 깊은 의미를 전하는 시인으로서의 동암 △일하면서도 배울 것을 권하는 교육자로서의 동암 △마을 일을 주도하고, 징병에 희생된 이웃들을 위로하는 지역 지도자로서의 동암 △가족의 일을 걱정하고, 삶의 애환과 기쁨을 표현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동암 △흔들림없는 우국충정의 정신을 보여주는 지사(志士)로서의 동암 △임종 직전까지 국제정세를 기록한 역사기록자로서의 동암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동암’을 일관하는 하나의 정신은 바로 ‘복국(復國, 나라를 되찾음. 동암은 한시에서 뻐꾹새를 復國鳥로 표현하기도 함)’이었다고 말한다.

장세청 편찬위원장의 말대로 한시집에 담긴 한시 한편 한편은 저마다 서로 다른 감흥과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무엇보다도 100여년 전 행주강(한강)과 덕양산, 행주마을의 모습들이 시인의 눈으로 생생히 묘사된 부분들은 고양의 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각별한 독서의 즐거움이다.

각별한 노력과 협력을 기울여 한시집을 출간한 6명의 번역자들.  
각별한 노력과 협력을 기울여 한시집을 출간한 6명의 번역자들.  

책에는 동암 장효근 선생의 공적 요약, 이종찬 광복회장의 추천사, 한신 원본 영인본, 추모시, 편집후기 등의 자료가 보태져 이해를 도왔다. 반갑게도 2019년 고양신문이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게재했던 관련 기사도 ‘동암 장효근 선생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책 뒤편에 수록됐다. (※ 하단 관련기사 첨부)

한시집이 출간되기까지 고마운 도움도 있었다. 경기문화재단의 ‘2023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지원사업’에 선정돼 모자람 없이 격을 갖춘 출판물로 선보이게 된 것. 장세청 편집위원장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힘써준 이경혜 경기도의원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한시집 출간에 협력한 이경혜 경기도의원(오른쪽)에게 장세일 덕수장씨 중앙종친회장이 감사패를 전했다. 
한시집 출간에 협력한 이경혜 경기도의원(오른쪽)에게 장세일 덕수장씨 중앙종친회장이 감사패를 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추천사에서 대표적 저항시인 윤동주·이육사·이상화를 언급하며 “고양에 일제시기를 이들만큼이나 치열하게 사신 분이 계셨다는 사실은 향후 우리 문학사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 역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출간이 고양의 독립운동 역사를 온전히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울러 덕양구 행주내동에 자리한 장효근 선생의 생가터가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이어졌다. 동암 선생이 기거하며 지은 한시들이 번역됨으로써, 행주내동 생가와 관련된 역사콘텐츠가 더없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효근 생가터는 현재 개인소유의 땅이고 현충시설로 지정되어있지 않아 아무런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해 1일 연합뉴스TV에서 ‘방치된 독립운동가 생가… 사라지는 영웅들의 공간’이라는 보도를 통해 시급한 생가 보전과 활용의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장세청 위원장은 “우선 고양시와 고양시민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3월 1일 보도된 장효근 선생 생가 방치 뉴스 화면. 배경 속 폐가가 행주내동에 자리한 동암 장효근 선생의 생가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쳐]
3월 1일 보도된 장효근 선생 생가 방치 뉴스 화면. 배경 속 폐가가 행주내동에 자리한 동암 장효근 선생의 생가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쳐]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출간이 고양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기리는 계기가 되길 함께 기원했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출간이 고양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기리는 계기가 되길 함께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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