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근 선생 향년 90세로 별세 
1세대 재즈연주자이자 연구가 
2010년 이후 고양에서 살아
가와지볍씨 소재 곡 만들기도   

[고양신문] 낯선 외국 음악이었던 재즈라는 장르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한국 재즈 1세대 연주자이자 연구가였던 이판근 선생이 지난 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30여 년간 한국재즈음악의 산실이었던 서울 은평구 ‘기자촌’이 뉴타운 개발로 철거되자 이판근 선생은 2010년 이후 고양으로 이사와 백석동 이웃으로 살아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판근 선생은 교토에서 성장하다 해방이 된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5학년 때 이미 재즈 스탠다드 ‘Perdido’를 들으며 채보(음악을 악보에 옮기는 일)할 정도로 음악적으로 ‘조숙’했다. 중학교 때는 스윙에 흠뻑 젖어 하루 종일 채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쿨밴드에 들어가 알토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서는 아르바이트로 미8군 악단에서 활동했다.

선생은 뛰어난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피아노, 색소폰, 클라리넷, 콩가 드럼, 봉고 드럼까지 마스터한 만능 연주가였다. 1960년 전후 미8군 ‘뉴 스타 쇼’(New Star Show)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며 본격적으로 프로 연주자로의 길을 걸었다. 이후 전자 베이스로 악기를 바꿔 재즈에 더욱 천착하며 한국 재즈의 전설인 고(故) 이정식 악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판근 선생을 말할 때 재즈 ‘연구가’로서의 면모를 빼놓으면 안 된다. 선생은 재즈를 누구에게 배울 수도, 물어볼 수도 없어서 스스로 재즈 음반을 듣고 채보를 통해 클래식과 다른 재즈의 특징을 발견하고 재즈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때로는 일본에 건너가 미국 유학파들이 번역한 버클리 음대 교재를 구해 독학으로 재즈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 은평구 기자촌에 터를 잡고 이러한 방식으로 숱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는 정원영, 봄여름가을겨울, 이정식, 김광민, 윤희정, 이정식 등 재즈와 대중가요를 아우른다.

특히 ‘국악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아 우리 전통 음악과 재즈 접목을 시도했다. 포크 가수에서 재즈 디바로 변신한 제자 윤희정이 고인에게서 "판소리를 모르고 어떻게 재즈를 하느냐"고 질타를 받고, 우리소리와 꽹과리를 배운 일화는 유명하다.

윤희정은 이판근 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아 미국의 대표적인 리듬인 ‘셔플’과 우리나라의 장단 ‘자진모리’를 합쳐 ‘셔플모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판근 선생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받았다.

2016년 무렵의 이판근 선생. 당시 봉고 드럼을 연주하는 포즈를 취했다.
2016년 무렵의 이판근 선생. 당시 봉고 드럼을 연주하는 포즈를 취했다.

이판근 선생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재배볍씨로 알려진 고양가와지볍씨를 주제로 곡을 만들기도 했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뮤지션인, 이판근 선생의 딸인 이민영씨가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을 방문하고 고양가와지볍씨를 이판근 선생에 소개하자 선생은 곡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선 나온 음악이 ‘가와지 랩소디’다. ‘가와지 랩소디’는 이판근 선생이 직접 가사를 쓴 곡과 순수 연주곡으로만 된 2가지 버전으로 남아있다. 

선생의 음악 인생은 2010년 그의 헌정 음반 제작과 콘서트 기획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로 조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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