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달, 일산병원에 3박 4일 입원을 한 뒤 위에서 선종을 떼어내는 시술을 받았다. 시술은 삼십여 분만에 깔끔하게 끝났고 출혈을 걱정했던 주치의의 염려와는 달리 예후도 좋았다. 퇴원하는 날, 주치의는 이 주 동안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자극적인 모든 음식을 피하고 죽만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삼시 세끼 허여멀건 죽으로 허기를 달랬는데 김치 없이 죽을 넘기려니 똑 죽을 맛이었다. 아쉬운 대로 백김치를 곁들여봤지만 외려 김장김치 생각은 더욱 간절해지고, 총각김치와 갓김치와 깍두기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백김치와 잘 어울리는 죽은 뭐가 있을까, 재료를 바꿔가며 다양한 죽을 끓여봤지만 한 끼 한 끼 허기를 달래는 일이 지겹기 짝이 없었다. 

그때 퍼뜩 떠오른 음식이 수제비였다. 

서울 신촌에 가면 신촌수제비란 간판을 내건 작고 허름한 수제비 전문점이 있었다.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 여섯 분이 좁디좁은 주방에서 수제비를 끓여내는데 펄펄 끓는 물속으로 수제비 반죽을 날리듯이 떼어내는 솜씨는 예술 그 자체였다. 아주머니들이 종잇장처럼 얇은 수제비 면을 사골국물에 담고 그 위에 볶은 소고기와 얇게 채 친 호박과 당근을 얹어서 무심히 내준 수제비는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안에 넣기 무섭게 호로록 식도를 타고 사라졌다.

서른 살 무렵부터 그 집을 단골로 삼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마약이라도 탔는지 신촌수제비는 물리는 법이 없었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좋이 드나들었는데 아내는 매번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에도 우리 부부는 한복 차림으로 부러 그 집을 찾아가 수제비를 먹었고, 아장아장 걷는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때에도 일삼아 발걸음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신촌에 나갈 일이 차츰 뜸해졌고 십 년 전쯤 되었을까, 신촌에 있는 초등학교에 텃밭수업을 진행하러 갔다가 때는 이때다 방문한 것을 끝으로 자연스레 발길을 끊고 말았다. 

신촌수제비를 떠올린 나는 군침을 삼켜가며 인터넷 검색을 했다. 과연 그때의 아주머니들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수제비 반죽을 떼어 넣고 계실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신촌수제비는 여전히 성업 중이라는 검색결과가 떴고 나는 한껏 부푼 설렘 속에서 부랴부랴 우산을 받쳐 들고 신촌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신촌 현대백화점 옆 골목으로 접어들자 신촌수제비는 옛날 그 자리가 아닌 이웃한 골목으로 이전을 했다. 그래도 차례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게 늘어서서 내심 안심을 했다. 이윽고 내 순서가 되어서 점포 안으로 들어서니 예전처럼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수제비 반죽을 정신없이 떼어 넣고 있었는데 나를 반겨줄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허방에 빠진 사람처럼 기운이 꺾였다. 그래도 나는 홀과 주방을 바삐 오가며 진두지휘하는 이가 아들이겠거니 지레짐작을 하며 부디 아주머니들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탁자 위에 놓인 수제비를 한 술 뜨는 순간 나는 내 젊은 날이 아로새겨진 마지막 단골집이 이 세계에서 영영 사라졌다는 슬픔을 먹먹하게 느꼈다.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나는 한강을 거쳐 원당까지 걷는 내내 문득 어머니와 딸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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