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대체 언제 줄 거냐고, 작년 가을부터 독촉을 받아오던 라디오 드라마를 드디어 다 썼습니다. 잊으신 분들을 위해 다시 말씀드리면, 저는 본디 방송작가입니다. 다큐멘터리부터 쇼프로그램까지, 온갖 종류의 방송 글을 써왔는데 그중 드라마 극본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소설처럼 저만의 세계를 창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본을 쓰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모든 내용이 인물의 말로 전달되기 때문인데, 이 말은 너무 설명적이어서도 안되고 너무 함축적이어도 안 됩니다. 설명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너무 불친절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들리는 말의 적정선을 계속 더듬어 찾아 나가야 합니다. 또 러닝타임을 초과하지 않도록 글자 수를 맞추는 일도 중요합니다. 제약이 많은 글쓰기입니다. 

그러나 쓰는 일 자체는 소설보다 덜 고통스럽습니다. 소설을 쓸 땐 마치 뚜껑 열린 물티슈가 된 것처럼 영혼이 말라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지만, 드라마는 쓰면 쓸수록 기운이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완성도의 일정 부분을 배우의 연기에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 작용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글과 말이 갖는 차이 때문입니다. 

라디오방송 제작 스튜디오. [사진제공=김수지]
라디오방송 제작 스튜디오. [사진제공=김수지]

극본은 말을 위한 글입니다. 극본을 퇴고할 땐 대사를 수백 번씩 따라 읽으면서 입에서 걸리는 부분을 솎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갈등을 핵심축으로 굴러가다 보니 제가 따라 읽는 것은 결국 말싸움입니다. 이번에도 매일 8시간씩 4인분의 말싸움을 홀로 열흘간 반복했더니 퇴고가 끝날 즈음엔 맹렬한 주둥이 파이터 한 명이 탄생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드라마를 쓰면 쓸수록 기운이 솟아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퇴고가 끝났다고 해서 극본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디와 의견을 교환하며 수정하는 기간이 또 일주일입니다. 혼자 일하고 싶어서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많은데, 기대를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소설을 쓰면 편집자가, 원고를 쓰면 피디가, 여러분의 글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모욕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할 리는 만무하지만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낍니다. 글이라는 것은 본디 예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수지 작가가 쓴 라디오드라마 극본 타이틀. 커서를 부지런히 이동시키며 한줄 한줄 모니터의 여백을 채워가는 작가의 고뇌와 희열이 상상된다.  [사진제공=김수지]

그렇게 심리적 모욕감과 수치심을 견딘 끝에 마침내 원고가 방송되면, 혹은 책이 출간되면, 이제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두들겨 맞는 일이 남습니다. 댓글이 독해도 상처받고, 없어도 상처받고, 책이 잘 팔려도 욕을 먹고, 안 팔리면 면목 없습니다.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내적으로 두들겨 맞는 일이 작가가 하는 일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제 SNS에 달린, “이 작가는 책 팔아먹으려고 팔로우 장사를 하는 사람이다. 필력 있는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 게 유익하다”라는 댓글을 본 후 역시 작가는 두들겨 맞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팔로우 장사를 해서 미안합니다. 악플에 걸맞게 책이라도 많이 팔았으면 좋으련만, 아직 1쇄도 털지 못하여 출판사에 면목이 없는 실정입니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제 팔로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들이 아닙니다. 또 인스타그램은 유튜브와 달리 조회 수가 많다고 누가 제게 돈을 주는 일도 없으니, 혹시 제가 돈을 많이 벌까 봐 염려된 것이라면 그 또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는 작가가 된 후 가난을 제2의 자아처럼 안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작가 일을 10년 정도 더 하면 환갑이 되기 전에 해탈을 할 것도 같습니다. 그냥 가끔 즐거움이 있는, 그러나 대체로 괴로운 일 같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모든 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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