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혜숙 그림책작가·번역가

25년간 그림책 등 600권 번역 
작가·작품 배경지식 쌓은 후 
이야기에 어울리는 화법 골라야 

강의 중 원서와 번역한 책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는 엄혜숙 번역가.
강의 중 원서와 번역한 책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는 엄혜숙 번역가.

[고양신문] 행신도서관에서 4회차로 기획된 그림책 번역 프로그램 <해석 말고 번역> 강의를 시작하는 엄혜숙 작가를 만났다. 20년 넘게 고양시에서 살고 있는 엄 작가는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아동문학과 그림책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고, 퇴직 후에도 번역과 창작, 강연, 비평 등 그림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5년간 600권의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번역해 독자들에게 소개한 엄혜숙 작가를 만나 그림책 번역가의 세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엄혜숙 번역가의 강의는 프로그램 신청이 하루에 마감될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엄혜숙 번역가의 강의는 프로그램 신청이 하루에 마감될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강의를 기획한 의도는.
그림책 번역을 직업으로 해보고 싶거나 번역된 책과 원서의 차이를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마련한 강의다. 번역은 정답이 없고 선택이라는 점,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우리말로 옮겨야 하기에 번역가의 문체가 중요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

❚그림책과는 어떻게 만났나.
1987년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에 입사해 유아잡지를 만들면서 자료실에 비치돼 있던 외국 그림책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림책 보는 모임을 통해 다양한 시선으로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고, 틈틈이 우리말로 옮겨 파일에 차곡차곡 모았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번역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1996년에 출간된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와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가 처음 번역한 책이다. 두 작품 모두 자신과는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삶이 주제인데, 지금 보아도 필요한 책이라 기쁘다. 

❚그림책 번역, 쉬운가 어려운가.
그림책은 글이 적기 때문에 나처럼 체력이 부실하고 끈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비교적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분야다. 그렇지만 글이 아주 적을 경우에 겪는 어려움도 있다. 번역은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이기에 가끔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 번역본을 참조하기도 한다. 
정보 그림책의 경우에는 번역하기 전 연관된 지식이 담긴 책들을 읽어 배경지식을 최대한 갖추고자 한다. 최근에는 여성이 주인공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그림책을 여러 권 번역했다. 그중 하나는 여성이란 이유로 가려져 있다가 최근에야 그 존재감을 인정받은 여성 건축가 샬롯 페리앙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다. 시대배경이나 사회상,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사실대로 옮겨야 하는 부분들이 어렵지만 새로운 분야를 알 수 있어 즐거웠다.

빈빈책방에서 열리는 ‘그림책수다’ 모임에 참여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엄헤숙 번역가.
빈빈책방에서 열리는 ‘그림책수다’ 모임에 참여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엄헤숙 번역가.

❚어떤 과정으로 번역을 해야 하나.
우선 그림책을 여러 번 읽어 내용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런 다음 화법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그림책은 주로 어린이에게 읽어주는 책인데, 우리말은 화법을 달리하면 아주 다른 느낌이 된다. 『평화 책』 같은 경우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식으로 옮겼다. 그래야 책에서 표현된 작가의 의도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이 책은 모 신문에서 좋은 번역 그림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 책들을 읽어보며 작가의 특징과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 자유롭고 풍부한 번역이 된다.

❚요즘 일상을 들려달라.
늘 하던 대로 그림책 강연과 번역을 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빈빈책방에서 하는 그림책 읽기 (그림책수다), 알모책방에서 하는 시집 읽기 (시 읽는×빵 익는 시간)와 독서모임(본주르)에서 노벨상 수상작품읽기, 뜨개질하며 책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야밤의 뜨개질 클럽’ 등 고양시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동안 번역한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적당한 매체에 연재해볼까 생각 중이다. 내 자신의 삶에서 번역 활동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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